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이든 영화든 실화의 힘은 강력하다. ‘이야기가 실화에 기반’하면 독자들은 작품의 개연성에 가질 의구심을 어느 정도 해소하고, 사건을 자신과 더 가까운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프랑스 작가 델핀 드 비강은 허구와는 달리 ‘현실에는 의지와 고유한 역동성, 더 큰 창조성이 있다’고 말한다. 1080호 북엔즈에 꽂힌 네권의 책은 모두 실화, 그중에서도 작가 개인의 경험과 맞닿은 이야기들을 소재로 한다. <다행히 졸업>은 아홉명의 작가가 자신의 학창 시절 기억을 가지고 쓴 소설 모음이다. 델핀 드 비강의 <실화를 바탕으로>는 문학에서 실화와 허구의 의미를 끊임없이 질문하는 소설이다. 작가는 주인공을 자신의 분신 같은 인물로 삼고 작품 자체를 현실과 허구의 경계에 놓는다. <그까짓 사람, 그래도 사람>에서 그림 작가 설레다는 일상에서 느끼는 사소한 감정들을 글과 그림으로 표현하고, 말론 제임스의 <일곱 건의 살인에 대한 간략한 역사>는 1976년 밥 말리 암살 미수 사건을 비롯해 1970∼90년대의 미국 정치사와 대중문화를 풍부한 레퍼런스로 사용한다.
<다행히 졸업>은 ‘각기 다른 연령대의 작가들이 자신의 학창 시절을 소설로 담고, 이를 한데 이어 현재부터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역사서’다. 아홉명의 소설가는 기획자이자 필자로 참여한 김보영 작가가 제시한 세 가지 원칙에 의거해 글을 썼다. 첫째, 고등학생의 이야기를 한다. 둘째, 르포문학을 추구한다. 셋째, 르포라 해도 결국 소설이어야 한다. 그 결과 각 시대만의 슬픔을 담아내는 소설집이 나왔다.
<실화를 바탕으로>는 한 소설가가 자신의 모든 창작욕을 앗아간 여인에 대해 회고하는 이야기다. 탄탄한 추리소설의 요소를 갖추고 있지만 글쓰기에 대한 질문을 멈추지 않는 흥미로운 메타소설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는 투명성이란 명목 아래, ‘사실’을 추구하는데 집착한다. 이런 현실이 두려우면서도 매혹적이었다”는 작가는, 완전한 픽션처럼 이야기를 시작해 자전적 소설로의 면모를 점차 드러내 독자들을 매혹한다.
작가 설레다는 필명처럼 세심한 감성을 지닌 그림 작가다. 그는 누구나 느끼지만 쉽게 흘려버리는 감정들을 가벼운 글과 직관적인 그림으로 표현하고 이를 모아 <그까짓 사람, 그래도 사람>을 만들었다. 토끼가 주인공인 그림들은 얼핏 보면 귀엽지만 자세히 보면 팔다리가 잘려져 있거나 몸의 곳곳이 터져 있어 섬뜩하다. 다양한 스펙트럼의 감정을 풀어낸 그림들로 독자의 공감을 이끈다.
<일곱 건의 살인에 대한 간략한 역사>는 지난해 맨부커상을 수상하며 유명세를 탄 작품이다. 자메이카 출신의 말론 제임스는 자메이카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20년 넘게 살아온 중견 작가다. 자신이 직접 경험하거나 직업이 경찰인 부모에게서 접할 수 있었던 이야기들을 방대한 범죄소설로 엮어냈다. 자메이카 파트와어와 실용 영어를 고루 사용해 계층에 따른 시선을 반영하고, 진솔한 표현이며 갱들의 언어에 담긴 특유의 리듬감으로 읽는 재미를 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