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1월19일 오후, 박근혜 퇴진 4차 범국민행동을 앞둔 광화문 네거리. 광장과 차도와 인도가 민주주의를 실천하려는 뜨거운 열기로 가득 차기 전 작은 소란이 벌어졌다. 두망에 3천원짜리 귤을 팔던 초로의 노점상은 울 지경이었다. 까만 점퍼를 입은 종로구청 단속반원들은 가차 없었다. 좌판이 걷어차였다. 떼구르르, 작은 귤들은 야속하게 흩어지며 차도로 굴러갔다. 그 녀석들이 마치 길가에 내놓은 어린 새끼라도 되는 듯 달려가 품에 주워 담던 남자는 터져버린 귤을 바라보다가 웃통을 벗어버렸다. 길 가던 시민 서넛이 너무 심하게 단속하는 거 아니냐며 항의하자 움찔한 단속반원들은 경찰을 불렀다. 가재는 게 편이었다.
정복을 입은 두개의 손이 웃통 벗은 남자의 양손을 거세게 잡았다. 한손은 그를 끌고 가려는 손이었다. 또 한손은 남자가 끝내 움켜쥔 바구니를 빼앗으려는 손이었다. 이것이 법이라는 거였다. 당신을 한번 봐주기 시작하면 대체 누가 법을 지키겠냐는 거였다. 구구절절 옳은 소리였다. 심지어 우리도 이런 일 원해서 하는 게 아니라는 하소연까지. 틀린 말이 없었다. 밥그릇 걷어차는 법을 아는 이들이었다. 위에서 시켜서 할 뿐이고, 그들 또한 먹고 살아보려는 발버둥일지니 마냥 매도하기는 어려우리라. 하지만 묻자. 욕지거리를 하라고, 좌판을 걷어차라고, 눈물에 침을 뱉으라고 시켰단 말인가.
풍경은 교체됐다. 언제 그런 소란이 있었냐는 듯 광화문 네거리는 촛불의 열기로 가득 찼다. 민주주의 회복! 헌정농단 처벌! 분노가 아름답게 타오른 밤이었다.
박근혜의 계절은 가난한 이들의 삶이 파괴된 계절이었다. 가난한 이들의 삶이야 부서지는 게 일이라지만, 박근혜의 계절은 잔인했다. 무도했다. 파렴치했다. 더는 두고 볼 수 없어 그 계절을 끝장내려는 광장에서조차 가난한 이들의 삶은 바스라지고 있었다. 풍경의 교체 안에 풍경의 지속이 있었다. 권력의 교체 안에 권력의 지속이 있었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