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를 밥 먹듯 씹으면, 그것을 모래로 느낄 수 없게 될까. 아닐 것이다.
거짓말을 밥 먹듯 하면, 그것을 거짓으로 느낄 수 없게 될까. 그럴지도 모른다. 모래와 거짓의 어떤 차이점은 여기에 있다. 모래는 씹을수록 꺼끌댄다. 거짓은 미끌댄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라 불리는 헌정농단 사태의 풍경을 지켜보면, 이들의 거짓말이 무척이나 확고함을 느끼게 된다. 그들은 진실하다. 예컨대 문제의 태블릿 컴퓨터가 최순실 것임이 확실하다 해도, 그건 결코 최순실 소유가 아니다.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철저한 불이익을 안기라는 김기춘과 조윤선의 지시가 명백하다 해도, 이는 그들이 시킨 일이 아니다. “추호의 거짓됨 없이 진실을 담아 말씀드리건대”, 우병우는 최순실을 잘 알지만 결코 모르고,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을 방해했지만 그런 적이 없다. 박근혜와 이재용이 따로 만나 국민연금과 승마 지원을 맞바꾸는 뇌물성 거래를 한 사실이 있지만 언제 그랬단 말인가. 당신이 보았나. 보았다 해도 그런 일은 결코 없었다. 왜냐하면, 그런 기억이 없고, 그럴 의도가 없으며, 그런 사실조차 없기 때문이다. 당사자가 그런 적 없고, 당사자가 떳떳하다는데! 이들은 얼마나 진실하고 일관되며 당당한 피노키오들인가.
피노키오의 친구들은 잠시 눈을 돌려 웃고 있는 북녘을 보자고 제안한다. 이 모든 사태야말로 김정은이 원하는 일이 아니겠냐고, 고로 김정은이 조작한 일이 아니겠냐고. 괴뢰 빨갱이 공산당이 무슨 일인들 벌이지 못하겠냐고. 그러지 않고서야 이 사태를 설명 할 길이 없다고. 삼대세습 독재자의 음모에 놀아나선 안 된다고. 아, 물론 삼대세습 독재자 이재용은 예외라고. 여기는 자유대한민국이니까! 조국의 부흥을 위해 온몸 다 바친 박정희 대통령, 육영수 여사님을 잊었느냐고. 그 따님이 그럴 리는 없다고. 이럴 때일 수록 박근혜 대통령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야 한다고. 애국이란 바로 그런 거라고!
우습지만, 내가 사는 이 나라는 거짓을 진실로 믿는 풍습이 있다. 매국을 애국이라 불러온 전통이 있다. 슬프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