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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메타 게임
이다혜 2017-01-09

<약한 연결> 아즈마 히로키 지음 / 북노마드 펴냄

아즈마 히로키는 <체르노빌 다크 투어리즘 가이드>를 쓴 작가로, <후쿠시마 제1원전 관광지화 계획>도 펴낸 바 있다. 전자는 한국에서도 출간되었는데, 원자력발전소 사고현장을 관광지로 소비하는 게 올바른가에 대해 생각해볼 거리를 던져주었다. 아즈마 히로키는 당연히 그래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원자력발전소 사고와 향후 가동여부와 관련된 일반인들의 공감대를 넓힐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노벨문학상을 받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체르노빌의 목소리>(체르노빌 방사능 유출사고로 인해 피폭당한 벨라루스 사람 100여명을 인터뷰했다)를 마무리하면서 그렇게 원폭 피해 현장을 관광하는 문화에 대한 비판적인 의견을 적은 바 있다. 관광지화되면 그저 구경거리로 전락할 위험을 막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지만 또한 일반인들도 사고현장의 모습을 가까이서 경험하고 원자력 발전의 위험을 실감할 수 있으리라. 아즈마 히로키는 논란의 여지가 있는 이런 주장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아즈마 히로키의 신간 <약한 연결>은 큰 틀에서 ‘검색’과 ‘여행’을 다룬다. 현대인이라면 매일 눈뜬 그 순간부터 스마트기기를 열고 검색을 하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해도 과언이 아닐 텐데 그 검색어가 모르는 것을 찾아가는 여정 같아 보이지만 사실 아는 한도 내에서만 행해지는 행위라는 점을, 아즈마 히로키는 지적한다(우리는 알지 못하는 것을 검색할 수 없다). 나의 세계를 만들고 넓히는 방법, 검색의 범주를 넓히는 법은 여행으로 가능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으로, 여기서 다시 역사와 기억, 그리고 관광지화에 대한 논의가 흘러나온다.

제목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면 미국의 사회학자 마크 그라노베터가 주창한 ‘약한 유대관계’라는 개념을 차용한 것이다. 깊이 아는 사이보다 얕게 아는 사람으로부터 직장을 소개받았을 때 더 만족감이 높다고.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것과 환경이 자신에게 요구할 것으로 예측되는 것이 일치할 때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살아갈 수 있지만 문제는 권태. 이럴 때 환경을 의도적으로 바꿔주자는 것이다. 환경이 요구하는 자신의 모습에 정기적으로 노이즈를 끼워넣는 방법으로서의 여행. 발상의 전환을 경험할 수 있는 책이다, 대체로는.

아즈마 히로키의 그간의 관심사에 걸맞게 후쿠시마, 아우슈비츠, 체르노빌에 다녀오는 이야기가 있는데, 한국도 한 챕터가 할애되었다. 난생처음 해외 여행지였던 곳이 1991년 한국이었는데, 당시 반일정서에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한국인과 일본인이 개인으로서 서로를 이해하는 것과 국민으로서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것이 괴리된 채 공존하는 경험이었다고. 그리고 이 챕터에서는 말보다 사물이 중요하다는 주장이 이어진다. 말이 아닌 사물이 중요한 이유는, 메타 게임을 멈추기 위해서이며, 한국과 일본을 둘러싼 근현대사에서 말로 진실을 찾아내려는 일의 무용함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구일본군이 강제 연행한 종군위안부”에 대한 논쟁이 ‘강제 연행’과 기록물의 사실 여부를 비롯한 말을 둘러싸고 시간을 끄는 상황에 대해, 아즈마 히로키는 “말 위에 말을 더해가는 메타 게임은 결코 끝나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이같은 경우는 성희롱이나 상사의 괴롭힘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첨언한다. 증언이 엇갈린다면 어떻게 하면 좋은가. 아즈마 히로키는 “제3자가 할 수 있는 것은 어딘가에서 진실 탐구를 그만두고 잠정적인 사실을 확정하여 일정한 처벌을 내림으로써 ‘끝난 것’으로 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결론 짓는다. 즉, ‘역사 인식을 공유할 수 없다는 인식을 공유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은 한국의, 일본은 일본의 주장이 있다는 것이다. 아즈마 히로키는 아우슈비츠에서 뭘 본 것일까.

나는 이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아즈마 히로키가 ‘제3자’에 감정이입하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그리고 바라기는, 내가 ‘제3자’가 되는 상황에서 적당한 타협점을 잡아 ‘끝난 것’으로 하지 않았으면 한다. 범죄가 있었는데, 거기서 가해자도 인정할 타협점을 찾아야 하는가? 아즈마 히로키가 하고 있는 것이야말로 메타 게임인 것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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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 게임 <약한 연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