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12일, 나와 작업실 친구들은 난데없이 속초로 향했다. 누군가가 잔뜩 흥분한 얼굴로 그곳에서 <포켓몬 고>를 해볼 수 있다는 얘기를 꺼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속초, 인제, 신남이라는 표지판을 거쳐 자정을 넘긴 시각에 속초에 도착했다. 어느 시점에 누군가가 “여기 있어, 있어!”라고 외쳤다.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각자의 휴대폰을 들여다보았다. 포켓몬이라고는 피카츄 정도만 들어서 알고 있는 나였지만 휴대폰 화면에 떠오른 귀여운, 지나치게 귀여운 생명체에 순간 넋이 나가고 말았다. 우리는 밤새도록 거리를 돌며 포켓몬을 포획했고, 해가 떴을 때도 멀리 보이는 설악산의 아름다운 풍광에 눈길 한번 흘긋 던졌을 뿐 분주히 포켓스톱을 돌아다녔다. 작업실 바로 옆 편의점도 가기 귀찮아하는 친구들이 한없이 걸으면서도 불평 한마디 하지 않는 모습을 보자 웃음이 나왔다. 내가 처음 포획한 포켓몬은 이브이였다. 쾌청한 날씨였고, 속초 바다는 아름다웠다. 하지만 우리는 눈앞의 잉어킹을 어서 잡기에 바빴다.
각자의 일정 때문에 우리는 밤을 새워 초췌한 몰골로 서울로 돌아왔다. 가끔 누군가가 다시 한번 속초에 가자는 말을 꺼내기도 했지만 사는 일이 바빠 쉽게 그럴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렇게 서서히 잊혀진 <포켓몬 고>가 한국에 정식으로 출시되자마자 작업실 분위기는 순식간에 지난해 7월을 되찾았다. 우리는 나름대로 속초 유학파라는 자부심을 갖고 출현 빈도가 낮다는 희귀 포켓몬들을 찾으러 온 동네를 헤매고 다녔다. 과거형으로 썼지만 실은 지금도 헤매고 다니는 중이다. 어제는 미뇽을 찾으러 멀리 한강공원까지 나갔다가 허탕을 친 뒤 꽁꽁 언 손발로 돌아오는 길에 뜬금없는 장소에서 신뇽을 발견하기도 했다(신뇽은 미뇽의 진화형이라고 한다). 오늘은 작업실 책상 위에 피카츄가 나타났다. 내일은… 어쩌면 피카츄 집이라는 소문이 자자한 보라매공원을 찾을지도 모르겠다. 가끔 누군가가 짧게 탄식을 내뱉기도 한다. “우리 평균 나이가 서른셋인데.”
소설을 읽을 때마다 어쩔 수 없이 좋아하게 되는 장면이 있다. 어떤 존재의 있음을 화자가, 따라서 독자가 확인하게 되는 장면이다. 각자의 포켓몬 도감을 어느 정도 채우고 나면 지금의 열기도 어느 순간 식을 것이다. 우리가 열정을 지녔던 대상들에 대해서 늘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그걸 알 정도로 나이를 먹었다. 그래도, 동물 학대에 외모 지상주의를 조장하는 게임이라고 간혹 떫은 소리를 하면서도, 우리는 틈날 때마다 게임을 실행하고 어떤 존재의 있음을 확인한다. 영원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