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퍼거슨은 남아프리카 지역에 관한 특수한 질문과 논쟁에서 시작해 <분배정치의 시대> 집필에 착수했다. 점증하는 불평등과 구조적 실업(과 잉여노동)에 대한 그의 관심사를 따라가다 보면, 분배라는 말이 포퓔리슴이라는 단어와 함께 쓰이며 혐오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한국의 사정이라고 뭐 크게 다른가 싶어진다. 퍼거슨은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미국인들은 일의 세계에서 주변화된 사람들, 특히 어떤 종류든 사회적 지급을 받는 사람들을 기생충으로 조롱하고 폄하하는 데 익숙하다. 나는 자기 나라 국민의 ‘99퍼센트’를 차지하는 ‘민중’이 ‘개·돼지처럼’ 취급받아야 한다는 충격적인 주장을 펼친 한국 교육부 고위관료에 관한 기사를 읽으면서 비슷한 사고방식을 발견했다.”
그러면 분배와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퍼거슨의 생각은 한국의 민중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분배정치의 시대>의 원제인, 물고기를 주라는 주장은 어떤가. “어떤 사람에게 물고기를 그냥 준다면 그를 하루만 배부르게 할 것이고,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준다면 평생을 배부르게 할 것이다”라는 잘 알려진 명제(가난을 당장 구제하는 대신 교육과 인프라 구축을 통해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해결에 나서야 한다는)를, 퍼거슨은 근본적으로 바꿔보자고 제안한다. 그냥, 현금을 주자고.
<여성의 일, 새로 고침>에서 읽은 은수미 전 국회의원의 말이 떠올랐다. 어렵다는 하소연에 “내가 더 어렵다”고 대꾸하는, 이른바 ‘고통배틀’을 하는 현실의 한국인들에 관한 질문에 대한 답이다. 노인들에게 청년수당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화를 낸다고 한다. 나도 힘들어 죽겠다고 한다는 것이다. 노인기초연금의 경우 18조원을 만들어야 하는데, 청년들에게는 1조원, 청년수당 제도를 전면적으로 시행하는 데는 3조원 정도가 든다고 한다. 그런데도 “1조원만 사용하면 어떻겠습니까?”는 말에 돌아오는 건 분노라는 것이다. 이런 현상에 대한 은수미 전 의원의 생각은 이렇다. “우리나라는 민주화 이후 황금기가 10년밖에 없었어요. 그때 N세대·X세대가 등장하고 소득이 계속 올라갔죠. 사람 하나에 의자가 하나씩 막 생기던 때. 그런데 딱 10년밖에 못 그랬어요. 해외 선진국을 보면 그게 30년에서 길게는 50년 동안 지속되거든요. 적어도 한 세대가 그런 황금기를 충분히 경험하는 거죠. 하지만 좋은 시절이 10년밖에 없었던 우리나라는 정말로 다들 매번 힘들었던 거예요.” 여유라는 것을 가져본 적 없는 사람들끼리의 아귀다툼이, 이념을 떠나 모든 연령대에서 고통만을 확산시키고 있는 건 아닌가. 분배의 수혜자들이 분배에 반대하는 상황을 어디서부터 바꿔야 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