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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영화 제작 초기단계부터 캐스팅, 촬영현장, 마케팅에 이르기까지 영화계에서 성폭력은 어떻게 발생하고 묵인되었나
이화정 2016-11-07

<씨네21>은 문화계 내 성폭력 이슈가 대두되면서, ‘영화계 내 성폭력 피해자의 제보를 기다립니다’라는 지난 1078호 포커스 기사를 게재, 한주간 피해자들의 사례를 제보받았다. 영화평론가 김수 사건 피해자들의 사례도 추가로 다수 접수되는 한편, 영화현장에서 일어나는 성희롱이나 성폭력 등 피해를 겪은 이들의 제보 또한 적지 않아 놀라웠다. 지난 한주간 우리는 피해자들의 제보를 근거로 사건 가해자로 지목된 현장의 관련 스탭, 프로듀서, 제작자 등 책임자들에게 사건의 실체를 확인하는 과정을 거쳤다. 상당수의 피해 사례들이 영화에 참여하는 스탭들간의 특수한 수직구조 때문에 일어나고 또 별다른 조치를 강구하지 못한 채 방치되고 있었다. 이번 제보는 그같은 일들을 토로하는 작은 창구 역할로 이어졌다.

감독과 배우, 그 권력관계로부터 비롯한 일들

현장 내 성희롱이나 성폭행 문제와 관련해서는 영화현장이 가진 특수성과 밀접하게 연결된다. 현장에 참여하는 스탭들은 촬영, 미술, 의상, 특수효과, 무술 등 각 파트의 팀장이 해당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로 계약하면, 팀장이 스탭을 꾸리게 된다. 이 경우 인력 구성은 팀장의 몫이 되니 그에 따른 권력이 생기며, 한편으로는 팀장 역시 프리랜서로 계약된 입장이라 팀 내에서 분란이 일어도 팀 바깥으로 이야기가 잘 나갈 수 없게 만드는 구조다. 또 프리 프로덕션 포함 현장까지 대략 6개월 정도의 단기 기간 동안 모였다가 프로덕션이 끝나면 팀이 해체되는 상황이라, 명백한 피해 사실이 있음에도 제대로 처리되지 못한 채 봉합되기도 한다. 특히 이른바 일정 규모 이상의 상업영화라면 현장에서 있었던 사건이나 추문의 경우, 개봉 이후 ‘흥행’이라는 ‘대의’를 위해 덮일 수밖에 없다. 모든 것이 영화 한편의 성공을 위해 수렴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같은 메커니즘은 사건이 발생해도 제대로 고충을 토로할 수 없는 영화계 구조가 갖고 있는 심각성을 말해준다.

우리가 받은 제보 중 특히 심각한 부분은 몇몇 감독이 여배우를 향해 일상적으로 가하는 폭력이었다. 별다른 인상적인 작품을 만들지도 못한 감독이 여배우를 불러내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다음 작품에서 캐스팅을 고려하겠다”라는 말을 하며 성관계를 요구하는 경우는 비일비재했다. 독립영화계에서 활동하는 한 여배우는 제법 알려진 A감독으로부터 “OO씨는 그렇게 남자 경험이 없으니 연기가 그 모양이지”라는 폭언을 들어야 했다고 한다. “(다른 여배우를 가리키며) ‘보라고, 저 여배우는 남자 친구를 많이 사귀니 몸놀림이 다르지 않냐’며 본받으라고 하더라. 새벽 술자리에 나오라고 해서 거부했더니 그다음부터 냉랭하게 대하는 게 느껴졌다”라며 불쾌한 경험담을 전했다. 특히 배우나 스탭을 구성하는 데 있어서 최고 결정권을 가지는 감독이 존재하는 현장에서, 성을 담보로 캐스팅을 좌지우지한다는 충격적인 제보가 이어지기도 했다. B감독의 영화에 캐스팅되어 촬영하던 중 갑자기 배우 교체 통보를 받았다는 모 배우는 “감독의 성적인 요구를 거부하자 캐스팅이 바뀌었다”는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성추행에 관한 제보도 여럿 잇따랐는데, 몇몇 건들은 아직 사실관계를 확인 중이다. 그중 언어폭력이나 성추행에 관한 문제는 지나치게 상습적이라 충격적이었다. 지난해 말 개봉했던 한 영화의 경우 “프리 프로덕션 단계에서 C감독이 콘티 작업을 빌미로 여성 스크립터를 오피스텔에서 성추행했다”며 “연출부 스탭들이 크게 반발하였으나, 제작사와 투자사에서 조치를 취하지 않자 크랭크인 당일 조감독을 제외한 연출부 인력 전원이 현장에 나타나지 않았다”는 제보도 있었다. 40대 초반의 유부남인 C감독은 이미 여러 편의 장편을 만들며 충무로에서 입지를 다진 감독으로, 여성 주인공 영화를 만들어 오히려 업계에서는 ‘여성의 시선을 잘 담아내는 감독’으로 알려져 있는 감독이었다. 하지만 제보자를 비롯해 작업을 함께했던 다른 스탭의 제보를 옮겨 보자면 “촬영현장마다 성추문을 만든 상습범으로 영화판에서 악명이 높으며, 스탭 구인을 할 경우에도 ‘OOO 감독 연출’이란 말을 들으면 여성 스탭들 대부분이 참여를 포기할 정도”인 요주의 인물이라고 했다.

피해자로 알려진 당시 스크립터와 연락을 취한 결과 “제보자의 말처럼 성추행은 아니고 언어폭력이 심했다”고 전한다. “여성비하나 성적인 농담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스타일의 사람이라 일하는 동안 자주 모멸감을 느꼈다. 그가 이렇게 막말을 일삼는 건 워낙 공공연한 일이어서 내가 이 현장에 간 걸 뒤늦게 안 지인들이 ‘왜 그 현장에 갔냐’며 나무라더라. 제작사 역시 이런 잡음을 알았는지, 콘티 작가부터 감독 주변 스탭들을 모두 남성으로 꾸렸는데 스크립터만 남자 스탭을 구하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내가 감독의 성적 농담이나 어깨를 주물러 달라는 등의 요구에 민감하게 반응하자 그가 한 말이 기억난다. ‘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 이런 따뜻한 영화를 만들었나 싶지? 내가 정반대의 사람이어서 그래.’ 그는 감독의 직권을 남용해 여성 스탭들을 상습적으로 괴롭히는 사람이었다.” 이에 대해 제작사 대표 역시 “스크립터가 나간 건 감독과의 불화도 있지만, 그보다 일 처리에 문제가 있어서였다”며 C감독의 지속적인 언어폭력에 대해서는 인지하고 있었다고 말한다. “연출부가 한번은 조심스럽게 감독이 성적 농담이 심하다는 이야기를 하기에, 감독에게 에둘러서 주의를 준 적은 있다. 이런 말 나오는 거 불편하니, 나와 일하는 동안은 그러지 말자고 권고했다”는 선에서 그쳤다고 말했다.

부서와 부서 사이, ‘남초’ 세계에서 벌어지는 2차 가해

올해 한 한•중 합작영화에서 현장 스틸기사로 일했다는 여성 D씨 역시 현장에서 겪은 성추행을 제보한다며 연락을 취해왔다. 합작영화지만 감독, 스탭, 주연배우가 모두 한국인이었고, 촬영도 한국에서 이루어져서 기존 한국 영화현장과 다를 바 없는 현장이었다. “조명팀 세컨드였고 유부남이었는데, 처음부터 대뜸 반말을 하며 친한 척하더니 갑자기 얼굴을 쓰다듬더라. 내가 놀라는 걸 보고는 대뜸 귓불을 만지더라. 이후 그를 피해 다녔는데, 예의 주시했더니 어린 여성 스탭들을 구석으로 유인해 가더라.” D씨는 자신뿐만 아니라 현장의 많은 여성 스탭들이 그로 인해 고통을 당했다고 말한다. “허벅지보다 더 깊숙이 손이 들어오는 경우를 당한 스탭도 있었다. 한번은 현장에서 영화에 나오는 고양이를 관리하는 연출부 스탭이 있었는데, 그 남자가 사다리에서 내려오는 그녀를 도와준다며 겨드랑이가 아닌 가슴까지 잡았다.” 정작 D씨가 이 사실을 알려야 했다고 생각한 건 사건 이후의 후속조치 때문이었다. “그 친구가 PD에게 울면서 일을 그만두겠다고 말해서 그 사람이 행한 그간의 악행이 공공연하게 현장에 알려졌지만, 조명팀 스탭에게 가해지는 압력은 없었다. PD님은 ‘내가 그 자리에 없어서 뭐라고 하기가 힘드니, 다시 한번 이런 일이 일어나면 조치를 취하겠다’고 했을 뿐이다. 조명팀 팀장 역시 이 부분에 관해서는 함구하더라.”

결국 문제를 알린 스탭은 며칠 후 현장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그녀는 “감독을 비롯해 경력이나 나이가 많은 남자 스탭들은 자기 지위를 이용해 신체적 접촉을 시도하는 등 성추행을 많이 한다. 막내급 여성들은 사실 이렇게 해도 반발하지 못하는 일이 많다”고 전했다. 그 현장이 더 악몽 같았던 건 나이와 지위를 이용한 스탭들이 추행을 일삼는 동안 또 다른 연출부 스탭까지 악행에 가세했다는 점이었다. 20대 후반의 슬레이트 치는 역할을 맡은 연출부였는데, 그가 촬영현장에서 몰래카메라로 의상팀 소속 여성 스탭을 찍고, 그걸 친구에게 카카오톡으로 보내며 성적인 농담과 폭언을 했다. 피해자가 사실을 알게 되고 이 부분을 공론화하면서 그간의 행동이 적발되었고 결국 현장에서 그는 퇴출됐다. “사안은 심각하지만, 감독과 PD가 알게 되면서 그 사람이 퇴출된 것에 대해서는 고무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건을 계기로 이런 문제일수록 숨기지 말고 공론화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작 규모가 큰 영화현장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은 단 하나. 얼마나 원활하게 현장이 돌아가느냐의 문제다. 가령 촬영팀 내에서 팀장과 팀원간에 성희롱 문제가 불거졌다고 하더라도, 다른 팀에는 그 문제가 다 같이 해결해야 할 심각한 사안이나 문제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폭탄 맞았네”라는 반응으로 돌아온다고 한다. 단기간에 촬영을 끝내야 하는 상황에서, 촬영을 지체하게 하는 요소들이 모두 ‘성가신 사안’이 되기 때문이다. 한 프로듀서는 “막말로 촬영이 하루 딜레이되면 그 제작비 누수가 얼마인가. 막대하다. 프로듀서로서는 현장에서 문제가 있더라도 아무 해결안이라도 강구해 촬영이 지속될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더 충격적인 것은 “헤드급 촬영 스탭이 가해를 한 사실을 알아도 그에게 문제를 지적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러면 현장이 스톱될 수 있고 촬영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데, 이 과정에서 제작진이 누굴 택하겠나. 결국 다른 인력으로 대체할 수 있는 막내급이 아니라 헤드급을 택할 수밖에 없는 게 아닌가.” 그렇게 오히려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가 현장을 떠나게 되는 것이다. 결국 정해진 일정표에 따른 촬영 진행이 최우선이 되면서, 현장 스탭들에게 공격의 대상이 되는 사람은 문제를 일으킨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라는 사실이다. 현장 경험 10년차라는 한 스탭은 “현장에서 더러 문제가 생기는 경우를 봤다. 그런데 이같은 분란이 생길 경우 가장 빠른 해결책은 피해자가 조용히 일을 그만두는 것이다. 그래서 그 자리에 새로운 스탭을 충원하면 일이 문제없이 돌아간다. 매일 출근을 하는 일반 업무와 달리, 현장은 3~4개월 정도의 단기간에 쉴 틈 없이 빨리 프로덕션이 진행되어야 한다. 인력을 구성하는 메커니즘이 다른 직업과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고도 덧붙였다.

촬영현장의 바깥, 영화 마케팅이라는 사각지대

멀리 부산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을 당일에 서울의 다른 현장에서 상당수 공유할 정도로 영화계는 좁다. 여러 현장에서 함께 일했던 스탭들이 있고, 그만큼 정보나 소문이 빠르게 공유되는 곳이 영화계다. 그렇게 ‘좁은’ 영화계의 특수성이 이후 피해자를 더 속박하는 구조가 된다는 것도 짚어볼 만한 문제다. 또한 스탭들이 일의 특성상 정규직이 아닌 계약직이라는 점도 이중의 고충이 된다. 한번 이같은 문제가 생겨서 소문이 나게 되면, 피해자가 영화계에서 ‘현장에 분란을 일으키는 사람’으로 낙인찍히게 된다. 그렇게 블랙리스트에 오르면, 다른 프로젝트의 일을 구하기가 힘들어지는 것이다. 또 다른 E감독의 현장에서 들려온 사례는 이같은 피해 여성들의 고충을 잘 설명해준다. 현장에서 팀장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는 미술팀의 한 스탭은 E감독에게 공식적으로 이 문제를 제기했다. “지방 촬영 중 술자리에서 남자 연출부 한명이 외롭다고 함께 있자며 내 몸을 더듬었다. 불쾌감을 표시하고 숙소로 돌아왔는데 그 남자가 숙소까지 따라와서 강제로 문을 열고 나를 덮친 후 성기를 몸에 비볐다.” 이같은 피해사실을 알렸지만 문제를 공론화한 이후 돌아가는 상황이 이상했다. 해당 현장에서 하차하라는 말과 함께, 팀장으로부터 들은 말은 더 가관이었다. “성적인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것 같은 현장은 데려갈 수 있는데, 그런 여지가 있는 곳에 너를 배치하는 건 힘들겠다”는 것이었다. 연달아 두편의 영화 현장에서 ‘아웃’되면서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는 그는 자신이 고충을 토로했던 E감독이 자신의 뒷담화를 하고 다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곧 감독을 찾아가 해명해달라고 했지만, 감독은 그 부분에 대해서 발뺌을 할 뿐이었다. 그처럼 정작 성추행을 한 가해자뿐 아니라 현장의 조율자 역할도 하리라 믿고 자신의 문제를 토로했던 감독에 대한 분노도 컸다고 말한다. 그는 앞서 여성 주인공 영화를 만들었던 C감독처럼 한국의 근현대사 문제를 다룬 영화를 만들면서 이른바 ‘의식 있는 감독’이라는 언론의 호평을 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피해자인 여성에 관해서는 악의적이기까지 한 행동을 보이는 이중적인 인물이었다. 그 E감독이 여성들에게 가한 폭력에 관해 다른 여배우의 제보도 뒤따랐는데, “‘다른 여배우는 잠자리를 같이하면서까지 영화에 출연하는 열의를 보이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는 너는 근성이 부족하다’는 말까지 들었다”며 “신인 여배우들의 열정과 패기를 이용하려는 이들이 너무 많다”고 울먹였다.

영화제작사, 투자사뿐만 아니라 언론 매체까지 대면하는 영화 마케터 역시 이 문제에 관해서 자유로울 수 없다. 블록버스터급 사극의 촬영현장 공개 취재건으로, 중국 현장에 갔다는 한 마케터는 취재를 나온 한 지상파 방송국 F기자로부터 “술안주를 하고 싶으니 스낵류를 가지고 방으로 올라오라”는 요구를 들었다고 한다. “밤이 늦었으니 그만하라고 했지만 요구는 계속되었다. 그 밤에 방으로 부르는 게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가 거절했다.” 결국 새벽에 온 전화를 받지 않았는데 문제는 그 다음날 일어났다. 콜타임이 지났는데도 그가 호텔 방에서 나오지 않아 배급사 남자 직원이 부르러 가자, 마케터의 태도에 기분이 나빠져 취재를 거부하겠다며 그길로 짐을 싸서 떠났다. “제작사, 배급사 직원 모두 그 기자가 너무하다, 대처를 잘했다고 했지만 한편으로는 나를 향해 ‘성질 좀 죽이지’라는 뉘앙스의 시선을 보냈다. 어쨌든 그 밤에 겪은 괴로운 일은 성추행이 아니라, 유력 방송사에 영화가 소개되는 기회가 줄어드는 것으로 인지되는 것이었다.”

언어폭력은 차라리 비일비재하고 공공연하기까지 하다. 특히 노출이 많은 영화현장에서는 성희롱에 가까운 언사가 공공연하게 발생한다. 지난해 개봉한 사극 현장에서 일한 스탭이 현장에서 겪은 성희롱 문제는 심각한 수준이었다고 말한다. “노출 대역이 연기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조감독이 ‘저딴 몸을 가지고 어떻게 배우 하겠냐’며 다른 스탭들이 모두 있는 자리에서 뒷담화를 하더라.” 한 여성 프로듀서는 이번에 현장에서의 성폭력 이슈들이 대두되면서 오히려 자신이 그 가해자가 아닌지 의심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현장은 소위 ‘남초’의 세계다. 거친 현장에서 살아남는 법은 여성인 내가 그들보다 더 센 표현력을 가지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행동했다. 그러다보니 오히려 나보다 경력이 적은 스탭들에게 내가 지금 이야기되는 성희롱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반성이 들더라. 이번 기회를 통해 모두가 자신이 인지하지 못했던 일들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이제 겨우, 말하기 시작했다

현재 제보를 받고 있는 <씨네21> 메일(es@cine21.com)로 여전히 많은 제보들이 들어오고 있다. 한 여성 스탭은 “매체에서 이 문제에 대해서 공론화해주는 것에 대해 감사하다”고 전했다. “피해 사실을 성폭력상담소에 가서 상담한 적이 있다. 그런데 영화계 현장의 특수성에 대해서 그들 역시 조금 색안경을 끼고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한번 방문하고 나서, 이해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예 그쪽에 더이상 연락을 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최근 <걷기왕> 현장에서 스탭들에게 성희롱 예방교육을 실시한 것과 달리, 영화현장에서의 사전교육은 전무한 상황이다. 한 프로듀서는 “이런 교육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만, 현장의 특성상 프로젝트가 시작되기 전에 각 스탭들은 다른 현장에서 일을 하고 있어 사전에 모일 시간을 마련하기가 어렵다. 촬영이 시작되면 불가능한 일인데, 사전에 모이는 것 자체를 모두가 꺼리는 분위기다” 라며 그간의 상황을 전해왔다. 하루아침에 해결책이 나오지는 않을 것이다. <씨네21>은 제보의 창구를 계속 열어둘 예정이다. 앞선 문제제기나 제보 역시 추가적으로 검토해나갈 예정이니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함께 참여해주길 바란다.

이제 영화계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영화인들이 말한다

“영화계 현장은 기존 사업장과 다른 특수성을 가지고 있다. 팀별 권력관계 안에서 성희롱, 성폭력이 자행되는 것이 아닐까. 문제를 느끼더라도 이 문제를 고발하고 상담해 공론화할 수 있는 창구가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이 부분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를 거쳐 내년 상반기 창구를 만들 예정이다.” _심재명 여성영화인모임 이사, 명필름 대표

“현장에서 성희롱과 관련한 일련의 사건들이 종종 있어왔다. 현장에서 사건이 발생할 경우, 성추행이나 성폭력 등의 규정에 대한 기준이 모호하게 마련이다. 이에 여성영화인모임에서도 사태의 심각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며, 이번주 중으로 여성 영화인을 위한 창구를 마련하는 회의를 열 예정이다. 여성가족부 등 타 기관과 연계를 통해서 이 부분에 대한 보다 확실한 창구 역할을 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나가려고 한다.” _이은혜 여성영화인모임 간사

“마케팅은 일의 특성상 언론매체와 제작사 등을 직접 대면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불가피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하지만, 2000년대 초반 이후에는 전반적으로 성적인 부분에 있어서 무례한 요구나 행동들이 줄어들고 있는걸 체감했다. 다만 협회 회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협회 정관에 성희롱, 성폭행 관련 내용도 마련되어야 할 것이며, 앞으로 성희롱 교육 프로그램을 실행하는 데 힘을 쏟을 예정이다. 특히 그런 문제를 발생시키는 가해자의 경우 협회 차원에서 (기자의 경우) 취재권을 박탈한다거나 형사고발까지 불사할 것이다.” _장보경 영화마케팅사협회 대표, 영화홍보사 딜라이트 대표

“조합원의 분쟁에 대한 제재를 가할 수 있는 인사위원회가 내부에 마련되어 있다. 사건 피해자와 가해자, 양자의 입장을 들어보고 혐의가 있을 경우는 조합원의 자격을 박탈한 선례가 있다. 특히 성폭력 문제가 발생한 경우라면 형사처벌과 관련된 문제이니 조합에서도 단호하게 대응할 예정이다.” _안영진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대표

“한국독립영화협회에서는 여성, 성소수자를 향한 성희롱, 성폭력에 관한 자체 내규를 마련하고 있으며 2012년부터는 성평등위원회를 만들어, 정기적으로 중앙회의에서 안건을 처리하고 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조치와 징계라는 사후 차원을 넘어서, 아직 방지책이 없다는 점이다. 교육을 받을 창구가 없다보니, 문제가 빈번히 발생하고, 이후 개별 단체들이 해결해야 할 몫으로 남게 된다. 각 단체들이 모인 태스크포스를 만들어서 지금 만연해 있는 여성혐오와 성폭력 사태에 대한 논의를 이어나가야 할 시점이다.” _김동현 서울독립영화제 부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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