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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슨 앤더스 감독의 <쉐드와 트루디>
2002-04-04

살아남은 여자들은 위대하다

Gas Food Lodging 1992년, 감독 앨리슨 앤더스 출연 브룩 아담스 <EBS> 4월6일(토) 밤10시

앨리슨 앤더스라는 이름은 그리 친숙하지 않다. 여성감독인데다 히트작을 낸 경험이라곤 없는 탓이다. 하지만 그녀가 TV시리즈 <섹스 & 시티>의 여러 에피소드를 연출했음을 알게 되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앨리슨 앤더스는 작품보다 기구한 인생역정으로 유명하다. 어려서 친부를 잃고, 나이 먹은 뒤 계부에게 폭행을 당한 적이 있으며 심지어 일정기간 정신병원에 입원했던 환자이기도 했다. UCLA에서 영화를 전공한 앨리슨 앤더스에게 영화는 곧 자기치유의 수단이자 여성들에게 영화라는 ‘벗’을 소개하고자 했던 과정이었을지도 모른다. 앤더스 감독의 <쉐드와 트루디>에 대해서 어느 평자는 “영웅이나 승리자가 아닌, 생존자로서 여성을 표현한” 영화라고 꼭 집어 풀이했다.

세명의 여성이 있다. 서로 다른 연령이고 개성도 다르다. 그런데 이들에겐 어딘가 공통점이 있다. 막내 쉐드는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나고자 영화에 몰입한다. 영화와 현실을 혼동하는 쉐드는 아버지가 있는 정상적인 가정을 꿈꾼다. 한편, 트루디는 실연을 당한 뒤 어머니와 번번이 충돌한다. 어머니 노라는 두딸을 잘 키워보려고 하지만 매사에 반항적인 트루디와 제대로 대화를 하기란 어렵다. 거리에서 만난 남자와 사랑에 빠진 트루디는 임신을 하게 되고 노라는 딸이 자신과 같은 길을 밟지 않을까 노심초사한다.

<쉐드와 트루디>는 놀랍다. 이유는 몇 가지 있는데 인디영화임에도 <쉐드와 트루디>는 주류영화가 닿을 수 없는 영역에 성큼 도달한다는 것이다. 난해한 실험이나 도발적 스타일을 뽐내는 대신, 영화는 전통적인 드라마의 틀 안에 안주하기를 꺼려하지 않는다. 모녀가 비슷한 운명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나 소녀였던 여성이 차츰 성장해간다는 것은 지나칠 정도로 관습적인 구석이 있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 관습적 속성이 쉽게 무력화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쉐드와 트루디>의 캐릭터 구축력은 막강하다. 귀 먹은 여성이 바닥의 울림을 감지하고 춤을 추고, 방황과 좌절을 거듭하던 트루디가 어느 날 자상하게 접근하는 남자에게 마음을 허락하는 등 영화 속 캐릭터들은 조합된 것이 아니라, 생생하게 살아 숨쉰다. 쉐드의 친구들도 하나같이 독특한데 아마도 게이 캐릭터로 짐작되는 남자친구 등 주변인물에 대한 스케치 역시 남다르다.

주지하듯 1990년대 미국 인디영화에서 ‘가족’은 흥미로운 소재다. <인형의 집으로 오세요>와 <버팔로 66> 등의 영화에서 우리는 해체되고 분열되어 있으며 증오로 얼룩진 가족의 초상을 접한 적이 있다. 그에 비하면 <쉐드와 트루디>는 온건하다. 영화를 좋아하는, 그래서 꿈과 현실, 그리고 몽상과 기록 사이에서 방황하던 소녀는 현실을 이해하게 되고 가족의 문제를 직시한다. 어머니와 딸은 서로 갈등을 겪지만 같은 삶을 공유하게 되었음을 받아들인다. <쉐드와 트루디>는 여성의 화합과 껴안음을 긍정적으로, 그리고 따뜻하게 그려낸다. 쉐드라는 캐릭터가 앤더스 감독을 쏙 닮아 있다고 하면 억측일지 모르지만, 영화를 보면 그런 확신이 든다. 김의찬/ 영화평론가 wherever70@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