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초. 아침 출근길 지하철역 입구의 진풍경은 무가지를 나눠주고 그것을 받는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지하철 객실의 선반에는 읽고 버린 무가지와 조간신문들이 쌓여 있었다. 지하철역 앞에서 받은 무가지를 다 읽고 선반 위의 신문들 중 하나를 골라 펼쳐보던 나는 창간한 지 얼마 안 된 신문 <스포츠 투데이>의 만화 연재 페이지에 <고우영 수호지>가 새롭게 연재되는 것을 보았다. 과거 <일간 스포츠>에서 연재를 하다 외압에 못 이겨 연재를 중단한 지 20여년 만에 다시 연재를 시작한 것인데 과거 연재를 중단한 부분 이후의 이야기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아예 처음부터 싹 다시 그린 것이었다. 게다가 1970년대 <일간 스포츠> 연재 당시 신문 한 귀퉁이 협소한 지면에 실렸던 모습이 아니라 신문 한 페이지 전체를 차지하고 있었다. 넓고 여유로운 화면은 물론 과거에 비해 만화 검열의 압박이 많이 사라진 시대에 새롭게 그려진 <고우영 수호지>였다. 그렇지만 새로 연재를 시작한 <고우영 수호지>가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림체가 너무나 달라졌기 때문이었다. 1970년대 초 그의 극화체 만화들은 쩍쩍 갈라지는 대쪽 같은 그림체였다. 힘찬 펜선이 내리찍히고, 컷 안에서 사내들의 근육과 이마의 핏줄이 불끈거렸다. <임꺽정> <대야망> <수호지> <일지매>의 그림체가 그러했다. 이후 <삼국지> <서유기> <초한지> <열국지>가 가장 전성기 때의 그림체로 극화체와 만화체가 스토리의 전개에 따라 심각한 상황과 유머러스한 상황에 맞춰 자유자재로 그려졌다. 작품 전체에 두 그림체가 너무도 자연스럽게 녹아 있는 것이었다.
과거의 아름다움을 잃다
2000년대에 연재를 시작한 <고우영 수호지>는 너무 날려서 그렸다는 생각이 들 만큼 엉성한 만화체의 그림들이었고, 만화의 내용도 조증이라는 생각이 들 만큼 두서가 없었다. 그뿐 아니라 과거 <일간 스포츠>에 연재되던 <고우영 수호지>에서는 한 페이지 정도로 깨끗하고 정확하게 끝내버린 에피소드가 의미 없이 크기만 한 컷들의 나열로 대여섯 페이지나 할애해 장황하게 그려지고 있었다. 촘촘한 벌집을 연상시키거나 정보의 집대성인 이집트 벽화 같은 고우영의 신문만화가 자유로운 지면에서 그 아름다움을 잃어버린 것이다. 1970년대의 <고우영 수호지>는 처음 시작을 청석판을 여는 프롤로그를 과감하게 빼버리고 쥐새끼 같은 건달 고구가 귀신처럼 공을 차는 재주로 얼마나 어이없이 고급관리로 올라가는지를 신문 연재 2회차 분량으로 끝냈으나 2000년대의 <고우영 수호지>에서는 이 에피소드를 70여 페이지에 걸쳐 장황하게 그린다. 그뿐 아니다. 1970년대 <고우영 수호지>의 반금련 에피소드에서는 반금련의 아름다움과 욕정을, 볼에 사선을 몇 가닥 그려 얼굴이 발그레하게 달아오르거나 봄날 햇살 아래 기지개를 켜는 것으로 단숨에 표현하는 반면 2000년대 <고우영 수호지>에서는 반금련의 벌거벗은 모습을 그리는 것이나 반금련의 얼굴을 고우영이 잘 쓰지 않던 빅 클로즈업으로 그리는 것들이 과하다는 생각이 들 뿐 과거의 반금련에 비해 덜 매력적이었다. 물론 새로운 <고우영 수호지> 역시 고우영의 작품인지라 매력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노지심의 벌거벗은 뒷모습을 적나라하게 그려 술에 취한 노지심의 폭력성을 단숨에 표현하기도 하고 1970년대판에서는 송강의 캐릭터를 <고우영 삼국지>의 유비와 똑같이 작가 자신의 얼굴로 그려 우유부단하고 겁 많은 서민의 얼굴로 표현했지만 2000년대판의 송강은 박정희를 연상시키는 캐릭터로 그려 민중을 위해 반란의 우두머리가 되었으나 사실은 권력욕이 강한 모순적인 캐릭터로 표현해내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아쉬웠다. 1970년대의 시대 상황이 고스란히 담긴 걸작 <고우영 수호지>는 버림받아 사라져버렸고, 세월이 흐른 후 작가가 가슴속에 품었던 한이 지나치게 발현되어 균형을 잃고 탄생한 기괴한 <고우영 수호지>가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통제와 탄압의 시대를 거치며
나는 내 기억 속의 1970년대 <고우영 수호지>를 다시 읽어보고 싶었다. 과거에 고우영이 고군분투하며 그렸던 고통의 결정체를 다시 한번 감동하며 읽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1970년대 <고우영 수호지>는 판본이 너무나 많았고 모두 절판되어 있었다.
첫 번째 판본은 1970년대 초 <일간 스포츠>에 연재한 신문만화이고, 두 번째가 기획출판 김데스크에서 1973년에 출판한 각권 50여 페이지 10권짜리 단행본 김데스크판 <고우영 수호지>다.
이듬해 김데스크에서는 표지를 달리하여 1974년도 김데스크판 <고우영 수호지>를 출판하였다. 신문 연재 원본은 당시 신문을 도서관에서 열람하여 확인할 수 있겠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당시 한국일보사의 고우영 작업실 책상에서 데스크로 올라가기 전 그가 그린 진짜 <고우영 수호지>는 이 세상에 없다. 데스크에 올라가 검열을 받은 후 그는 다시 자기 책상으로 돌아와 칼과 풀을 들고 문제가 된 컷을 칼로 잘라내고 다시 그려 풀로 붙이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땜빵한 만화가 신문 연재본이고, 1973년 출판된 김데스크판이다. 그리고 1980년대 초 우석출판사에서 전 3권으로 <고우영 수호지>를 출판했다. 우석출판사는 고우영의 만화들을 모두 단행본으로 출간한 출판사인데, <고우영 수호지>를 표지만 바꿔 두어 차례 재발간했고, 1990년대에는 ‘고우영 만화 대전집’이라는 기획으로 대전집의 6, 7, 8권 세권을 <고우영 수호지>로 출판했다. 우석출판사의 판본은 악명이 자자하다. 고우영의 동의를 얻었는지 모르겠지만 1980년대 정권 치하의 검열에서 문제가 된 부분들을 고우영이 아닌 다른 이의 손으로 다시 그린 조잡한 컷들이 만화 전체의 40% 이상을 차지한다. 1974년 긴급조치 이전에 출판된 <고우영 수호지>가 그나마 신문 연재 당시의 원본을 유지했지만 1980년대 동토의 왕국 치하에서 <고우영 수호지>는 너덜너덜해지고 말았다.
생각해보면 별것도 아닌 수많은 장면들이 고우영의 그림이 아닌 조잡한 그림체로 다시 그려져 있다. 정말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술 취한 노지심이 절 마당의 거대한 노송을 뽑아버리는 장면이 있는데 이런 장면마저 다시 그려 넣었다. 40여년이 지난 지금도 잊을 수 없는 명장면이 있다. 성숙해진 반금련이 봄 햇살을 받으며 기지개를 켜는 에로티시즘이 넘치는 나른한 풍경의 장면은 아예 삭제되어버려 볼 수가 없다. 결국 이 판본은 대한민국 만화를 탄압한 정권과 그의 눈치만 보며 돈벌이에만 급급해 만화 작품을 지키려는 노력은 전혀 하지 않았던 출판사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기록한 기록물로서만 가치가 있을 뿐이다.
작가는 얼마나 분통이 터졌을까? 1970년대 <일간 스포츠>의 연재 판본도, 80년도에 출판한 판본도 그의 눈에는 너덜너덜 기운 상처의 기록처럼 보였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그는 다시 <고우영 수호지>를 그렸고 오호통재라! 마음은 급한데 병마가 그의 생명을 갉아먹고 한쪽 눈까지 보이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고우영이 그린 만화들의 모든 단행본은 작가가 얼마나 많은 탄압 속에서 그림을 그렸는가가 기록된 기록물이다. <고우영 수호지>뿐만 아니라 애니북스에서 출판된 <고우영 삼국지>를 찬찬히 보면 그림체가 완전히 다른 컷들을 컷들 사이사이에서 발견할 것이다. 그것들은 모두 과거에 검열에 걸려 칼로 오려냈다가 작가가 다시 그려 넣은 컷들을 애니북스에서 출간할 때 작가가 그때의 의도를 되살려 다시 그려 넣은 것들이다. 만화가가 펜과 잉크, 종이 외에도 칼과 풀이 있어야만 만화를 그릴 수 있었던, 그런 과거의 한 시절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