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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다이빙벨> 배급한 김일권 시네마달 대표
정지혜 사진 최성열 2017-01-02

심증과 정황은 이미 충분하다. 이젠 물증이다. 특검도 문화예술계의 블랙리스트의 실체를 파헤치기 위해 수사에 들어갔다. 그에 앞서 세상에 공개된 고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업무 수첩(이하비망록)이 또 하나의 중요한 단서였다. 비망록에는 세월호 관련 다큐멘터리 <다이빙벨>(2014)에 대한 언급이 있다. <다이빙벨>을 상영한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와 배급사 시네마달의 이름이 확인됐다. 그 일부를 옮겨보자. ‘長’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지칭), ‘시네마달 內査(내사)’ . 시네마달은 2008년 문을 열고 독립다큐멘터리를 집중 제작·배급해왔다. 독립영화에 관심 있는 독자들에게는 그나마 낯이 있겠지만 상당히 많은 영화 관객에게는 이름조차 생소한 곳이다. 대표를 포함해 전 직원이 5명인 독립 제작사에 청와대가 직접 내사까지 지시한 것이다. 시네마달의 김일권 대표가 <씨네21>과의 인터뷰로 이와 관련된 내용을 처음으로 전한다. 그간 <다이빙벨>과 관련해서는 공식적인 인터뷰를 일체 하지 않았다. 김일권 대표가 이 시점에 <다이빙벨> 배급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말을 하게 된 이유를 들을 수 있었다. 인터뷰는 <다이빙벨> 배급 이후 회사 규모를 대폭 줄여 새로이 정착한 종로구 명륜동의 시네마달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청와대의 시네마달 내사와 관련해서 처음으로 인터뷰한다.

=이런 유의 문제라면 사실 <다이빙벨> 배급 이전부터 있었다. 이명박 정권 말기부터 멀티플렉스 극장 상영 지원사업에서 시네마달은 계속해 배제돼왔다. 그땐 적어도 노골적이진 않았다. 박근혜 정부에 와서는 ‘세월호’와 관련된 영화나 반정부적, 반재벌인 내용의 영화라고 판단되는 작품들뿐 아니라 시네마달 이름으로 지원한 사업들에서 줄줄이 떨어졌다. ‘시네마달은 어차피 지원사업에 지원해도 안 될 테니 회사명을 바꿔 지원하라’는 말까지 들었다.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가 시네마달이나 내 이름이 들어가 있는 지원사업의 내용을 정리해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에 제출한 걸로 안다. 이제야 비망록을 통해 확인됐을 뿐 이런 상황은 이미 알고 있었다.

-비망록 2014년 9월5일 메모에는 청와대가 당시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간사였던 신성범 새누리당 의원에게 국감장에서 <다이빙벨>의 영화제 상영과 관련해 성토를 당부했음이 드러났다(주석1). 9월20일에는 <다이빙벨>의 영화제 상영을 예상했고, <다이빙벨> 상영, 대관료 등 자금원을 추적하고 실체를 폭로하라고 돼 있다. 그때 시네마달의 상황은 어떠했나.

=2014년 9월 <다이빙벨>의 배급을 결정하고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을 준비하고 있었다. 영화제 상영 때는 매진이 돼 가보니 좌석이 텅 비어 있기도 했다. 2014년 10월23일 개봉 때 멀티플렉스관 단 한곳도 스크린을 열어주지 않더라. 개봉 첫날 전국 20개 극장에서 상영했다. 어떤 극장들인지 문체부를 통해 청와대에 보고된 걸로 안다. 이때 이들 극장이 영진위나 문체부로부터 지원금을 받았는지 여부까지도 조사됐다. 정확히 말하자면 청와대는 <다이빙벨>을 ‘세월호’ 그 자체로 본 거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세월호는 큰 아픔이었고, 해결돼야 할 점들이 많은 투쟁 중인 사안이었다. 정부가 세월호와 관련된 일이라면 어떤 수를 써서라도 막겠다는 강한 액션을 취한 거다. 세월호야말로 현 정권의 도덕성과 정치력의 아킬레스건이었으니까. 그걸 건드리려 한다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거다. 국가의 문화정책 전체 파이에서 독립영화 지원이 얼마나 되겠나. 그 미미한 지원 안에서 시네마달처럼 영세, 미생 기업까지 털어서 김기춘과 청와대로 보고한다는 게 얼마나 웃긴 일인가. ‘문화융성, 창조경제’를 외치던 이들이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았던 곳인데 말이다.

-비망록에는 10월23일 ‘시네마달 內査(내사)’가 적혀 있다. 이와 관련해 시네마달이 파악하고 있는 구체적인 증거들이 있다면 밝혀달라.

=불행하게도 시네마달이 너무 가난해서 뒤져서 뭐가 나올 만한 곳간이 아니다. (웃음) 함께 일하는 동료들의 노동력을 기반으로 운영비도 안 나오는 수익 구조를 유지한 지 꽤 됐다. 통장을 뒤졌다고 하는데 개인정보열람 조회를 해서 그걸 증거 자료로 특검에 제출할까 싶기도 하다. 직원들 휴대폰 감청 기록도 있다. 대부분이 <다이빙벨> 개봉 전후와 이후 시네마달이 배급한 세월호 관련 다큐멘터리들인 <나쁜나라>(개봉 2015년 12월3일), <업사이드 다운>(개봉 2016년 4월14일)의 개봉 전후에 집중됐다. 회사로서는 각종 지원사업에서 노골적으로 배제된 것이야말로 더 큰 타격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경제적으로 힘들어지니까 할 수 있는 일의 범위도 줄어들고 직원들도 위축될 수밖에 없다. 돈줄을 끊어버리는 방식이다. <다이빙벨> 전후로 정부의 영화 정책에 상당한 변화가 생겼다. 가족영화제작지원사업(주석2), 예술영화 유통·배급 지원사업(주석3)이란 희한한 것들이 생겼다. 독립영화계에 가해진 박근혜 정부의 탄압과 밀어붙이기의 실제적인 강도, 그 데미지가 상당하다.

-<다이빙벨>을 둘러싼 외압과 파장은 영화의 배급 이전에 이미 어느 정도 예고돼 있었던 셈이다. 그럼에도 배급을 포기하지 않은 이유가 분명 있을 것이다.

=<다이빙벨>은 세월호 참사를 다룬 첫 번째 다큐멘터다. 무조건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세월호는 나에게도 충격적인 참사였고, <다이빙벨>이 진상을 규명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방식이길 바랐다. 참사 이후 빠르게 만들어진 다큐멘터리인 만큼 그에 따르는 변수도 많을 거라 예상했다. 정부의 탄압, 관객에게 세월호 참사의 아픔을 올곧게 전달할 수 있을지의 여부, 세월호 문제보다 배급 과정에 논란이 집중되지 않을까와 같은 우려였다.

-배급에 대한 논란은 어떤 것이었을지 좀더 구체적으로 들어보고 싶다.

=영화제에서 상영이 가능할지, 이후 극장 상영의 가능성, 멀티플렉스관이 관을 열지 여부 등의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가 문제였다. 어째서 <다이빙벨>은 극장에서 제대로 상영될 수 없느냐는 문제를 전면에 내세울 수도 있었다. 표현의 자유나 멀티플렉스의 독점이라는 문제를 끄집어내면서 말이다. 유가족 중심으로 세월호 진상 규명이 이뤄져야 하는데 자칫 배급 이슈에만 관심이 쏠릴까 우려됐다. 세월호 진실 규명 싸움에 일조할 수 있는 배급의 방향을 최우선으로 삼았다. 지역의 단관 극장들에 연락해 상영관을 확보했고 유가족들과 함께 간담회 형식의 관객과의 대화를 무수히 많이 진행했다. 이후 공동체 상영을 했는데 이런 방식이 <나쁜나라> 개봉 때도 참고가 됐다.

-<다이빙벨>과 관련한 일련의 구체적인 외압 속에서 이제야 공개적으로 이 문제에 대해 말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결과적으로는 촛불의 힘이 컸다고 하겠다. 그 거대한 힘이 차기 정권, 다음 사회에 대한 구체적인 밑그림을 그리게 하고 있다. 또 문화예술계가 문화계 블랙리스트와 관련해 검찰 고발을 했고 영화계도 영진위 위원장과 사무국장을 고발했다. 정치 외압과 게이트들에 부역한 자들에게 책임을 분명히 물어야 한다. ‘좋은 게 좋은 거’라는 패배의식에 젖어서 한국 사회가 여기까지 온게 아닌가. 합리적인 근거들, 정황들이 있었지만 그것만 갖고 발언하는 게 바람직해 보이지 않은 측면도 있었다. 피해자인 양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또 배급 측면에서 보자면 멀티플렉스가 다양성영화 배급을 위해 노력하는 면도 분명 있다고 인정한다. 이들 역시 시네마달의 동료라고 생각한다. 적대적인 관계로 갈 수 없고 그들과 긴장과 협력 속에서 파열을 내야한다. 합법적인 자본의 영역이라는 걸 만들어가야 한다. 지금까지 단 한번도 시네마달이 제작한 영화에 멀티플렉스가 투자하거나 멀티플렉스가 파트너십을 맺으며 시네마달의 영화를 배급해준 적이 없다. 왕따나 게토화되고 있는 것 같아 아쉽다. 반대로 보면 아직 시네마달이 성과를 내야 할 부분이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지난 시간의 억울함을 말할 수는 있겠지만 회사 경영 상태가 2년 넘게 위태롭다보니 계속해나가려면 일단 버텨야 했던 부분도 컸다.

-<다이빙벨> 이후에도 <나쁜나라> <업사이드 다운> 등 계속해서 세월호 다큐멘터리를 배급하고 있다.

=탄압과 구속을 받으며 싸워온 독립다큐멘터리의 역사가 있지 않나. 독립다큐멘터리가 극장에서 개봉까지 하는 건 비교적 근래의 일이다. 그 연장선에서 보자면 시네마달이 오히려 보다 많은 작품을 소화하지 못하고 있다. 여러 제약 중에서 홍보할 수 있는 작품의 수가 정해져 있다면 그 시기에 주목하거나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영화들을 꼭 배급할 수밖에 없다. 그게 <다이빙벨> <나쁜나라> <업사이드 다운>이었다. 세월호 관련 영화들, 반정부적 성격의 영화들이 꾸준히 배급되면서 만들어낸 가능성의 공간이 분명 있다. 사회적으로 ‘이 정도의 영화를 수용한다고 해서 정권이 흔들리고, 나라가 망하진 않는다’는 판단이 가능해지는 거다. 그런 면에서 <다이빙벨>이 성숙된 사회를 향한 일종의 디딤돌 역할을 했다고 본다. <자백>(2016), <무현, 두 도시 이야기>(2016) 등 반정부적이고 시사적인 다큐가 유의미한 관객 스코어를 냈다는 건 영화 역사상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각 영화의 특성, 시대적 분위기라는 게 있었겠지만 <다이빙벨>을 둘러싼 일련의 과정에도 그 역할이 분명있었다.

-독립영화 제작, 배급을 해오면서 꾸준히 영진위의 독립영화 정책 방향에 문제를 지적해왔다. 어떤 식의 변화를 모색해볼 수 있겠나.

=현재 영진위의 영화진흥의 방향은 산업적인 측면에 맞춰져 있다. 독립영화 역시 산업적인 성과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겠으나 반대로 산업적인 성과가 독립, 예술영화의 정체성을 위협할 수 있다. 영진위 안에 상업영화와 독립영화 진흥책이 뭉뚱그려져 있는 방식이 문제가 아닐까. 영진위 내에서 독립영화 관련 부분이 아예 독립될 필요도 있다. 예컨대 독립영화진흥위원회(가칭)같은 걸 만드는 것도 한 방법이다. 영진위가 산업적 측면뿐 아니라 문화 공공성, 다양성 진흥을 하겠다고 한다면 새로운 구조에 대한 발상이 필요하다. 양질의 영화산업 육성의 비전일 것이다.

고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 업무 수첩 중 <다이빙벨> 관련 부분.

출처: 전국언론노동조합

주석 1 2014년 10월7일 문체부 정기국감 때 <다이빙벨> 상영 관련 압력 행사가 논란이었다. 당시 김회선 새누리당 의원은 “문화예술 등 공익분야가 정치 투쟁의 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 표현의 자유도 법 질서 내에서 보장돼야 한다”라며 <다이빙벨>의 영화제 상영을 비판했다. 서용교 새누리당 의원 역시 “작품성 없는 영화들이 흔히 쓰는 게 ‘노이즈 마케팅’ 수법”이라고 했다. 당시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은 관련 질의에서 부산국제영화제쪽에 <다이빙벨>을 상영하지 못하도록 압력을 가한 일이 없다고 말했다.

주석 2 영진위는 한국형 가족영화가 실종됐다는 이유로 가족영화제작지원사업을 진행 중이다.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배급사 순위 0.5% 이상에 해당하는 회사와 배급계약을 체결해야 한다. 또한 일반 상업영화 투자 조건과 다를 바 없는 영화 제작에 영진위가 직접 지원하는 것에 대한 비판이 거세다. 영진위는 2016년 가족영화제작지원(3편)에만 24억7천만원을 쏟아부었다. 반면, 독립영화제작지원(51편)은 12억원, 예술영화제작지원(3편)은 19억원에 그쳤다.

주석 3 위탁수행자가 연간 48편 이내의 한국 예술영화를 먼저 선정하고 그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에 지원금을 지급한다. 영화 선정 단계에서의 사전 검열이며 극장 프로그램의 자율성을 해친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위탁수행자의 전문성도 의심된다. 2017년 위탁자 선정은 아직 진행되지 않았다. <씨네21> 확인 결과, 영진위는 “재공모를 거쳤음에도 지원 업체가 단 한곳 뿐이며 2017년도 세부사업 계획이 미확정이다. 영화계의 문제제기를 수용해 사업 방식이 바뀔 수 있다”고 답했다. 사업 방향도 수립하지 않은 채 공모부터 진행했다는 의심이 드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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