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주제로 한 많은 책들은 ‘감정을 사용하는 법’을 말한다. 하나같이 우울, 분노, 열등감 같은 부정적 감정도 잘 닦으면 생산의 유용한 연료가 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림책 <그까짓 사람, 그래도 사람>은 감정을 도구화하는 책들과는 결을 달리한다. 감정의 쓰임새를 궁리하는 대신 눈여겨보지 않던 세세한 감정의 모양새를 포착하고, 감정 자체의 변화 양상을 가만히 지켜본다.
설토라는 이름의 샛노란 토끼 캐릭터는 인간의 감정을 상징한다(작가 이름인 ‘설레다’와 ‘토끼’에서 한 글자씩 따왔다). 어떤 페이지에선 설토의 팔다리가 잘려 있고, 또 어떤 페이지에선 설토가 한껏 몸을 움츠리고 있다. 구덩이에 빠져 허덕이기도 하고, 두팔을 치켜들며 만세를 외치기도 한다. 언어로 풀어내기 힘든 감정들은 역동적인 몸짓과 표정의 설토를 통해 형상화된다. ‘숨기고 싶지만 공감 받고 싶은 상처투성이 마음 일기’라는 부제처럼 <그까짓 사람, 그래도 사람>의 힘은 공감에서 나온다. 꽃길을 상상하며 걷고 있지만 내려다본 발밑은 가시밭길이라거나, 수많은 좌절의 헝겊들을 모아 스스로를 감싸는 이불을 만드는 설토의 모습에선 각자의 경험이 포개어지기 마련이다. 그림 곁에는 성찰을 담은 짧은 글이 함께한다.
책은 연애감정, 인간관계 등 다양한 테마로 구성된다. 장 하나가 끝나는 지점엔 앞서 등장했던 모든 설토 캐릭터들이 모인 페이지가 나온다. 책 끄트머리에는 이 그림들의 스케치를 모은 컬러링 페이지도 있다. 독자들은 저마다 다른 표정과 동작의 설토에 찬찬히 색을 입히며 감정을 정돈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샛노란 톤을 기본으로 한 알록달록한 그림들과 부담스럽지 않은 글들을 읽다보면 마지막에 다다를 즈음 한층 명랑해진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세상의 온갖 소식에 민감하면서 정작 스스로의 내면에 무감한 독자들을 위한 치유의 책이다.
토끼 그림에 감정을 담아
시간이 나이를 먹는 거예요. 나는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인걸요.(29쪽)
마음이 쓰릴수록 점점 커지는 나의 외딴 섬. 두발 겨우 디딜 정도였던 섬이 어느덧 이렇게나 커져버렸습니다. 당신을 데려오고 싶지만, 당신이 곁에 있을 땐 보이지 않는 섬. 이 세상에 나 혼자라고 느껴질 때, 외롭고 쓸쓸하고 공허한 마음으로 속이 가득 찰 때만 나타나는 섬. 당신도, 그 누구도 모를 겁니다. 이 섬에서 겪는 나의 외로움과 아픔을. 물론 나도 모를 거예요. 그 섬에서 느끼는 당신의 쓸쓸함과 괴로움을.(20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