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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보고] <모아나>, 진화한 ‘디즈니 프린세스’의 탄생
안현진(LA 통신원) 2017-01-13

‘디즈니 프린세스’는 진화한다. 아니, 디즈니 프린세스의 DNA는 애초에 진화하도록 설계됐는지도 모른다. 1990년대 이후 만들어진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주인공들은 관습을 깨고 자신이 원하는 바를 쟁취하려는 주연들이었다. <인어공주>의 아리엘은 뭍에 나가면 죽는다는 아버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위해 목소리를 두 다리와 바꿨고, <알라딘>의 자스민 공주는 아버지인 술탄이 정해준 남편감들에 만족하지 못하고 반항심에 궁 밖에 나갔다 알라딘을 만나 사랑을 싹틔운다. <뮬란>에선 아예 남장을 하고 군에 입대까지 한다. 2000년대 들어 선보인 새로운 공주들은 더 강력했다. <공주와 개구리>의 티아나는 꿈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현실적인 캐릭터였고, <라푼젤>과 <메리다와 마법의 숲> 속 주인공들도 자신의 운명을 찾아가는 개척자들이었다.

이런 디즈니 프린세스의 계보에 새로운 얼굴이 더해진다. 아무리 진화해도 결국엔 백마 탄 왕자님을 기다려온 선배 공주들의 로맨틱한 설정을 싹 거두고, 진짜 당찬 여주인공을 타이틀롤로 내세운 <모아나>다. <인어공주> <알라딘>으로 1990년대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2차 중흥기를 이끌었던 두 감독 론 클레멘츠존 머스커가 메가폰을 잡았다. <모아나>는 이 두 감독이 최초로 시도하는 CG애니메이션인데, 이들의 2009년에 만든 전작 <공주와 개구리>는 디즈니의 마지막 2D애니메이션이기도 하다.

폴리네시아의 평화로운 섬 모토누이, 그 섬을 다스리는 족장 딸 모아나(아우이 크라발호)는 어릴 때부터 바다와 특별한 관계를 맺어왔다. 바다는 모아나를 사랑했고, 모아나도 바다에 이끌렸다. 그러나 바다로 나가고 싶었던 아이는, 섬의 족장이라는 운명을 거스르지 않고 무거운 책임을 어깨에 얹는다. 그리고 알 수 없는 저주로 섬이 병들어 과실은 썩고 물고기가 자취를 감추자 모아나는 안전지대 밖으로 나가 해결책을 찾기로 결심한다. 누구도 가르쳐준 적 없지만 모아나는 작은 배에 몸을 싣는다. 늘 모아나에게 바다에 귀기울이라고 말해주던 할머니의 가호가 뒤따른다. 그리고 진짜 모험은 그때부터 시작된다. 모아나는 바다가 이끄는 대로 배를 맡기고, 바다는 모아나를 반신반인인 마우이(드웨인 존슨)에게로 데려다준다. 모아나와 마우이, 그리고 모아나의 조력자(라고 해야 할지 짐이라고 해야 할지 고민되는) 닭 헤이헤이(앨런 튜딕)는 아름다운 남태평양을 무대로 코코넛 괴물 카카모라, 거대한 집게괴물 타마토아를 물리치고, 여신 테 피티의 심장을 돌려줌으로써 모토누이 섬을 저주에서 구해야 한다.

<모아나> 속 모아나처럼 영화 제작은 여행의 연속이었다. 시작은 5년 전, 우연히 마우이 신화를 접한 두 감독은 존 래시터의 권유로 피지, 사모아, 타히티로 리서치 여행을 떠났다. 춤과 노래를 가까이하고, 선조들과의 유대를 중요시하는 남태평양 원주민들의 삶과 문화에서 매력을 느낀 두 사람은, 마우이의 이야기를 애니메이션으로 발전시키기로 결정한다. 그러나 마우이 신화가 바탕이 된 초고는 9번의 각색을 거치며 모아나가 주인공인 이야기로 정착했다.

여행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라이온 킹> <콘에어> <어거스트 러쉬> 등의 O.S.T에 참여한 작곡가 마크 맨시나와 ‘브로드웨이의 혁신가’ 린 마누엘 미란다, 그리고 오세아닉 뮤직 그룹인 테 바카의 작곡자이자 싱어인 오페타이아 포아이를 영화의 음악을 위해 승선시킨 두 감독은 이들을 거느리고 뉴질랜드의 퍼시픽 뮤직 페스티벌을 찾았다. “드림팀이다. 마크 맨시나는 디즈니 음악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고, 린은 뮤지컬계의 엘튼 존이다. 오페타이아는 폴리네시아인의 솔을 음악에 불어넣었다.”

<모아나>를 위한 마지막 여행은, 모아나의 목소리를 찾는 여정이었다. 600명이 넘는 아역배우들이 캐스팅 디렉터와 만났고, 론 클레멘츠와 존 머스커도 150명은 족히 되는 아역배우들을 비디오로 만났다. 연기 경험이라고는 없는 하와이 출신의 아우이 크라발호는 캐스팅 디렉터가 가장 마지막으로 만난 오디션 지원자였고, 연습 시작 뒤 단 두 시간 만에 재능을 보인 크라발호를 제작팀은 원석을 깎는 과정을 통해 모아나로 만들었다.

하지만 긴 제작기간과 계속되는 여행, 완벽한 팀 꾸리기보다 두 감독이 고초를 겪은 건 CG애니메이션이라는, 두 노장으로서는 완전히 새로운 방식에 대한 도전이었다. “지금까지 우리가 만든 애니메이션 중에 가장 스케일이 크다.” 평생을 손으로 그려 애니메이션을 만들어온 노장 론 클레멘츠가 지난해 11월 샌타모니카에서 열린 <모아나>의 기자회견장에서 꺼낸 말이다. 클레멘츠와 마찬가지로 CG애니메이션의 제작방식을 경험해본 적 없는 존 머스커 감독은 <모아나>를 만들기 위해 가장 필요했던 것으로 인내심을 꼽았다. “캐릭터도, 배경도 미리 다 만들어두어야 했는데, 투자한 시간에 비해 눈에 보이는 결실이 거의 없었다.” 하나에서 열까지 모두 완성시킨 뒤 애니메이터들이 연기하는 캐릭터를 촬영하는 CG애니메이션의 제작방식에 대한 고단함을 보여주는 증언이다. 하지만 <모아나>를 본 관객이라면 CG애니메이션이 일궈낸 기술적 성취에 놀랄 것이다. <모아나>의 또 다른 캐릭터인 바다의 움직임은 CG애니메이션이 아니었다면 그토록 유려한 동시에 유머러스하게 이루어지지 못했을 것이며, 두 감독이 입을 모아 꼽는 살아 있는 머리카락의 표현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물에 젖고, 바람에 날리고, 물속에서 하늘거리고, 모래밭을 뒹군 뒤 머리카락 사이에 모래알이 낀 모습까지도 현실과 다를 것 없이 ‘리얼’하게 구현됐기 때문이다.

“드레스를 입고, 동물을 거느리면 그게 바로 공주야.” 장난꾸러기 반신반인 마우이가 돌멩이를 쪼는 닭 헤이헤이와 동행한 모아나에게 툭 던지는 한마디에 관객은 폭소할 것이다. 이번에야말로 진짜 공주가 아니란 걸 증명해보라며 단단히 벼르는 관객의 마음을 정조준했기 때문이다. <모아나>는 이전까지의 디즈니 애니메이션들과 비슷한 부분에서는 반갑고, 다른 부분에서는 새로운 재미로 다가올 것이다.

브로드웨이의 혁신가

<모아나> 음악감독 린 마누엘 미란다

지난해 11월 열린 <모아나>의 기자회견에서 가장 인기 있었던 이는 영화에 음악감독으로 참여한 린 마누엘 미란다였다. 한국 관객에게는 조금은 낯선 이름이지만 힙합 뮤지컬 <해밀턴>의 작곡자이자 주연배우인 미란다는 지금 브로드웨이에서 가장 뜨거운 인물이다. <해밀턴>은 미국 10달러 지폐에 그려진 얼굴이자 미국 최초의 재무장관인 알렉산더 해밀턴에 대한 이야기로, 린 마누엘 미란다는 힙합과 랩, 현대적인 가사와 대사로 뮤지컬 <해밀턴>을 만들었다. 2015년 2월 오프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된 <해밀턴>은 그해 8월 브로드웨이에 입성했고, 2016년 토니상 시상식에서 최우수작품상, 감독상, 음악상 등 모두 11개 부문을 휩쓸었다.

“단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인어공주>를 만든 감독들이기 때문에” <모아나>에 합류했다는 미란다는 기자회견 내내 행복해 보였다. 어떻게 곡 작업을 했느냐는 어린 기자의 팬심 어린 질문에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 뿐이었다. 절대로 <Let It Go>랑 비슷해선 안 돼!”라고 답하고는 <Let It Go>를 불러젖혔다. 또 어떻게 드웨인 존슨을 노래 부르게 만들었냐는 질문에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는 레슬러 시절부터 기타 들고 노래하던 사람이었다. 어떻게 알았냐고? 모든 답은 유튜브에 있다”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이제는 <인어공주>가 아닌 <모아나>가 그가 가장 좋아하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될지 모른다. 미란다는 <모아나>의 첫 작업일에 아빠가 된다는 사실을 알았고, <모아나> 작업 중에 <해밀턴>의 런던행이 결정됐으며, <모아나>의 미국 개봉에 즈음해 그의 아들 세바스천이 두살이 됐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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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