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의 유명 정치평론가 애너벨 크랩은 ‘아내’를 이렇게 정의한다. “집 안 여기저기 쌓여가는 무급 노동을 더 많이 하려고 유급 노동을 그만둔 사람.” 작가는 ‘아이가 있는 두 부모 가족’의 경우 이 노동자의 존재는 여성임이 당연시되고 남성의 전유물로 인지되는 현실을 지적하며 <아내 가뭄>의 서두를 연다. 불평등한 가사 노동의 현실을 요목조목 짚어내는 이 책에서 많은 사례는 어린 자녀 셋과 전일제로 일하는 남편을 두고 역시나 ‘일하는 엄마’로 살아가는 작가 본인의 경험담에서 비롯한다. 일하는 시간이 불규칙한 탓에 어린이집을 보낼 수가 없자 저자는 자녀를 안고 식탁 앞에 서 원고를 쓰고, 아이를 일터에 데리고 다니며 ‘현대의 철인5종경기’를 펼친다. 그런 그에게 일상처럼 따라오는 질문들이 있다. “어떻게 그 모든 일을 다 해요?”, “피곤하지 않으세요?”, “애들은 누가 봐요?” 역시나 “여러 가지 일을 묘기에 가깝게 해내”는 남편에겐 아무도 그런 질문을 하지 않는다.
작가는 젠더와 노동 담론에서 놓치고 있는 가장 중요한 부분을 짚는다. “우리는 일터에서 누가 승자이고 누가 패자인지에만 관심을 가질 뿐, 가정과 일터를 연계시키지 않는다”는 것. 현재의 시스템에서는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느끼는 여자들, 일터에 갇혀 있다고 느끼는 남자들, 아버지 얼굴을 자주 보지 못하는 아이들” 모두가 패자임을 지적한다. 저자는 가사 노동을 둘러싼 문제를 호주의 불합리한 노동시장 구조와 연결짓는다. 고위직 승진에서 여성 비율이 감소하는 부조리 곡선, 임금 불평등 지수 등 상세한 통계와 육아휴직으로 부당함을 겪은 남성들의 설문조사 결과 등 풍부한 자료를 인용하고 있다. 남편의 가사 무능력은 유머로 취급하지만 아내의 가사 무능력은 혐오하는 현실, 집안일을 하는 남자를 패자로 인식하는 현실, 여성의 능력과 경험 부족에 대한 팽배한 편견 등 꼭 호주에만 국한되지 않는 부조리한 사회의 시선들이 신랄하고도 통렬한 언어로 담긴다.
아내를 가질 권리
과소평가는 여성 개인에게도 크나큰 손해이다. (중략) 나이는 스물다섯이고 대학원을 졸업했다고 하자. 이 여자를 ‘제인’이라 칭하자. 40년 동안 일하면 제인은 (일이 평범하게 풀린다면) 평생 249만달러를 벌게 된 것이다. 하지만 두 번째 졸업생을 ‘제프’라고 이름붙인 뒤, 제인과 동일한 자격을 부여하고 똑같이 평범한 삶이 펼쳐진다고 가정해보자. 그럼 그가 40년간의 직장 생활을 끝내고, 평생 번 액수는 총 378만달러가 된다. 앤 서머스가 <미소지니의 요인>에서 지적한 대로, ‘오늘날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젊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100만달러의 벌금’을 무는 셈이다.(71쪽)
지금도 젠더와 노동에 대해 거창하고 요란한 논쟁의 향연이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여성이 직장을 잃는 것을 따지는 데는 많은 시간을 소모하면서, 정작 남성들이 가정에서 잃는 게 너무 시시해서 논할 가치가 없는 걸까? 만약 그렇다면 이는 육아라는 위대한 노동에 대한 모욕이 아닐까?(10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