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온 삶의 궤적도, 가치관도 정반대인 두명의 작가가 있다. 20대 젊은 작가 마거릿 리는 아버지의 헌책방에서 일하며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인물의 전기를 쓴다. “항상 보잘것없는 사람들에게 마음이 끌”리는 그는 수백년간 책장에 파묻혀 있던 평범한 사람들의 일기와 회고록에 “숨결을 불어넣는”다. 다른 한명은 ‘금세기의 디킨스’로 평가받는 유명 소설가 비다 윈터다. 본인의 저서만으로 책장을 가득 채울 수 있을 정도로 수많은 이야기를 지어온 그는 베일에 싸인 인물이다. 신간을 낼 때마다 거짓 인터뷰를 반복해온 탓에 출신과 유년 시절, 심지어 이름에 대해서도 제대로 알려진 바가 없다. 70살을 훌쩍 넘긴 소설가는 자서전을 남기기로 하고, 전기 작가로 마거릿 리를 고용한다. 비다 윈터의 음침하고 거대한 저택에서 함께 생활하게 된 마거릿 리. 사실만을 기록하는 작가와 거짓에 단련된 소설가는 과거의 거대한 진실에 다가서기 위한 줄다리기를 시작한다.
빅토리아 시대를 시작으로 현대에 이르기까지 앤젤필드 가문과 그의 대저택에 얽힌 이야기를 3대에 걸쳐 풀어낸다. 조지와 마틸드, 그들의 아이인 찰리와 이사벨, 그리고 이사벨의 아이인 애멀린와 애덜린이 앤젤필드 가문의 맥을 이어나가고, 그 곁으로 가정부, 정원사, 가정교사 등 연루된 주변 인물들이 가문의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든다. 부모의 편애, 폐쇄적인 가정 분위기, 뿌리깊은 권위의식은 대물림돼오며 아이들의 내면을 황폐화한다. 비극적인 환경에 내몰린 아이들은 기이한 행동을 반복하고 이것은 소설의 위태로운 분위기를 형성하는 주된 요소가 된다. 소설은 다양한 시점과 시간대를 오가며 묵묵히 파국을 향해 나아간다. <열세 번째 이야기>는 2006년 발표된 소설로 출간 10년을 맞아 개정판으로 나왔다. 2013년에는 <BBC>에서 동명의 드라마로 제작되기도 했고, <해리 포터> 시리즈를 제작한 헤이데이 필름에서 영화 판권을 확보하여 제작을 앞두고 있다.
앤젤필드 가문의 비극
나는 오래된 인명사전 뒤적이는 것을 좋아했다. 어릴 적부터 지루하거나 불안하거나 두려울 때면 인명사전의 이름과 날짜, 기록들을 훑어보곤 했다. 인명사전에는 죽은 사람들의 삶이 간결하고도 덤덤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남자들은 남작이거나 주교이거나 수상이거나 의원이었고, 여자들은 그들의 아내이거나 딸이었다. 그들이 아침식사로 콩팥 요리를 즐겼는지, 그들이 사랑했던 사람이 누구였는지, 밤마다 촛불을 끄고 난 뒤 그들을 괴롭히는 악몽이 무엇이었는지 따위는 알 길이 없었다. 인명사전에는 사적인 내용은 담겨 있지 않았다. 그렇다면 죽은 자들에 관한 빈약한 정보들이 왜 그토록 내 마음을 끌었던 것일까? 그것은 그들이 한때는 살아 있는 사람이었지만 지금은 죽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17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