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나, 빽, 주이는 공정여행상품을 기획하고 개발하는 사회적 기업 트래블러스맵의 직원이다. 한국 사회에 살아가는 모든 직장인들의 애로사항인 ‘야근’과 휴일근무는 사회적 기업의 직원들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쳇바퀴처럼 계속되는 업무에 지친 세 사람은 지금의 생활방식에 문제가 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야근 대신 뭔가 재미있는 일을 벌여보기로 결정한다. 고민 끝에 그녀들은 뜨개질을 하기로 마음먹는다. 헌 티셔츠를 잘라 만든 실로 뜨개질을 해서 삭막한 도시의 풍경을 바꿔보자는 것이다. 고요한 새벽, 도심 이곳 저곳에 뜨개질한 것들을 걸어놓는 데 성공한 그녀들은 장기적인 퍼포먼스와 더 고차원적인 ‘도시 테러’를 계획하지만 야심차게 시작한 그들의 프로젝트가 늘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만은 아니다. 보다 실질적으로 현실을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던 나나는 사회적 기업 최초의 노조를 만들기로 결심한다.
박소현 감독의 <야근 대신 뜨개질>은 한국 사회에 대한 여성 근로자들의 발랄한 투쟁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다. 이 영화에서 세 여자의 뜨개질은 단순한 취미 활동에 그치지 않는다. 알록달록한 씨줄과 날줄을 엮는 과정에서 잘 알지 못했던 직장 동료들은 각자의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하고, 나아가 도시 노동자로서 자신들이 처한 상황과 밀양 송전탑, 세월호 참사 같은 사회적 현안까지 생각의 폭을 확장해나간다. 생각할 수 있는 여유와 타인과의 연대가 얼마나 의미심장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지, <야근 대신 뜨개질>은 과장 없이 담담한 필치로 보여준다. 변화의 가능성과 더불어 여전히 근로자들에게 견고하고 가혹한 사회의 벽을 보여주는 데에도 영화는 소홀하지 않다. 직원들의 ‘공정’한 근무환경에 보다 관심을 기울이리라 짐작됐던 사회적 기업에서조차 노조 설립 문제를 놓고 수많은 고정관념, 편견과 투쟁해야 하는 상황이 펼쳐진다. 이 영화를 보며, 어쩌면 가장 위험한 건 ‘변화’를 힘들고 두려운 것으로 여기는 태도가 아닐까 하는 짐작을 해보게 된다. 신인감독의 장편다큐멘터리 데뷔작인 만큼 다소 산만해 보이는 대목도 있지만, 새로운 연대의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가 존재해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