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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영화제의 화끈한 `성뒤집기`
2002-04-06

카트린 밀레(54)는 한국에도 제법 이름이 알려진 현대 미술 평론가다. 프랑스에서 발행되는 미술잡지 <아르 프레스>의 편집장이자, 1995년 베니스 비엔날레의 프랑스관 전시기획자였으며, 현장에서 본 현대 미술의 흐름을 기록하고 있는 저술가로 광주 비엔날레에도 다녀간 적이 있다. 그가 쓴 <프랑스 현대미술>과 <드니즈 르네와의 대화>가 이미 번역돼 나와 있지만, 정작 카트린 밀레가 유명해진 건 최근 출간된 <카트린 엠(M)의 성생활>(열린책들 펴냄) 때문이다. 이제 오십 중반을 바라보는 이 여성은 제목 그대로 30여 년에 걸친 자신의 성체험을 소름끼칠 지경으로 솔직하게 적고 있다. “나는 열여덟 살에 처녀이기를 그만두었다…나는 첫 경험을 하고 몇 주가 지나는 사이에 처음 파르투즈(세 사람 이상이 함께 하는 성행위)에 참여했다.” 미술 평론가답게 수, 공간, 내밀한 공간, 세부묘사라는 네 가지 주제로 글을 이어간 밀레는 “상세히 들여다보는 본능적 충동이 나의 성생활 전기에서도 이런 접근 방법을 택하게 만든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또 “<아르 프레스>를 통해 표현의 자유, 특히 성적인 재현의 자유에 대해 항상 옹호하는 태도를 취해 왔는데 그러한 믿음을 갈 수 있는 데까지 밀고 갔다”고 털어놨다. <월간미술> 4월호가 실은 카트린 밀레와의 인터뷰를 보면, <르 몽드>가 밀레를 `혐오감의 경계를 뒤로 밀어내려는 사람'이라고 평한 것이 적확했다는 생각이 든다. 여성들이 지난 십여 년 사이에 문학과 영화로 일군 성에 관한 생생한 이야기들에 대해 밀레는 “여성들은 이 분야에 무언가 공헌한 바가 있다고 생각한다.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훨씬 직접적이다. 훨씬 더 현실적이라고나 할까…”라고 지적했다. “나에게 성이란 타인들과 함께 하는 대화 방법이다…성이란 것이 타인을 알게 되는 매우 좋은 수단이 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바로 그들의 가장 은밀한 영역을 침범하기 때문이다…게다가 한 가지 확신하는 것은 오르가즘을 성적 행위의 궁극적 목적으로 간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섹스는 이제야 겨우 다른 것으로 쓰일 수 있게 되었다.” 어제 저녁, 서울 대학로 동숭아트센터 동숭홀에서 막을 올린 제4회 서울여성영화제는 밀레가 책에서 보여주려 했던 것을 필름으로 건져올린 여성 감독들의 열기로 후끈하다. 여성들의 성을 다룬 기록영화 <욕망을 영화화 하기>나 극영화 <불을 켜>를 따라 나서는 관객들은 성이 타인을 알아가는 또 다른 대화방법임을 알게 된다. 뒤틀린 관음증의 희생자였던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더 직접적이고 현실적으로 그 성을 뒤집어 버리는 현장이 서울여성영화제다. `여성의 눈으로 보는 세계'는 다르고, 신나고, 힘있다. 프랑스 사람들이 카르린 밀레의 책을 두고, “아프카니스탄에 폭탄 실은 비행기를 보내느니, 수천 권의 밀레 책을 투하하는 것이 훨씬 나을 거야”라고 말했다는 그 파괴력이 지금 서울여성영화제 현장을 달구고 있다.정재숙 기자jj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