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복 입던 시절이 좋을 때야.” 교사들이 버릇처럼 하던 말들을 되풀이하는 자신을 발견할 때가 있다. 학창 시절에서 멀어질수록, 발 딛고 있는 현실이 녹록지 않을수록 학창 시절은 미화된다. 하지만 그 시절의 일기장을 한번만 뒤적여도 이야기는 달라진다. 친구를 사귀지 못해 전전긍긍하던 학기 초, ‘수능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말라가던 고3 시절. 활자와 함께 먼지 쌓인 감정들이 생생히 되살아난다. 아홉명의 소설가가 자신의 학창 시절에 대한 기억을 바탕으로 쓴 <다행히 졸업>은 그런 일기장 같은 소설집이다.
필진들은 세대가 다르다. 2015년의 고등학생들을 취재해 쓴 장강명 작가를 제외하면 모든 소설이 작가 저마다 통과한 학창 시절을 토대로 삼는다. 소설에는 여러 소년소녀의 얼굴이 담겨 있다. 우다영의 <얼굴 없는 딸들>에는 폭력과 살인이 공존하는 불우한 세계를 살아가는 고등학생들이, 정세랑의 <육교 위의 하트>와 전혜진의 <비겁의 발견>에는 성적 지상주의에 내몰린 학생들이, 장강명의 <새들은 나는 게 재미있을까>와 김보영의 <11월 3일은 학생의 날입니다>에는 부조리한 학교 시스템에서 고군분투하는 아이들이, 이서영의 <3학년2반>에는 성적 지향마저 검열당하는 청소년들이 등장한다. 1990년부터 2015년까지, 26년에 걸친 시간대가 배경이지만 청소년을 향한 폭력과 억압, 세계의 부조리와 아이러니는 세대를 관통한다. 임태운의 <백설공주와 일곱 악마들>은 2002년 월드컵 당시 교실 풍경을 익살스럽게 그려낸 작품으로, 소설집에서 유일한 희극이다. 김아정의 <환한 밤>은 모녀가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을 환상적인 톤으로, 김상현의 <나, 선도부장이야>는 범죄에 연루된 학생들을 필름누아르의 한 대목처럼 묘사한다. 어른들에겐 모두 지나간 시절이지만, 2016년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은 무방비로 소설 속 세계의 한복판을 헤매고 있다. <다행히 졸업>은 ‘다행히 졸업’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꼰대처럼 굳어가던 어른들의 생각에 균열을 가한다.
학교는 언제나 괴로워
행정실장이 된 옛 교무교감이나, 유체 이탈 화법을 쓴 학생교감을 보며 내가 왜 이마를 찌푸렸는지, 이제는 설명할 수 있다. 그것은 사람의 잠재력과 관련이 있다. 사람은 대부분 옳고 그름을 분간하고, 그른 것을 옳게 바꿀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그 능력을 실제로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행정실장과 학생교감은 날지 않는 새들 같았다. 마지막으로 날아본 적이 언제인지도 모를 비둘기들이었다.(<새들은 나는 게 재미있을까>, 52쪽)
어쩌면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다. 그 시기에는 누구나 아무 노력 없이 몸이 자랐고, 이해하지 않아도 조금씩 어른이 됐다. 매일 모르는 사이에 무언가를 잃어버리고 그것을 잃었다는 사실도 쉽게 잊었다. 친구의 이름. 얼굴. 어제의 즐거움. 두려움. 화답을 기대하는 마음. 슬며시 생겨난 앙심. 단순하게 반복되는 폭력. 결별. 지난 계절의 더위. 추위. 꿈. 불가해한 죽음. 지속되지 않는 다짐. 너를 버린다는 말. 그 모든 것들이 기억 너머로 가라앉는다. 아래로 더 아래로 가라앉아 깊은 구덩이 속에 고이고, 바로 거기, 잔잔한 수면이 생긴다.(<얼굴 없는 딸들>, 13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