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사무실의 칸막이 공간 안에 두 남자가 탁자에 앉아 얼굴을 마주 보고 있다. 나이가 많은 남자가 젊은 남자에게 묻는다. “재즈… 좀 알아?” 젊은 남자가 눈빛을 반짝이며 대답한다. “알죠, 맹렬히!” 나이 많은 쪽은 만화 담당 편집기자고 젊은 남자는 만화가다. 두 사람은 잡지에 새로 연재할 만화에 대해 의논하기 위해 만났다. 젊은 만화가는 재즈에 대한 만화를 연재하기 원하는 모양이다. 다시 묻는 담당 편집기자. “종이에서는 소리가 안 난다는 거 알아?” 땀을 삐질 흘리는 만화가. “네. 책을 두드리면 소리가 나긴 하지만.” 만화가의 대답을 듣고는 땀을 삐질 흘리는 담당 편집기자. 다시 묻는 담당 편집기자. “재즈에 승패라든가 그런 게 있나?” “어… 없죠” 침묵. 두 사람 서로를 빤히 바라보다가 고개를 젖히며 큰 소리로 웃어젖힌다.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독자를 겨냥한 소학관의 만화잡지 <주간 영 코믹> 회의실 풍경이다. 어찌되었든 담당 편집기자와 만화가는 재즈 만화를 연재하기로 결정하고 의기투합한다.
종이에서 음악이 흐르게 할 수 있다면
종이에서는 소리가 안 나는데 어떻게 음악 만화를 그린단 말인가? 전문가가 아닌 애호가의 입장에서 단순하게 생각해보면 땀을 뻘뻘 흘리며 혼신을 다해 노래를 하는 가수 또는 연주자를 그리고, 다음 칸에 깜짝 놀라는 청중, 또는 감동해서 눈물을 흐리는 청중을 그릴 수 있겠다. 칸을 잘게 쪼개서 연주자의 손, 마우스피스를 문 입술, 흐르는 땀, 감동하는 청중을 그리다가 페이지를 넘기면 집중선이 가득한 전장 페이지를 그려넣어 연주하는 현장을 그릴 수도 있겠다. 그래도 종이 위에서 음악이 흐르는 기적의 순간을 만든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독자들이 익히 아는 명곡의 가사와 함께 정서적인 그림이 담긴 칸들을 리듬 있게 나열해서 효과를 보려는 만화가 있을 수도 있다. 산울림의 노래 중 “바람은 보이질 않으니 무슨 색을 칠해야 할까 바람이 있다 소리치는 포플러를 그리자”라는 가사가 생각난다. 마일스 데이비스는 무대에 서면 항상 청중의 눈썹이 휘날리도록 트럼펫을 불어 젖히려 했다. 청중의 눈썹이 휘날리는 순간을 그려? 하하. 그건 좀 웃길 것 같다. 무협 만화도 아니고.
물론 종이 위에서 음악이 들리는 착각을 불러일으킨 만화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만화 <마에스트로>에서 오케스트라 단원들과 첫 연주를 하는 괴상한 카리스마의 노인 지휘자가 지휘봉을 높이 들었다 내리찍을 때, 나는 베토벤 <운명 교향곡> 1악장 첫 마디가 만화가 그려진 종이 위에서 들린다고 느꼈는데 그건 워낙 유명한 곡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거나 나의 어마어마한 착각 때문일지도 모른다. 음악을 소리도 없이 어떻게 만화로 그린단 말인가? 그것을 성취해내는 과정을 보는 것만으로도 흥미진진한 만화임이 틀림없는 재즈 만화 <블루 자이언트>는 2013년에 연재가 시작되어 2016년 현재 단행본 9권까지 나왔으며, 아쉽게도 괴력의 만화 <골든 카무이>에 1위를 빼앗겼지만 3위로 2016년 일본 만화 대상의 자리에 올랐다.
주인공의 우직함으로 승부한다
재즈를 만화로 그린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만화 <블루 자이언트>는 재즈에 홀딱 빠진 중학교 3학년 소년을 주인공으로, 재즈란 어떤 음악인가부터 이야기한다. 주인공 다이는 친구를 따라 재즈 연주장에 갔다가 재즈에 영혼을 빼앗겨버린다. 재즈의 격렬함에 매혹된 것이다. 그런데 악기 살 돈이 없다. 야구치 시노부의 재즈영화 <스윙걸즈>(2004)의 소녀들은 가지고 있던 명품 가방을 팔거나 아르바이트를 해서 비싼 악기를 장만하는 고군분투를 해야 했다. 다행히도 다이에게는 매우 착한 형이 있다. 형이 3년 할부로 사준 색소폰을 가지고 아이팟으로 열심히 음악을 들으며 연습을 한다.
주변 친구들은 다이에게 네가 그렇게 빠져버린 재즈란 도대체 뭐냐고 묻는다. 다이는 그것을 정확하게 말할 수 없다. 입가에 맴돌고 머릿속에 뭔가 구체적인 것이 있는데 고리타분하고 어려운 음악, 어른들의 음악, 무드가 있는 격조 있는 음악이라는 재즈에 대한 편견을 깰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다이는 같이 일하는 누나에게 존 콜트레인의 <Moment’s Notice>를 입으로 불러주며 재즈의 멋있음을 어필하려 하지만 “빳빠바 빠라 바빠바…”라는 말풍선 속의 대사로는 독자와 만화 속 상대방에게 재즈의 멋있음을 전달하는 데 실패하고 만다. 그 실패는 주인공의 실패이고 작가의 실패이기도 한데, 주인공이나 작가는 별로 개의치 않는다. “뭐 별것 아냐, 천천히 하면 돼”, 설명은 안 되지만 “재즈는 멋있어!” 하며 주먹을 불끈 쥐는 것 같다. 하지만 이러다가는 연재 중단이다. 그래서 작가는 일본 소년 만화의 영원한 흥행법칙인 ‘우정’, ‘노력’, ‘성공’의 에피소드를 곳곳에 지뢰처럼 배치한다. 에피소드는 보석처럼 빛나는 것들이 많다. ‘성공’은 이 만화가 주인공이 미국에서 블루 자이언트가 된 뒤의 회고담 형식이니 이미 갖추었고 각 에피소드에서 소년소녀의 우정이 넘쳐나니, 주인공이 일류 연주자가 되는 과정의 ‘노력’에 대해 이전 만화들과 얼마나 차별되게 그리느냐가 관건이다.
주인공 소년은 미련하게도 동네 천변의 둑 위에서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하루도 빠지지 않고 네 시간 이상 색소폰을 분다. 처음 색소폰을 손에 넣은 중3 때부터 고3이 되기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소니 롤린스가 슬럼프를 이기려 맨해튼의 윌리엄스 버그 다리 위에서 색소폰을 불었듯이 센다이의 하천 둑길에서 색소폰을 분다. 마치 전국시대 사무라이가 검술을 연마하듯 소년은 색소폰을 분다. 영화 <취권>(1978)의 황비홍(성룡)이 소화자(원소전)를 만나 가혹하기 짝이 없는 훈련을 했듯, 실패한 재즈 연주자이며 술주정뱅이 사부를 만나 일취월장한다. 이 만화에서 주인공 소년의 음악적 재능은 언급되지 않는다. 주인공은 하루도 빠짐없이 노력을 했고, 그 노력을 불태우는 가솔린은 “재즈는 너무 재미있고, 자신은 꼭 최고의 재즈 연주자가 되고 말 거”라는 우직함과 단순함이다. 첫 연주 때 다이는 클럽 손님으로부터 “시끄러워! 네 소리는 너무 시끄럽다고, 나는 재즈를 들으러 온 거야”라는 말을 듣고 무대에서 쫓겨난다. 그는 공원에 앉아 달을 보면서 “별것 아냐”라고 말한다. 당연하다. 너무나 재미있는 재즈를 연주하는데 그런 일은 앞으로 다반사가 될 것이다. 그런 일이 별것 아닐 정도로 재즈가 좋다. 연주가 너무 좋다. 둑길에서 매일 색소폰을 불어 젖혔으며, 내리는 눈이 소리를 잡아먹는 것을 알고 그 속에서 들리는 소리를 내려 했으니 다이는 이미 그만의 소리를 만들어낸 것이다.
<블루 자이언트>는 착하고 우직한 사람들만이 등장하여 그들의 성공에 걸맞다고 납득이 될, 만화 속에서만 볼 수 있는 노력을 보여주며 독자를 사로잡는 만화이다. 스토리는 대략 성공했다. 자! 이제 종이 위에서 음악이 들리는 만화를 그렸는지 보고 싶다. 아쉽게도 국내에서는 3권밖에 출간이 안 되었는데 더 나오기를 바란다. 작가가 어떤 노력을 기울여 음악을 들려주는 만화를 그렸는지 확인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