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원은 2016년 달력에 ‘일 또 일’이라고 새겨넣기라도 한 걸까. 올해 개봉작만 무려 세편. 장르, 캐릭터 어느 하나 겹침이 없다. <검사외전>에선 사기의 귀재로, <가려진 시간>에선 소년과 성인의 경계에 선 비감 어린 인물로, 그리고 이번엔 <마스터>의 ‘마스터’다. 그는 지능범죄전담수사팀 김재명 형사가 돼 범죄사기단 원네트워크의 진 회장(이병헌)뿐 아니라 이 사회의 최고위층을 싹 갈아엎으려 한다. 김재명은 일당을 타진하기 위해 전체 판을 짜는 마스터 중의 마스터다. 강동원은 “현실이 워낙에 답답하지 않나. 김재명의 추적이 상당히 통쾌했다. 사기단을 쫓는 방식이 지나치게 현실적이지 않은 점도 오락영화의 미덕으로 보였다”며 <마스터>를 선택한 이유를 설명한다.
목표지향적 인간 김재명은 감정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 단조로워 보일 캐릭터인 만큼 미세한 변화를 주는 것, 강동원이 해결해야 할 과제였다. “이 정도로 정직한 캐릭터는 또 처음이다. (웃음) 시작부터 끝까지 김재명이 이야기를 끌고 가야 하는데 너무 밋밋할까봐 고민이 되게 많았다.” 일단 대사 전달부터 챙겼다. “대사가 많다. 대사 중간에 마가 뜨는 게 싫어서 최대한 속도를 내 대사를 쳤다.” 강동원이 말의 속도에 신경쓴 데는 이런 이유도 있다. “러닝타임과 대사량은 정해져 있는데 말의 속도가 느리면 그 장면을 제대로 살릴 수 있겠나. 영화가 준비한 걸 최대한 관객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나로서도 치밀한 계산이 필요했다.” 애초의 시나리오보다 김재명의 액션 신이 늘어나기도 했다. “김재명이 감정 표현을 너무 안 하니까 감독님도 고심을 하시더라. 촬영 2주 전에 직접 운전을 해서 카체이싱을 찍으면 좋겠다고 하셔서 그러겠다고 했다. 차에 매달려 질질 끌려가는 것도 직접 하고. 영화를 풍부하게 만들려면 당연히 해야지. 내가 또 하면, 정말 열심히 한다!”
강동원은 나무보다는 숲을, 큰 그림을 보는 데 관심이 많다. “내 역할에 대해서는 별로 얘길 안 한다. 쑥스러우니까. 자기 역할은 자기가 알아서 하면 된다. 오히려 흐름상 논리의 공백이 있거나 전체 리듬과 안 맞는 부분을 짚어내 감독님과 이야기를 나눈다.” 주연배우로서 연출자의 든든한 방패막이가 되길 주저하지도 않는다. “때때로 예산이나 일정상의 한계로 감독님이 어떤 장면을 포기해야 하나 고민할 때가 있다. 그런 이유라면 내가 옆에서 ‘최대한 찍어보자’고 힘을 싣는다. 목소리 큰 연출부 한명이라고 보면 된다.” 강동원이 듬직한 선발투수인 줄로만 알았는데 구원투수까지 돼준 격이다. 강동원이 자칭 “연출부 스타일”이라고 하는 만큼 영화의 제작과 기획에도 관심이 있지 않을까. “재밌는 거라면! 좋은 프로젝트인데 굳이 안 할까. 점점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의 범위가 넓어진다. 감독님들 중에서도 ‘네가 이거 준비해볼래?’라고 하는 분들도 있고. 과거에 동료들과 같이 기획했던 것들도 다시 끄집어내보고 있다.” 강동원은 요즘, 시나리오 모니터링 요청을 꽤 많이 받고 있다. “출연 여부를 떠나 부담 갖지 말고 시나리오 한번 읽고 코멘터리를 부탁한다는 분들이 여럿”이라는데 강동원은 싫지만은 않은 내색이다.
정신없이 달려온 한해의 끝에서 강동원은 냉정히 올해의 활동을 자평해본다. “<검사외전>으로 과분한 사랑을 받아 되레 겸손해지더라. 나와 동갑내기인 이일형 감독, 제작사 대표 이렇게 셋이서 ‘관객에게 빚 갚는 심정으로 다음에는 더 잘 만들어보자!’며 이런저런 아이디어도 내보곤 한다. <가려진 시간>은 엄태화 감독님이 끝까지 타협하지 않고 용감하게 만든 작품이다. 흥행이 안 돼 많이 아쉽지만, 함께 만들었다는 것만으로도 뿌듯하다. ‘하이틴 로맨스물’로 포장되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사회적 메시지가 큰 작품이니 명절 때 TV에서라도 방영돼 관객과 좀더 만나면 좋겠다.”
흥행의 굴곡 속에서도 강동원의 선택의 기준은 언제나 하나, “탄탄한 시나리오”다. “내년에도 쉴 생각이 없다”는 강동원의 시선은 이미 2017년으로 향해 있다. 그의 내년 달력에 어떤 작품들이 들어찰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그는 기대에 찬 말을 전해왔다.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고 얘기 중이다. 계획대로만 된다면 내년엔 굉장히 재미난 일들이 많을 것 같다.” 강동원의 세계가, 활동의 영역이 어디로, 어떻게, 또 얼마 만큼 확장돼갈지 기다려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