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Culture > 초이스 > 도서
[도서] 씨네21 추천 도서 <일곱 건의 살인에 대한 간략한 역사>
김수빈 사진 최성열 2016-11-15

<일곱 건의 살인에 대한 간략한 역사> 말런 제임스 지음 / 강동혁 옮김 / 문학동네 펴냄

자메이카의 거장 말런 제임스의 범죄소설 <일곱 건의 살인에 대한 간략한 역사>는 대작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1976년부터 1991년까지 15년 동안 자메이카, 미국, 영국 세 국가를 배경으로 삼는다. 등장인물만 75명이다. 총 5부로 구성된 소설의 중심엔 1976년 12월3일, ‘밥 말리 암살 미수 사건’이 있다. 1부에선 사건 하루 전날을 배경으로 갱단의 주모자들은 물론 사건과 무관했던 사람들이 암살 기도에 연루되는 과정을 그린다. 2부는 사건 당일, 갱단의 소년들이 마약에 찌든 채 암살을 시도하지만 결국 미수에 그치는 현장을 담는다. 사건 후에도 자메이카 내 갱들의 다툼은 끝나지 않는다.

총 13명의 화자가 일곱건의 살인과 연루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자메이카 게토를 주름잡던 갱단의 보스, 행동대장, 소년대원들을 비롯해 우연한 동침으로 밥 말리의 아이를 갖게 된 여인, 밥 말리를 취재하는 <롤링스톤> 기자, 자메이카가 쿠바처럼 공산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파견된 CIA 요원 등 범죄 및 정치 음모와 연루된 다채로운 캐릭터가 등장한다. 계층을 상징하는 언어 습관이 녹아나 화자별로 읽는 재미를 더한다. 소설에서 가장 돋보이는 건 냉전 시대 미국 사회에 팽배한 폭력성과 백인들의 차별 의식을 신랄하게 꼬집고 있다는 점이다.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를 ‘온 세상 사람들이 보는 앞에 대실패로 끝나버린, 케네디가 쿠바를 납치하려고 벌인 포피쇼(인형극)’라 정의하고, 미국의 해외 정책을 역설하는 어느 미국인 캐릭터의 대화가 ‘자기 말을 알아듣기엔 상대가 너무 멍청하다고 생각할 때 백인들이 구사하는 말투로 말을 질질 늘려가며, 목소리를 낮게 깐’ 방식이라고 표현하는 등 순도 높은 비판과 조롱으로 미국인과 미국 사회의 위선을 짚어낸다.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자메이카와 미국을 중심으로 냉전 시대 정치사와 대중문화를 능숙하게 녹여낸 흥미로운 역사소설이다. 2015년 맨부커상을 수상했다.

밥 말리와 피 묻은 현대사

신이 희한한 건 말이야, 신한테는 명성이 필요하단 거지. 뭐 그래, 관심, 주목, 인정. 신이 직접 그렇게 말했잖아, 온 힘을 다해서 자기를 인정하라고. 신에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거나 그 이름을 부르지 않으면, 신은 뭐랄까 더이상 존재하지 않게 돼버리거든. (중략) 반면에 악마는 아무 필요 없지. 사실, 눈에 띄지 않을수록 더 좋으니까 말이야. (중략) 눈에 띌 필요도, 정체가 밝혀질 필요도, 기억될 필요조차도 없다는 뜻이지. 그렇기에 악마는 당신들 중 누구라도 될 수 있는 거라고.(1권, 239쪽)

어떤 사람들은 꿈꾸는 것 말고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어떤 사람들은 행동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데 각각 좋은점과 나쁜 점이 있소이다. 조시 같은 사람들한테는 비전이 없고, 나 같은 사람한테는 추진력이 없소. 나는 생각을 해왔고 이야기를 해왔고 사람들한테 우리, 오직 우리 것인 새로운 생각을 보여줘왔소. 정치인도 없고 정부도 없는 상태. 시스템보다 나은 종류의 다른 시스템. 들고 다니기 무겁다는 이유만으로도 누구도 총을 들고 다니지 않는 시스템, 내 여자와 그놈 여자와 모든 놈의 여자들이 고작 윗놈들을 부유하게 만들어주려고 일하지 않아도 되는 시스템 말이오. 어느 날에는 낡은 것이 너무 낡아 더이상 악취조차도 풍기지 않고, 마른 먼지처럼 그냥 흩날리게 되지. 그런 날에는 새로운 것을 원하며 깨어나게 되는 거라오.(1권, 387쪽)

예스24에서 책구매하기
씨네21 추천 도서 <일곱 건의 살인에 대한 간략한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