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은 #영화계_내_성폭력 해시태그에 대해 지난 1079호를 시작으로, 영화계에서 여성에게 가해지는 무수한 폭력의 실체를 진단하고 있다. 그간 성폭력 피해자들의 제보를 받는 한편으로, 영화계 각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여성 영화인들에게 이 문제를 자신의 언어로 공론화해줄 것을 요청했다. 지난주(1080호) 영화계 내 성폭력 사태 후속 대담-이미연•박현진•홍지영•부지영 감독과의 대담에 이어 이번주에는 영화 수입•배급•홍보•마케팅 분야에서 일하는 영화인들의 목소리를 담는다. 영화 홍보사 스콘의 이주연 대표, 영화 수입•배급사 찬란의 이지혜 대표, 영화 홍보사 호호호비치의 이채현 대표, 그리고 영화 홍보사 필앤플랜의 조우리 팀장이 대담 자리를 흔쾌히 승낙해주었다. 수입•마케팅•홍보 등의 분야는 영화 세일즈사•투자자•제작자•감독•배우•스탭 등과 긴밀한 협조를 통해 영화를 소비자인 관객에까지 전달하는 업무를 담당한다. 그만큼 영화계 전반의 인력과 교류하는 역할이기도 하다. 특히 여성들이 전체 인력의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는 분야라 이번 사태에 대해서 체감의 정도도 클 수밖에 없다. 여성을 향한 시선의 문제에서 시작된 이날의 대담은 바람직한 업계의 문화가 정착되기 위한 요구로까지 이어졌다.
이지혜 대표 / 영화 수입•배급
영화기자로 영화 일을 시작해 영화 전문지 <스크린> 편집장을 거쳐, 영화 제작, 배급사 스폰지에서 홍보 마케팅 업무를 담당했다. 영화 수입•배급사 찬란을 설립, 대표로 재직 중이다. <이브 생 로랑의 라무르> <테이크 쉘터>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 <카페 소사이어티> <사랑은 부엉부엉> 등의 작품을 진행 중이다.
이주연 대표 / 영화 홍보 마케터
영화 홍보사 영화인에서 홍보 일을 시작, 홍보사 하이컨셉의 대표를 역임했다. 프레인TPC 영화 총괄 부장을 거쳐 2016년 영화 홍보 마케팅사 스콘을 설립, 대표로 재직 중이다. <노조키메> <불량소녀, 너를 응원해!> <시소> <페이 더 고스트> 등의 작품을 진행 중이다.
이채현 대표 / 영화 홍보 마케터
영화사 도로시에 재직 후 브랜드 마케팅 업계를 거쳐 2011년 영화 홍보 마케팅사 호호호비치를 창립, 대표로 재직 중이다. <내부자들>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 <겨울왕국> <부산행> <럭키> <형> 등의 작품을 진행 중이다.
조우리 / 소설가•영화 홍보 마케터
2012년 <창비>에 대산대학문학상 수상작 <개 다섯 마리의 밤>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인디스토리 홍보 마케팅팀에서 근무했으며 프리랜서 홍보 마케터를 거쳐 현재는 홍보 마케팅사 필앤플랜 팀장으로 근무 중. <나 홀로 휴가> <두 번째 스물> <뚜르, 잊혀진 꿈의 기억> <작은형> 등의 작품을 진행하고 있다.
-영화에 집중하기 버거운 한주였다. <씨네21>이 #영화계_내_성폭행에 관한 문제제기를 하고 있지만, 지금은 국정 사안 때문에 오히려 모처럼 수면 위에 오른 중요한 문제에 대한 환기가 사그라지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있다.
=이지혜_ 최근 불거진 국정 사안으로 이 문제가 묻힌 것 같다는 인상을 받는 게 사실이다. 이번에 국립박물관문화재단 김형태 사장도 직원들을 성희롱한 사건이 불거지면서 국정감사에 불려온 후 해임됐다. 크게 파장을 일으켰을 사건인데 우리가 워낙 많은 일들을 겪다보니 그저 흘려보내고 있구나 싶더라.
=이주연_ 앞선 대담에서 보니 현장과 우리쪽의 환경이 다르구나 싶었다. 홍보를 하는 직업군은 일의 특성상 일반 사무직 직장에 가깝다. 그러다보니 고립되어 있는 편이다. 지금은 좀 달라진 것 같다. 내가 20대 초반 주니어일 때만 해도 술자리가 많은 문화였다. 그러다보니 실수도 많고 말들이 쉽게 나는 분위기였다. 일을 처음 시작하는 입장에서는 그런 분위기에 대해 정색하거나 공론화하면 자질이 부족한 사람으로 치부되었다. 쿨하게 받아넘겨야 소위 자질이 풍부한 마케터로 인정받았다. 혹시 문제를 제기했다가 이상한 애로 찍힐까봐 가슴앓이를 하고, 그렇게 시간이 지나다보니 이 문제에 무뎌진 것 같다. 그리고 이런 상태를 두고 ‘나도 이제 내공이 생겼다’ 이렇게 판단해왔다. 씁쓸한 일이다.
=이채현_ 난 이전에 기업에서 일한 경험도 있는데, 영화쪽이 훨씬 여성을 우대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분야는 대부분 대표나 클라이언트가 여성이고 남성이 드물다. 이런 분위기면 남성들이 힘든 경우도 있을 것이다. 아무튼 영화는 프로젝트가 단기간인 2~3개월 정도에 끝난다는 것도 중요한 차이점이다. 소위 말해 밀접한 스킨십이 없다. 보통 기업에서 제품을 하나 홍보하려면 1년 이상 서로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하고 그렇게 부딪히다 보면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날 가능성도 커질 수밖에 없다. 브랜드나 기업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 문제가 발생해도 쉬쉬하는 경우도 많다.
이주연_ 여긴 말 그대로 여초현상이 심한 곳이다. 100% 다 여성이다. 오늘도 4개 회사가 한자리에 모였는데 대표부터 직원 모두가 여성이다.
이지혜_ 수입•배급사를 경영하다 보니 수입•배급•홍보 마케팅 역할을 다섯명이서 다 해내고 있다. 각각의 배급•수입•홍보 마케팅과 관련해서 상대해야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고 일하기에 너무 바쁜 시스템으로 굴러가고 있다.
이주연_ 이 일은 많은 사람을 만나야 한다. 제작부터 유통까지 분업이 되어 있고, 역할도 다 다르다. 짧은 시간 내에 많은 직군과 커뮤니케이션해야 한다. 그럴 때 잘 대면하지 못하면 일을 잘 못하는 사람으로 낙인 찍히는 것 같다. 그래서 일을 하다보면 어쨌든 일을 자연스럽게 돌아가게 만드는 것이 이 일의 스킬처럼 되어버린다.
이채현_ 성추행이 무서운 게, 지성인 집단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는 거다. 뉴스에 나오는 깜짝 놀랄 사건처럼 모르는 사람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랜 시간 알고 지낸 교수나 학생 사이에서 맺어진다. 브랜드 홍보도 비슷한 메커니즘이다. 그런데 영화계는 만나야 할 기자들도 많고, 이제는 여성 기자들도 많아졌다. 또 최근에는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김영란법)의 영향으로 기자들과 영화 관계자가 만나는 ‘미디어데이’ 같은 것도 없어지면서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 그런 식으로 바뀌어가는 점은 긍정적인 일이다.
이지혜_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매체가 십수개 정도에 불과했고, 담당 기자도 잘 안 바뀌었다. 그런 지속적인 관계가 불러오는 폐단도 있었다.
성폭력의 핵심은 권력 관계다
-지난 몇주간 피해자들의 제보를 통해 확인한 바로는 이 문제의 피해자들 상당수가 피해를 입은 사실을 알리지 못하고 있었다. 가해자들의 경우 대표급 여성에게 가해를 했다가는 자신이 입을 피해를 알기 때문에 어린 막내급들만을 대상으로 범죄를 저지르기도 한다. 물론 피해자들 역시 이 문제를 공론화하는 건 쉽지 않은 분위기다.
=조우리_ 처음 대담 섭외를 받았을 때 이런 생각이 들더라. 어떻게 보면 이런 경험을 한 사람들은 이 자리에 나올 수가 없겠구나, 내가 이 문제를 체감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그런 일이 없다고 하는 말은 위험하겠다, 단 한명이라도 피해자가 있다면 고립당할 수 있다, 성별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 위계의 문제다. 피해를 당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이곳에도 존재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감독이 제작을 겸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가 연출부 등 스탭을 대하는 태도와 바깥사람인 마케터를 대하는 태도가 상당히 다르다. 한 단계 포장을 한 상태인 거다. 우리가 현장에서 만나는 기자들 대부분이 여성이며 배급사, 온라인 대행사 직원들 역시 거의 여성이다. 그중 어쩌다 남성이 동석하는데 그가 제작사의 높은 직위에 있는 사람이면 항상 빠지지 않고 ‘꽃밭에 있다’는 제스처를 취한다. 예쁜 직원들의 외모 품평은 기본이고, 결혼했냐 같은 질문들은 일상적이다. 개봉과 관련한 일을 하는 마케터를 만날 때는 그들도 자신의 인격을 한 단계 포장 하고 오는 걸 텐데, 본인의 날것을 드러내지 않는 그런 자리에서조차 일상의 폭력이 비집고 나오는 걸 보면 현장에서는 얼마나 심할까 싶은 생각이 들더라.
이채현_ 포장의 상태로 오는 건 맞다. 상업영화를 하면서도 모 감독이 스크립터에게 나쁜 짓을 했다는 ‘카더라’ 통신 같은 걸 듣게 되는데, 사실 우리한테는 쉬쉬한다. 우리가 기자들과 밀접한 직종이니 혹시 그런 치부가 드러날까봐 알려주지 않는 거다.
이지혜_ 전반적으로 일로 엮인 술자리 문화가 줄긴 했는데, 여전히 배제할 수는 없는 문제다. 얼마 전 부산국제영화제 때 술모임이 있었다. 그 자리에 전부터 이 업계에서 잘 알려진 모 수입사 대표님이 동석했다. 그분과는 초면이었는데, “한번 만나고 싶었다. 대표가 여자였냐”며 말을 거는데 기분이 좋질 않더라. 우리 직원이 그래도 업계 선배라는 생각에 그분 말에 호응을 해줬더니 “번호 좀 따자, 찾아가겠다, 내가 대표로 가르쳐줄 게 너무 많다”며 치근대더라. 조금 더 지나면 스킨십까지 갈 듯한 분위기라 표정을 험악하게 지었더니 그날은 다행히 거기서 멈췄다. 그때 이런 생각이 들더라. 내가 만약 남자 대표였더라도 저 사람이 저렇게 쉽고 편하게 우리 직원한테 이런 언행을 할 수 있었을까. 기막힌 건 이후 다시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분이 다른 회사 직원을 성추행했다고 하더라.
이주연_ 21세기에도 그런 일들은 끊이지 않고 있다. 업계에서 올해 큰 사건이 있었다. 30대 배급사 직원이 다른 회사 막내 직원들을 상습적으로 성추행한 일이었다. 결혼한 지 1년이 채 안 된 남자였고, 주변 평판도 좋았다. 그런데 막내들한테는 달랐다. 배급사와 극장주들이 모인 모임에서 이미 집에 간 다른 회사 막내 직원을 선배라는 이유로 불러내고, 나중에 같은 방향이니 택시에 같이 타고서는 따라 내려서 추행을 한 거다. 원래 다른 회사로 이직이 결정된 상태였지만 그 회사에서 이 사실을 알게 돼 입사가 번복됐다. 사건이 알려지면서 비슷한 일을 겪은 피해자가 여럿 나왔는데, 그 사람 레퍼토리가 있더라. “내가 목이 너무 말라서 그러는데 들어가서 물 한잔만 하고 가자.”
이지혜_ 그게 기막힌 거다. 그 대표님이 사건을 알고 너무 화가 나서 알아보니 막내 여직원들에게만 접근을 했다더라.
조우리_ 그 대표님이 입사를 번복하고 조치를 취한 건 정말 잘한 대처다. 비슷한 상황에서 내가 대표라면 어떤 말을 하고 어디까지 관여했을까 생각해본다. 난 영화 일을 하지만 등단을 하기도 했는데, 알려졌다시피 문단도 상황이 심각하다. 직원이 작가가 성추행한다고 대표에게 고통을 토로했더니 “저 선생님이 우리 회사 돈 벌어주고, 결국 그 돈으로 네 월급을 주는데 허벅지 좀 만지면 어때. 한번 참아라”라는 대답이 돌아왔다고 한다. 오가는 돈으로 따지자면 영화계가 출판계보다 더 큰데, 영화업계의 막내 직원이면 이런 분위기에서 어디까지 생각하고 대처할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사수에게 하지 못하는 말들이 분명 많을 거다. 최근 문단 내 성폭행 가해자를 오히려 언론이 옹호해줘 문제가 된 일도 있었는데, 영화계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 아닐까. 시사회에 가면 감독들은 아는 기자가 수두룩한데 그것도 엄청난 권력일 거다. 그러니 문제제기가 더 어려워지는 거고.
이채현_ 앞서 말한 사건도 가해자가 대리 정도니까 폭로된 거지 대표급이었다면 유야무야 넘어갔을 거다.
이주연_ 이번 일을 계기로 회사 막내 직원에게 대화를 좀 청해보았다. 아직 이 분야에서 짧은 이력이지만 영화 하면서 마음의 상처가 있냐고 하니 아직은 없다고 하더라. 막내라 아직 무딜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사람이 나한테 가한 행위가 기분은 나쁜데, 정확히 무엇인지 모를 수 있는 거다. 2000년대 중반에 영화인들이 만든 ‘대나무숲’이라는 카페가 있지 않았나. 영화계는 도제 시스템이고, 업계도 좁아서 말하기 무서운 것들을 적나라하게 말하는 장이었다. 지난번 기사에도 나온, 중국 촬영현장에서 기자가 마케터에게 추근댄 일은 업계에서 유명한 일이었다. 그럴 때 대부분 “홍보해야 하는데 기분이 좀 그래도 참지”라는 압박이 들어온다.
조우리_ 그런 게 모두 주변의 가스라이팅이 아닐까. 마케팅 일이 다 그렇지, 좋은 게 좋은 거지. 이런 말들이 일상이고, 술자리에서 분위기 잘 맞추면 일 잘한다고 하는 품평이 일상화돼 있지 않나.
이지혜_ 권력 관계에서 오는 폐단이 크고, 특히 권력 앞에서는 남녀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처음 영화계에서 기자로 일하다가 영화사에 들어갔는데, 그때 모 일간지 기자를 만난 적이 있다. 남자가 아니라 여기자였는데, 밥집에 신발 벗고 들어가는 나를 보고 “자기는 발목이 너무 가늘다”고 하더라. 기분이 찜찜했는데 더 기분 나쁜 건 식사가 끝나고 회사로 돌아올 때 대표가 나한테 “너는 데려가지 말걸 그랬어”라고 한 말이었다. 그녀가 내가 마음에 안 들어서 한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누군가가 위에 있는 사람을 기분 나쁘게 하면 업무상으로 잘못이 없는데도 그게 죄인 것처럼 치부되던 시기가 있었다.
이주연_ 나이가 드니 그런 면에서 우리를 대하는 건 확실히 달라진 것 같다.
조우리_ 그런 이유로 험한 말을 안 듣게 된다니 좀 슬프다. (웃음)
이지혜_ 확실히 기자들이 영화사에 하는 요구들은 줄었는데, 지난해에 40대 초반의 모 지상파 보도국 기자가 여의도로 와서 밥을 사라고 한적이 있었다. 이후에 또 저녁을 먹자고 하기에 느낌이 안 좋았다. 우리 직원이 다 여자이고 대표도 미혼이고, 이런 상황에서 약간 함부로 대하는 태도가 보였다. 내가 나가야 정리가 될 것 같아서 같이 갔는데 이후 들어보니 다른 홍보사에도 다 그렇게 했고, 상습적으로 한다더라.
이채현_ 일단 요주의 인물이 있고 그런 기운이 느껴지면 막내나 어린 기자들은 그 자리에 안 보낸다. 상업영화계는 비교적 산업적으로 세팅이 되어 있다보니 케이스가 다소 적은 편이지만 결국 상위의 권력을 가진 하위의 인간을 만났을 때 그런 일들이 벌어지는 거다.
조우리_ 반면에 독립영화나 다양성영화로 오면 예술인이라는 생각에 문제가 커지는 측면이 있다. 이게 무슨 예술가의 기행처럼 받아들여지는 거다. 영화계에서는 그 기행을 ‘그 형이 원래 그래, 한이 많아서 그래, 영화를 개봉 못해서 그래, 고생을 많이 해서 그래’라는 말로 감싸주고 묵인해주기도 한다. 따지고 보면 학생영화 감독들이나 입봉 감독들이 이 문제에 있어서 더 가해를 많이 한다. 영화과 졸업하고 수상하고, 난 감독이고, 너희는 후배고 그러다보니 자만심이 생기고, 여성 착취까지 이르는 거다. 이 일을 처음 할 때 스크립터의 업무를 정확히 모르고 감독의 비서인 줄 알았다. 감독들이 그렇게 대한다. 전문성 있는 일을 하는데도 너무 막 한다. 그런 나쁜 짓이 대물림된다. 특히 문단 내 성폭력 문제에서 보듯 예고의 선생들이 학생의 미래를 담보로 권력을 행사하는 것처럼, 독립영화 진영에서 여배우를 대하는 것도 문제가 심각하다. 감독도 스타 배우를 대할 때와 독립영화에 출연하는 소속사 없는 배우를 대할때 태도가 달라지는 경우를 봤다. 정말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는구나 싶더라. 막 할 수 있으면 너무 막 하는구나. 내가 그 스탭이었다면 나에게도 얼마나 막 했을까. 사회적으로 의식이 있다고 하는 사람들이 여배우나 직원에게 민낯을 더 잘 보이더라.
문제를 삼아야 문제가 되는 문제들
-수입•홍보•마케팅 등의 업무는 일반 사무직 같은 속성도 있지만, 또 많은 사람들과 얽혀 있는 영화계 차원의 메커니즘도 분명 존재하는 분야다. 그간 겪어왔던 일을 돌이켜본다면 여성으로서 헤쳐나온 지점들이 보다 명확해질 것 같다.
조우리_ 전 직장이 독립영화를 제작•배급하고 인하우스로 홍보도 하는 곳이었다. 일하면서 정말 많은 사람을 만났다가 지금 홍보사에서 일하니 더 명확해지는데, 마케팅 회사를 만날 때까지를 생각해보면 다 포장 상태다. 마케터는 외부 사람이라고 생각해 거르고 거른 상태다. 실무를 하면 대부분 여성이라 거기서 오는 보호막도 있는 편이다. 영화제쪽에서도 일 했는데 거기는 정말 심각하다. 그곳에 오는 감독이나 PD들에게는 말 그대로 ‘축제의 장’이 벌어지는 셈이다. 대중교통이 닿지 않는, 지방에서 하는 작은 행사라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가 없다. 특히 공식 행사가 아니더라도 알음알음 술자리가 많다. 따로 떨어져 있고 3인 이상의 지인 남성들이 있으니 무슨 일이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다들 모든 가면을 벗고 너무나 편하게 있는다.
이채현_ 힘과 숙소와 술이 있는 거다.
이주연_ 이전에는 영화 촬영현장 공개가 많았고, 그래서 벌어지는 일들도 많았다.
조우리_ 그 자리에서 털고 나오면 된다는 생각. 그냥 그때 있었던 일이라 넘겨버리면 문제제기할 수 없게 된다. 특히 영화제 인력은 상근직이 아니라 계약직이고 한해가 끝나면 해체되는 직업이다. 그런 상황에 처한 이들이 영화제의 막내다. 나는 영화제 자원활동가들에 대한 성추행이 문단의 성폭행과 비슷하다고 본다. 작가가 되고 싶은 지망생에게 시인이 막강한 존재인 것처럼, 영화를 좋아하는 시네필들에게 영화제에 온 감독이나 PD 같은 사람들이 얼마나 큰 존재겠나. 그런 걸 노리고 영화제 폐막식 때 영화제와 관계없는 남자들이 가서 자원활동가들을 추행하는 경우도 봤다. 스탭 중 한명은 한 감독과 ‘연애’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그해에 그 감독과 그렇게 엮인 활동가가 다섯명이나 됐다더라. 심지어 그 감독이 유부남이었는데, 되레 ‘나 유부남인 거 몰랐냐’며 묻더란다.
이채현_ 나도 대학 시절 자원활동을 할 때 그런 경험이 있었다. 술자리에서 모 PD님이 괜찮은 것 같다며 술을 주고 그랬다. 그때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사람이 영화계에서 일하는 사람이니 어쨌거나 친분을 쌓아두면 일을 시작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아마 일하려는 많은 젊은이들이 이런 생각에 좀 기분이 나빠도 참을 것이다. 알량한 권력을 가지고 어린 사람들을 이용하는 거다. 작은 영화, 아트영화를 좋아했지만 그런 일을 몇번 겪다보면 지레 사람들이 일을 못하고 떠나게 되는 경우도 많다.
이지혜_ 작은 영화인데 한국영화면 그런 경우가 더 많다. 어떤 감독에게 영화 개봉하고 한참 지난 뒤 라디오 섭외가 들어왔다. 사실 홍보기간이 끝난 영화라 연결만 해주고 방송국으로 가면 된다고 했는데, 굳이 자기는 혼자 못 가겠다며 막내 직원을 데리고 가고, 술을 사라고 하고, 치근덕대기도 했다. 그렇게 ‘감독 대접’을 받고 싶은 거다.
이주연_ 따지고 보면 그걸 인지하지 못하고 살았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다. 문제를 삼아야 문제인 거다. 외모를 평가하는 희롱은 정말 부지기수다. 외모 폄하뿐만 아니라 반대로 칭찬도 마찬가지다. 칭찬받아서 좋은 게 아니라 품평을 하는 것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어야 한다. 예전엔 신문사에 아침마다 보도자료를 직접 가지고 가야 했는데, 기자들이 “아침부터 젊은 여자가 와서 돌리니 기분 좋다”는 말을 하곤 했다. 마치 유흥업소에서나 오갈 것 같은 그런 말과 행동도 그땐 너무 어리니까 제대로 판단하지 못했다.
이채현_ 이전에 술 마시면서 기자가 마케터를 무릎 위에 앉히는 것도 봤다. 지금은 악수 정도로 끝나지만. 술 먹고 게임하고 이런 건 정말 기가 막히더라.
이지혜_ 기자가 술 취해서 본인 볼에 뽀뽀를 하라고 한 적도 있다. 이건 정말 수위가 낮은 거다. 그게 불과 10년 전쯤 일이다.
이주연_ 한번은 개봉 앞두고 섭외 전화가 엄청 많이 올 때였는데, 감독님이 함께 남아서 배너도 말아주고 도와주시더라. 그러면서 집에 태워다주겠다기에 고맙다고 했다. 그 상황에서도 업무 전화가 계속 와서 전화를 받으며 가고 있는데, 갑자기 내 손을 잡더라. 너무 놀라서 쳐다봤더니 “주연씨가 너무 바쁜 거 같아서 손을 잡은 순간만이라도 다른 생각을 하게 해주려고 했다”더라. 술자리가 아니라 술도 안 마셨는데 그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했다. 그러다보면 영화 홍보를 진행할 때 감독 대하기가 어렵다. 그때는 그냥 넘어가야 한다는 생각을 했는데, 지금 어린 직원들도 이런 게 잘못되었다고 교육을 하지 않으면 인지를 못할 수도 있겠다 싶다.
조우리_ 나는 그래서 가끔 감독님들이 일 끝나면 고생했다면서 껴안는데, 그러지 마시라고 한다. 그랬더니 “우리씨 무서워서 무슨 말을 못하겠네” 하면서 “이렇게 까칠해서 어떻게 기자들 만나겠냐”고 핀잔을 주더라. 감독님들 옆에는 대개 매니저 역할을 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분들도 “적당히 좀 하라”고 눈치를 준다. 이런 행동에 반대하는 동안 나는 정말 천둥벌거숭이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다들 문제를 인지하면서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는 것, 이렇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대처하는 것도 다 우리가 하는 일이라고 주입을 받아서다. 성폭력은 남자의 본능이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생각해보면 그렇게 이성적일 수 없다. 예를 들면 가해자들이 막내급에게 그렇게 하지 대표들한테는 그렇게 못한다. 다 가해를 하는 이들의 철저한 ‘계산’에서 나온 행동이다.
-여성 혐오와 편견의 문제에 부딪히게 될 때 환기를 위한 노력도 하게 된다.
이채현_ 한편으로는 우리가 하는 일이 산업으로 정립되고 수익이 되는 일이라 변화시킬 수 있는 여지도 있다고 생각한다. 소비자와 밀접한 일인 만큼 제작자나 창작자에게도 요구를 한다. 여성 혐오적인 내용이 있으면 수정해 달라고 부탁할 때도 있고, 요즘 그런 이야기를 하면 그 영화를 옹호해줄 수 없다고 전달한다. 번역에 OO녀라는 표현이 있으면 바꿔달라고 정정을 요청한다.
조우리_ 보도자료를 쓰면서 캐릭터 설명을 쓸 때 남자 캐릭터들은 설명할 게 많다. 그런데 여자는 주연급이어도 평면적인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이 캐릭터는 주연이 아니라 소품처럼 활용된 설정값일 수 있다. 그런데도 홍보할 때는 여배우가 꼭 그 자리에 있길 원한다.
이채현_ 그런 우려가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행사에 기능적으로 소비되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어서 여배우를 아예 행사에서 제외하기도 했다. 제작발표회 때 영화 얘기가 아니라 ‘아찔한 뒤태’ 이런 문구들이 사진과 함께 기사에 노출되는 것은 결국 기능적으로 소비될 뿐 그 영화의 이미지에 좋은 영향을 끼치는 게 아니다. 굳이 그렇게까지 하지 말자고 설득할 수 있고 설득해야 한다. 단순히 포털의 메인이나 노출량을 위해서 영화의 컨셉에 어긋나게 할 필요가 있는지, 그 부분에 대해 많은 시간을 두고 회의를 하고 대책을 잡아나간다.
조우리_ 영화 일을 하다보면 평소 좋아하는 감독에 대한 환상이 깨질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저 사람이 얼마나 부정적인 행동을 하는지 아는데도, 막상 일의 특성상 포장해줘야 한다. 그런 사람이 심사위원을 하고, 인터뷰할 때 옳은 말을 하고 있는 걸 옆에서 보면 스트레스가 크다. 로비에서 영화 티켓 받을 때와 술자리에서 보이는 모습이 너무 다른 사람들이 많다. 그런 간격이 너무 커서 이 업계를 떠난 사람들도 적지 않다. 아마 세월호 참사에 분노하고 박근혜 퇴진을 주장하며 정의로운 척하는 남성들 중에도 여성을 막 대하는 사람들이 있을 거다.
여성 영화인 복지 관련 지원 있었으면
-오늘 모인 분들은 길게는 90년대 후반부터 이쪽 업계에 몸담고 있다. 그간 영화계가 산업적으로 변모하고, 홍보의 역할이나 업무의 영역도 확장되고 체계화되어왔다. 그 과정에서 여성으로서 체감했던 일들을 되짚어보았으면 한다.
이채현_ 나는 2000년대 중반에 입사해서 막내를 거쳐 지금 대표 자리까지 왔는데 세대를 나누자면 마케팅 2세대다. 그 10년 넘는 시간을 겪으면서 치욕적인 경험들을 한 적도 있다. 그래서 지금은 대표로서 만약 그런 험악한 분위기가 조성된다면 직원들에게도 참지 말라고 한다. 굳이 그런 일을 겪으면서 이 일을 해야 할 이유는 없다. 나이든 기자들 중에는 주말에도 개의치 않고 전화를 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한번은 전화를 못 받았다고 뭐라 하기에 아기가 울어서 전화를 못 받았다고 하니 “아기를 낳은 건 네 잘못이지. 이 바닥에서 다들 여자들은 결혼 안하고 일하지 않나. 모 대표님을 봐라. 결혼 안 하니 잘하지 않나”라며 폭언을 했다. 그 기자한테 당한 마케터들이 많아서 해당 매체에 이의를 제기했고, 결국 다른 부서로 이직했다. 마케터들 호락호락하지 않다. 받아주지 않는다. 매니저들, 기자들이 치근덕거리면 단호하게 되받아쳐야 하고 또 그렇게 가르친다.
이주연_ 다행히 뉴스에서 나오는 성폭력 같은 심각한 상황은 최근 들어 이 업계에서 사례로 찾기 힘들어졌다는 걸 느낀다. 그런데 이 일에 있어서 더 심각한 화두는 경력 단절 문제다. 아이를 낳고 다시 돌아온 친구들이 거의 없다. 나도 우리 직원도 계속 일을 했으면 하는데, 이는 시스템적인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 우리처럼 작은 회사는 한명이 자리를 비우면 금방 티가 난다. 어떻게 해결을 해야 여성들이 계속 일할 수 있는 회사를 만들까 고민을 한다. 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대표와 연간회의를 하고 식사를 하러 갔는데, 나한테 “좋은 소식 없냐고” 하더라. 그리고 뒤따르는 말이 “본인한테는 좋지만 회사에는 나쁜 소식”이라더라. 좋은 분위기에서 웃으면서 한 이야기지만, 결국 당장은 아니더라도 아이를 가지면 회사에 손해다라는 전제를 깔고 하는 이야기 아닌가. 여성들이 다니기 좋은 직장을 표방하고 있고, 대표도 깨어 있다고 하지만 결국 남자들에게는 배제할 수 없는 생각인 거다.
이채현_ 우리 회사가 홍보사 중에는 유일하게 대표 둘이 모두 아이를 가진 경우다. 성폭력 문제에서 시작해 인격적으로, 인간적으로 업무를 진행할 수 있는지 그 문제까지 나아가자면 해결책이 요원하다. 투자사든 배급사든 가정이 있어도 잘할 수 있다는 걸 믿어줘야 하는데, 그런 믿음 자체가 부족하다. 퇴근 시간이 지나 집에 가는데도 “너무 일찍 집에 가는 거 아니야?” 하는 눈초리들이 있다. 여자들이 출산하고도 이 커리어를 이어 나갈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가고 싶다.
조우리_ 영화 홍보 마케팅을 일이 아니라 사람 개개인으로 생각하는 분위기도 있다. 이 회사랑 일하는 게 아니라 저 사람과 대면하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직원이 빠져도 일이 돌아가게 어련히 알아서 처리할 텐데. 회사는 계약을 한 거고, 그 부분에 대해서는 우리가 책임감 있게 해나갈 수 있다. 그런데 한명 결혼해서 휴가 가면 어떻게 하냐, 일 못한다, 이런 걱정을 한다. 프로페셔널한 인력으로 보지 않고, ‘애 낳으러 간 여자’라는 사생활적인 규정을 하는 것도 여성 혐오가 아닐까. 가령 감독이 여배우에게 사전에 합의되지 않은 스킨십 장면을 찍은 것에 대해 여배우들이 SNS에 ‘여배우는 깜짝 놀라는 연기를 못하지 않는다. 우린 할 수 있는데 왜 그걸 못한다고 생각하고 그런 꼼수를 부리냐’ 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퇴근 후 업무 전화를 못 받을 수 있다. 결혼해서 못 받은 게 아니라 그냥 그 시간에 화장실 가서 못 받은 거다.
이지혜_ 처음에 혼자 1년 일하다가 경력 직원이 들어왔다. 그리고 이후에 막내 직원을 뽑았는데 그 직원이 임신해서 두달 만에 회사를 그만뒀다. 임신을 했고 애를 키워줄 곳이 없어서 여러 가지로 사정이 여의치 않았는데, 그때 내 마음이 엄마와 같은 심경이더라. 그날 집에 가서 혼자 맥주를 마셨다. 갑자기 경력이 단절되면 본인에게 얼마나 타격이 클까. 사회에 나와서 경력을 유지하는 게 결국 시스템의 도움 없이는 힘들다.
이채현_ 대기업은 대기업 산하의 어린이집이 있지만 이 일은 개인 사업자라 그런 게 없다. 버티기 정말 힘들다. 우리끼리는 영화인들을 위한 어린이집을 만드는 게 어떠냐는 이야기도 했다. 영화진흥위원회의 전반적인 과제가 콘텐츠쪽에만 가 있는데, 이런 여성 복지 문제에 대한 배려도 필요하다고 본다. 경력이 단절돼서 일을 못하는 많은 사람들을 활용해 재택근무로 영화 관련 자료들을 작성하는 일 같은 업무를 하는 인력 풀을 충분히 만들 수도 있다.
이주연_ 홍보사들은 부침이 큰 편이다. 원인을 보면 전문 인력난이 심하다. 이 일은 업무가 특수하고 숙련된 직원들이 필요한 일이다. 그런데 출퇴근이 자유롭지 않고, 각종 행사나 이벤트로 야근을 하는 일도 많다. 그럴 때 정부 차원의 인력 지원 프로그램들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부쩍 든다.
이지혜_ 출산과 육아가 걸려 있는데도 여성들을 채용하게 된다. 여성이 이 일을 위한 조건들을 더 많이 갖추고 있으니 점수가 높다. 특히 일할 때도 남자 직원들은 상대적으로 아쉬운 점이 많다. 말을 하거나 글을 쓰는 일들이 많은데 여성이 월등히 잘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 업무 평가에서 남자가 점수가 훨씬 낮다.
조우리_ 그런데도 처우에서는 여성이 더 열악하다. 영업직 사원이랑 비슷한데, 동일 선상에서 대우가 조금 낮게 책정된다. 한번은 모 회사에서 신입 직원 뽑을 때였다. 남자는 뽑지 말라고 하더라. 월급이 너무 적다는 게 이유였다. 그 남자가 나와 나이가 같았는데 자기소개서에 결혼했다, 아이 있다고 쓴 걸 보고 가장이 어떻게 이 일을 하면서 돈을 버냐는 거다. 나는 그 돈 받고 일하고 있는데 내 월급 올려줄 생각은 못하는 거다.
남녀를 떠나 모두의 연대가 필요하다
-지난 몇주간의 변화와 앞으로 이 문제를 두고 가능한 고민의 지점에 대해 듣고 싶다.
이주연_ 이 문제에 관해 계속 목소리를 냈으면 좋겠다. 피해의 중심에 있지 않았지만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데 관심을 갖고 개선해나갈 수 있도록 노력하려고 한다. 다시 영화계로 돌아와 홍보사를 오픈한 것도 이 일을 통해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보다는(웃음) 좋은 회사를 만들고 싶은 욕심에서였다. 왜 영화 마케팅 회사는 오랫동안 정착지가 되어 같이 갈 수 없을까. 그런 회사를 만들려면 이 시기를 넘어갈 수 있는 끊임없는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다행히 영화마케팅사협회가 생겨서 이런 문제를 공론화할 수 있게 되었다. 협회에서도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가 많이 생기길 바란다.
이지혜_ 기자로 일하다 영화사에서 일했는데, 그간에도 환경이 많이 바뀌었다. 나같이 사람 만나는 데 약한 사람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 일해나갈 수 있다는 것은 지난 시간의 변화 덕분인 것 같다. 지금 이 문제가 공론화된 것도 큰 변화라 생각한다. 순식간에 변하지는 않겠지만 이 이슈들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꾸준히 목소리를 내고 싶다.
이채현_ 출판계는 1인 기업처럼 모 시인이 먹여살리는 경우도 있을 거다. 작가와 출판사와 기자의 연대가 존재하기도 한다. 우리 회사는 어떤 한 감독이 우리를 먹여살리지는 않는다. 그런 연계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곳이니 이 문제에 대해서 서로 힘을 모을 수 있지 않을까. 비교적 안전지대에 있지만 나 역시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고민해나갈 것이다. 제도적인 창구를 만들어줘야 한다는 생각도 크다. 그리고 피해자들을 위해 상담할 치료사 지원 등의 문제도 시급한 것 같다.
조우리_ 요즘은 그래서 사람 많은 자리에 가면 “전 페미니스트입니다. 생각 없이 말하지 말고 생각하고 말씀해주십시오”라고 한다. 싸가지 없고 고분고분하지 않다고 생각하겠지만 내가 그렇게 함으로써 나보다 지위가 낮아 말 못하는 사람들이 보호받았으면 좋겠다. 가해자에게 말 못하면 내가 세 보이니 나한테라도 고충을 말해줬으면 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안 그랬고, 이런 게 다 문제라고 생각하는, 소위 멀쩡한 남성 영화인들이 이 문제에 대해서 더 많이 말해줬으면 좋겠다. 남자 영화인들이 믿을 만한 동료라는 걸 증명해줬으면 한다. 남자인 친구들에게도 “너희는 모이면 군대 이야기하지, 우린 성추행당한 이야기해”라고 하며, 만약 가해자가 된다면 친구로서 가차 없이 버릴 거라고 말했다. (웃음) 여성이 힘을 모으는 연대도 좋지만 모두가 동료애를 보여야 할 때다. 영화 하나를 만들고 개봉하기까지 크레딧에 오르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