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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창작의 재료 혹은 영혼
이다혜 2017-02-13

<외로운 도시> 올리비아 랭 지음 / 어크로스 펴냄, <작가와 술> 올리비아 랭 지음 / 현암사 펴냄

세로로 우뚝한 건물의 그림자, 위아래로 길쭉한 창문 앞의 속옷만 걸친 여자들.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처음 봤던 때가 떠오른다. 그의 다른 작품들을 보고 싶었고 실물로 보고 싶어 안달이었다. <Nighthawks> 같은 그림으로 말하면 과장을 좀 보태 이 그림에 홀리지 않는 사람을 본적이 없다. 소설가 조이스 캐럴 오츠의 말에 따르면, “미국적 고독의 낭만적인 이미지 가운데 가장 통렬하고 쉬지 않고 복제되는 작품”. 올리비아 랭이 에세이 <외로운 도시>의 두 번째 장에서 휘트니 미술관의 이 그림을 설명하는 가이드 말을 옮길 때만 해도 나는 이 그림의 푸르고 희고 검은 무표정한 어둠을 떠올리고 있었다. 직접 봤을 때의 그림이 나에게 보여주던 빛을 떠올리며. 랭은 고독에 대해 말한다. “사람들이 외로워질수록 사회가 흘러가는 물길을 따라가는 숙련도가 점점 낮아진다.” 혼자일 때 보살핌이 결여되어서 스트레스가 생기는 것인가, 혼자라는 감정 자체가 스트레스를 안기는 것인가. 에드워드 호퍼 작품의 열린 창, 텅 빈 벽 이미지에서 출발해 고독과 우울에 대해 말하던 랭은 그의 그림이 아니라 삶으로 방향을 튼다.

에드워드 호퍼 그림의 여자들은 어떤 공통점을 갖는가. <이창>의 주인공이 자신의 아파트에서 엿보는 다른 주민들 중 미스 론리하츠와 비슷한 여자들이라고, 랭은 말한다. “여성이라는 사실에 얽매이고 이룰 수 없는 외모 기준의 포로가 된, 갈수록 더 중독되고 나이 들수록 목이 졸릴 듯한 고독에 사로잡힌 것처럼 보이는 여자들.” 그리고 호퍼의 여자가 소개된다. 조세핀 니비슨은 호퍼와 미술학교에서 함께 공부했었다. 결혼했을 때 둘 다 사십대 초반이었고 호퍼가 죽을 때까지 함께였으며, 결혼과 함께 니비슨의 작품활동은 거의 증발해버린다. 니비슨은 남편의 살림을 도맡은 것뿐 아니라 1923년 이후 그의 작품들의 모델이 되었다. 그녀의 헌신만이 경력을 멈추게 한 것은 아니었다. 에드워드 호퍼는 니비슨을 모델로는 좋아했지만 라이벌로는 허락하지 않아, “그림 그릴 여건을 제한하려고 매우 독창적이고도 악의적으로 행동했다”. 정말 그녀에게 재능이 있긴 했는지조차 판단이 불가능한데, 그녀의 작품 가운데 살아남은 것이 거의 없어서다. 그녀는 호퍼와 자신의 작품을 휘트니 미술관에 기증했는데, 그녀가 세상을 떠난 뒤 미술관은 그녀의 그림을 모두 버렸다. 정말 실력이 없었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우리는 그 사실을 알 수 없게 되었다. <Nighthawks>가 그려지는 대목에 이르면, 그 그림 속 손에 잡힐 듯 느껴지는 고독의 인상이라는 게 어디에서 비롯하는지, “연결이 가장 필요한 바로 그 순간 연결을 금지하는” 감각이 무섭고도 아름다울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지, 그것이 또한 누구의 헌신 혹은 희생을 필요로 했는지 하나의 그림으로 완성된다.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앞에 설 기회가 다시 생기면 여전히 그에게 홀리겠지만, 전보다 더 많은 것을 보게 되리라.

<외로운 도시>가 뉴욕에서 활동한 예술가들에게서 혼자 된다는 의미를 탐색한다면 <작가와 술>은 미국의 위대한 작가들, F. 스콧 피츠제럴드, 레이먼드 카버, 존 치버, 어니스트 헤밍웨이… 아니,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미국 작가 여섯명 중 네명꼴로 술독에 빠져 살았다는 사실이 우연일까 필연일까를 묻는다. 올리비아 랭은 3년 새 펴낸 두권의 책을 통해 창작의 비밀을, 아니 창작에 필요한 땔감의 부산물을, 혹은 창작자를 따라다니는 전설의 실체를 적어간다. 술이라는 재료를 말하기 위해 랭은 <외로운 도시>에서와 다르게 미국의 여기저기를 다니고 그곳의 풍경을 적어내려간다(술이라는 것은 지역색과 떼려야 뗄 수 없다!). ‘남쪽으로’ 챕터에서 마이애미 상공으로 비행기가 들어서면서 어니스트 헤밍웨이, F. 스콧 피츠제럴드, 테네시 윌리엄스를 불러내는 순간들은 유려하고 재미있다. 올리비아 랭은 2017년 1월에 출간된 이 두권의 에세이로 한국에 처음 소개되는데, 한국에 미출간된 그녀의 첫 책 <강으로>가 버지니아 울프의 삶과 작품을 다룬 여행서라고 한다. 좋은 작가가 뒤늦게 소개되는 일의 장점도 있는 것이다. 새로 쓰일 책을 기다리는 동시에 이미 쓰인 책이 번역 출간되기를 애타게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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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의 재료 혹은 영혼 <외로운 도시>
창작의 재료 혹은 영혼 <작가와 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