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초반생인 나는 이전 세대 ‘운동권’ 추억에 거부감이 있었다. 펄럭이는 빨갛고 파란 깃발과 비장미 넘치게 선동하는 ‘운동권 음악’들에 관한 거부감이랄까. 지난 토요일 참여한 집회도 아주 오랜만에 나선 집단행동이었다.
11월12일 토요일 오후 8시 반 경복궁역 앞은 이미 많은 사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도로를 가득 메운 사람들은 저마다 구호를 외치고, 목청껏 함성을 내지르고, 촛불과 스마트폰 불빛을 흔들었다. 이미 내가 아는 경복궁역과는 완벽하게 다른 생경한 장소로 변해 있었다.
한 시간 남짓 있다가 가수 이승환이 공연한다는 광화문광장을 향해 친구들과 천천히 걸었다. 정부청사 앞에 설치한 대형 화면에 나온 이 용감한 가수의 목소리를 따라 세종대왕 동상 앞을 걸으며, 이번 집회에서 그의 공연 마지막 노래인 <어떻게 사랑이 그래요>를 들었다. 이 노래를 평소에 들었다면 그저 평범하고 애절한 사랑 노래로 여겼을 것이다. 그런데 공연이 열리는 무대를 향해 걸어갈수록, 조금씩 커지는 그의 목소리와 따라 부르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으니 이상한 고양감에 휩싸였다.
집회에서 들은 노래는 이승환이 2006년 발표한 아홉 번째 정규 앨범 《Hwantastic》 수록곡으로, 총 13곡이 꽉 들어찬 이 음반에는 10여년이 지난 지금 들어도 훌륭한 곡이 많다. 일곱 번째 곡 <소통의 오류>가 강렬한 록이 바탕이라면 조금 심심한 듯 조근조근 이별의 감정을 노래하는 <울다>는 이 음반의 숨은 명곡이다. 그야말로 ‘음악’이 줄 수 있는 무언가를 다시금 마주한 며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