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숫자로 보는 성공 스필버그, 하룻밤에 백만장자?
요사이 기준으로 보면 주연배우 개런티에도 못 미치는 1010만달러를 들여 제작된 <E.T.>는 <조스> <미지와의 조우>에 이어 3번째로 박스오피스 정상을 갈아치운 스티븐 스필버그 영화다. <버라이어티> 통계에 따르면 재개봉 전까지 <E.T.>의 북미 박스오피스 수입은 4억달러로 <타이타닉> <스타워즈>(재개봉 포함), <스타워즈 에피소드 1:보이지 않는 위협>에 이어 역대 4위이며 세계적으로는 7억480만달러를 벌어들였다. 가능한 한 많은 스크린에서 동시에 개봉하는 현대적 배급전략이 이미 도입됐던 1982년이지만, <E.T.>의 흥행 추이는 첫 주말에 결판을 내는 90년대 오락영화들의 박스오피스 곡선과는 판이해서, 개봉 첫주에 2200만 달러(이하 단위 생략), 2주차에 2200만, 3주 2600만, 4주 2400만, 5주 2300만, 6주 2300만이라는 계단형의 흥행기록을 남겼다. 1982년 1100개의 스크린에서 개봉됐던 <E.T.>는 2002년에는 2500개 스크린에 20주년판을 걸었다. <E.T.>의 인기가 최고조에 달했을 무렵 스필버그가 번 돈은 하루에 100만 달러로 추산되며, 영화 속 E.T. 모형의 제작비는 약 150만 달러다. 제작사 유니버설이 E.T.의 이미지 라이선스를 허가한 제품 수는 50개. 한편 엘리엇과 E.T.를 이어준 새알초콜릿회사 허쉬가 들인 PPL 비용은 제로. <E.T.> 개봉 후 E.T.가 먹은 초콜릿의 판매는 65% 증가했고, ‘괴물영화’에 자사 제품이 등장하는 것을 꺼림칙하게 여겨 제안을 거절했던 M&M은 쓴맛을 삼켜야 했다.
★ 레이건의 80년대 가부장적 권위의 귀환
1980년대, 정확히 따져 1980년에서 1992년에 이르는 레이건-부시, 부시-퀘일 행정부 시대의 보수적 공기를 반영한 할리우드 영화들의 별칭은 ‘레이건 시대 엔터테인먼트’(Reaganite Entertainment)다. 레이건 정권은 베트남 패전과 워터게이트의 트라우마로 열패감에 빠진 미국인들에게 미국의 실패가 국가적 좌절이 아니라 전통적인 미국적 가치에 대한 신념이 사라진 탓에 생긴 일시적 실족이라는 믿음을 퍼뜨리고자 했다. 제자리 찾기, 낙관주의, 노스탤지어는 아이젠하워 시대를 ‘실낙원’으로 상정한 로널드 레이건의 정치적 페르소나인 동시에 영화배우 시절 레이건의 스크린 이미지와 일치했다. 주제면에서 <E.T.>는 평론가 로빈 우드가 ‘가부장적 권위의 귀환’이라고 요약했던 레이건 시대 영화의 예로 즐겨 언급된다. 1960, 70년대 세대간의 갈등을 날카롭게 드러내고 권위의 전복을 부추겼던 미국영화는 80년대 들어 부권 회복에 부쩍 관심을 쏟았다.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 <보통 사람들>은 어머니를 내치면서까지 아버지를 되찾으려 몸부림쳤고, <록키> <가라데 키드> <백 투 더 퓨처>는 남자주인공에게 허약하거나 부재하는 아버지 대신 남자 스승을 선사했다. <E.T.>에서 애인과 멕시코로 떠난 엘리엇 아버지의 빈자리는 반은 E.T.에 의해 반은 선량한 과학자(피터 코요테)에 의해 채워진다. 10살 때부터 E.T.를 기다려왔다는 과학자 피터 코요테가 처음 영화에 등장하는 순간 헬멧을 쓴 그의 얼굴 위에는 엘리엇의 반영이 포개지고, E.T.가 우주선에 오르는 대단원에 이르러 그는 엘리엇의 엄마 옆자리에 당연한 듯 서 있다. 상상력이 특별히 풍부한 혹자는 기적적으로 부활하는 E.T.에게서 1981년 힝클리의 총격을 겪고도 살아난 레이건의 모습을 읽어내기도 했다. 1977년 아버지에 대한 신화적 반항을 수행했던 <스타워즈>의 루크 스카이워커가 1980년 2편에서 다스 베이더에게 친자확인을 받은 지 2년 뒤의 일이었고, 인디애나 존스가 20년간 소원했던 아버지(숀 코네리)와 <최후의 성전>에서 화해하기 7년 전의 일이었다.
★ 마케팅 세상을 움직인 2개의 이미지
하이컨셉트(High-Concept : 내용과 흥행 요소를 단 몇줄로 요약할 수 있는) 영화의 마케팅에서 중요한 열쇠는 명료하고, 단순화하기 쉬우며 다른 매체로 옮기기가 용이한 간판 이미지의 선택이다. <E.T.>의 마케팅에는 두개의 비주얼이 선택됐다. 외계인의 손가락이 엘리엇의 손가락과 맞닿는 모습의 빅클로즈업이 1차 프로모션에 쓰였고 엘리엇이 바구니에 E.T.를 실은 자전거를 타고 보름달을 가로질러 날아가는 장면의 롱숏 이미지가 더불어 사용됐다. 손가락을 통한 교감의 이미지는 외계인과 소년이 정서적 커넥션을 함축함으로써 SF의 가면을 쓴 최루성 멜로드라마로서 <E.T.>의 본령을 은연중에 관객들의 귀에 속삭였고, 엘리엇의 비행은 영화에서 가장 황홀한 이미지로서 판타지의 마법을 강조하고 이미 영화를 감상한 관객들의 심금을 조용하지만 강력하게 건드리는 역할을 했다. 자전거비행 이미지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제작사 앰블린 엔터테인먼트의 로고로 채택되어, 그뒤로도 오랫동안 <E.T.>의 동화적 모험과 천문학적인 규모의 흥행수입을, 스필버그표 영화의 브랜드 이미지로 굳혔다.
★ <스타워즈> 루카스와 스필버그의 할리우드
<스타워즈>의 조지 루카스와 <조스> <E.T.> <인디애나 존스>의 스티븐 스필버그는 20세기 마지막 25년의 영화 테크놀러지와 영화 문화를 송두리째 바꿔놓은 가공할 2인조다. 루카스의 특수효과 공장 ILM의 협력으로 완성된 <E.T.>에도 우정의 표식은 역력하다. 엘리엇 역의 헨리 토마스가 새로 사귄 친구 E.T.에게 자신의 장난감을 소개하는 즉흥연기 장면에는 <스타워즈>에 등장하는 캐릭터인 보바 펫의 인형이 우정출연한다. 모든 아이들이 괴기한 차림으로 돌아다니는 할로윈을 틈타 흰 천을 뒤집어쓰고 바깥나들이에 나선 E.T.는 <스타워즈>에서 E.T.와 가장 근접한 몸매와 이목구비를 가진 요다로 분장한 행인과 마주치자 고향 별에 돌아온 줄 알고 “집!(Home)”을 외치며 물색없이 달려들기도 한다. 뭐니뭐니해도 <스타워즈>와 <E.T.>의 친분을 보여주는 것은 존 윌리엄스의 쩌렁쩌렁한 음악. 1977년 <스타워즈>로 교향악 양식의 영화음악 전통을 복원한 존 윌리엄스는 관악기에 대한 그의 연구를 한층 심화하면서 서스펜스를 자아내는 전반부의 섬세한 연주곡과 장엄한 피날레가 대조를 이룬 <E.T.>의 작업으로 <스타워즈>의 맥을 이었다. 1970년대 말과 80년대 초의 영화팬들은 <스타워즈>의 주제와 더불어 <E.T.>에 나오는 ‘비행의 테마’(Flying Theme)와 ‘지구에서의 모험’(Adventures on Earth)을 각종 영화 관련 TV프로그램의 로고송으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을 수 있었다.
★ UFO 스필버그가 품어온 환상
스티븐 스필버그는 꼬마들만 <E,T.>를 보러올 거라고 생각했다. 흥행에 자신이 없었던 전작 <미지와의 조우>로 2억5천만달러의 수입을 올린 그였지만, <E.T.>만은 1천만달러도 채 벌지 못할 것 같았다. 그러나 “평범한 사람들이 목격할 수 있는 UFO 드라마”로 만들고 싶었던 <미지와의 조우>처럼 <E.T.> 역시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끌어냈다. 스필버그는 연이은 성공을 지켜보며 “정말 우주에서 왔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마음으로 UFO를 믿는” 자신의 환상이 미국대륙으로 퍼져나가는 꿈을 꾸었는지도 모르겠다.
엄청난 제작비를 써가면서 웅장한 스펙터클을 만드는 스필버그는 UFO만은 항상 소박한 어린아이처럼 대하곤 했다. 그는 <미지와의 조우>는 우주의 교향시 같은 <스타워즈> 시리즈와 달리 교외 풍경에 근거하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곤 했다. 그에게 UFO는 평범한 사람들의 마음에 자리한 꿈이었고, 그 자신이 어렸을 때 매혹됐던 밤하늘의 흔적이었다. UFO의 메시지를 수신한 사람들이 오해와 불신을 극복하고 먼 우주를 향해 첫발을 내딛는 <미지와의 조우>나 겉모습에 구애받지 않는 우정을 강조하는 <E.T.>는 모두 비슷한 심성에 기초한 영화들이다. 그가 제작한 영화들 역시 마찬가지다. 은 전기를 먹고살면서 사랑도 하고 아이도 낳는 귀여운 외계인형 UFO가 등장하는 영화. 역시 가난한 사람들이 우주에서 찾아온 친구들로부터 희망과 용기를 얻는 이야기다. 외계인이라고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신비한 생물 기즈모가 나오는 <그렘린>과 외계인이 인간인 척하며 지구에서 살고 있다는 <맨 인 블랙>도 스필버그가 제작한 영화다.
★ 캐릭터 상품 색칠공부에서 음반까지
블록버스터라는 개념이 막 성립하기 시작한 1982년에도 <E.T.>는 다양한 캐릭터 상품을 제조해 눈길을 끌었다. 아무것도 입지 않은 지구 도착 때 모습 그대로의 인형부터 담요를 뒤집어 쓴 인형, 화분을 들고 있는 인형, 전화하고 있는 인형 등이 있었고 E.T. 그림이 있는 컵과 칫솔, E.T.가 좋아하는 새알 초콜릿, 엘리엇 비누까지 생산됐다. 특이한 것은 책과 음반 분야였다. <E.T.>는 스토리를 축약한 그림책과 색칠공부를 내놓았고, 유명인사가 읽어주는 테이프로 된 책도 만들었다. 마이클 잭슨의 목소리로 녹음된 스토리북과 거티의 시선으로 바라본 <E.T. 지구 여행담>이 그것. 닐 영이 <E.T.>로부터 영감을 받아 녹음한 싱글 앨범 도 포함돼 있다. 이 밖에도 재개봉을 맞은 2002년에는 E.T. 전자수첩 등 세월의 변화를 절감하게 하는 상품들이 추가됐다. 스필버그는 1982년 당시 <E.T.> 캐릭터 상품이 지나치게 어른스러웠던 점을 반성해, 이번에는 보다 환상적이고 마술적인 분위기가 느껴지도록 신경쓰기도 했다. <E.T.> 공식 홈페이지에 따르면 DVD는 올해 8월경 출시될 예정이라고 한다.
글 김혜리 vermeer@hani.co.kr 김현정 parady@hani.co.kr ▶ 빅히트 그리고 재개봉 <E.T.>를 이해하는 11개의 키워드 (1)▶ 빅히트 그리고 재개봉 <E.T.>를 이해하는 11개의 키워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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