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하는 일을 할 것인가 좋아하는 일을 할 것인가. <양과 강철의 숲>은 좋아하는 세계에 우연히 발들인 후, 부족한 재능을 채우고자 애쓰는 평범한 청년 도무라의 직업 분투기다. 고등학교 2학년 시절, 도무라는 학교 체육관에서 우연히 조율사 이타도리가 피아노를 조율하는 걸 지켜보게 된다. 조율을 마치고 가볍게 친 피아노 소리에서 도무라는 가을 숲냄새를 느낀다. 도무라의 인생이 바뀌던 순간이다. 욕심도 꿈도 없던 도무라는 그날로 조율사의 꿈을 품는다. 소설에는 조율 전문학교를 수료한 도무라의 견습생활이 중점적으로 묘사된다. 피아노의 건반을 누르면 양철로 된 해머가 강철로 된 현을 두드리며 소리를 낸다. 이런 피아노의 구조와 원리, 그리고 도무라가 꿈꾸는 세계에서 책 제목, ‘양과 강철의 숲’이 나왔다.
책에서 눈여겨볼 것은 일을 대하는 도무라의 태도다. 그는 고객과 상사의 한마디 한마디에 집중한다. 조율을 마치고 나오면, 차를 타자마자 그날의 작업을 메모한다. 피아노에도 클래식에도, 문외한이었던 도무라는 피아노 소리에 친숙해지기 위해 한 가지 음악을 다양한 연주자의 버전으로 챙겨 듣는다. 일이 없을 땐 사무소의 피아노를 반복해서 조율하고, 조율 도구를 닦고 또 닦는다. 자신을 과신하거나 쉽게 들뜨는 법이 없이 꾸준히 실력을 다듬어가며 정직하게 한 걸음씩 내딛는다. 하지만 재능의 문제는 때때로 좌절감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럴 땐 도무라의 사수 야나기의 한마디가 새로운 길잡이가 된다. “재능이란 무지막지하게 좋아하는 감정이 아닐까? 적어도 그 대상에서 떨어지지 않는 집념이나 투지나 그 비슷한 무언가.” <양과 강철의 숲>은 서점 직원들이 직접 선정하는 2016년 일본 서점대상에서 1위를 차지했다. 이런 화려한 수식어가 무색하게 심심하고 소박한 이야기이지만 그 안에 흐르는 한 인간의 치열하고 집요한 태도만큼은 작지 않은 울림을 자아낸다.
정직하고 꾸준한 걸음
‘아름다움’도 ‘올바름’과 마찬가지로 내게는 새로운 단어였다. 피아노와 만나기 전까지는 아름다움을 깨닫지 못했다. 몰랐다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 나는 많이 알고 있었다. 그저 알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 뿐이었다. 그 증거로 피아노와 만난 이후, 나는 기억 속에서 다양한 아름다움을 발견했다. 예를 들어 본가에서 살 때, 할머니께서 종종 만들어주시던 밀크티. 작은 냄비에 끓인 홍차에 우유를 넣으면 큰비가 내린 뒤에 탁해진 강과 비슷한 색이 된다. 냄비 바닥에 물고기가 숨어 있을 것만 같은 따뜻한 밀크티. 컵에 따른 위 소용돌이치는 액체를 한참이나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아름다웠다.(25쪽)
“도무라, 피아노의 터치가 뭔지 알아? 건반의 가벼움이나 묵직함이라고 생각하지? 사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아. 건반을 손가락으로 치면 연동해서 해머가 현을 치지. 그 감촉을 말해. 피아니스트는 건반을 울리는 것이 아니야. 현을 울리지. 자기 손끝이 해머와 이어져서 현을 울리는 감촉을 직접 느끼며 연주할 수도 있어. 그게 이타도리씨가 조율한 피아노에서 느껴지는 터치야.”(23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