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0년대 프랑스 파리외방전교회에서 천주교 불모지였던 조선에 모방, 샤스탕, 앵베르 세명의 선교사를 파견한다. 직접 조선으로 들어갈 길이 없었던 이들은 중국 베이징에서 겨울을 기다려 강을 건넌다. 상복 차림으로 얼굴을 가린 채 신도들을 만나고, 위험을 무릅쓰고 선교 활동을 벌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체포된 이들은 선교의 꿈을 미처 다 이루지 못한 채 처형당하고 만다.
천주교 홍보 영화가 되지 않길 바랐다는 김대현 감독의 말처럼 <시간의 종말>은 한국 천주교의 험난했던 역사에 대해 마음을 담아 이야기하지만 관객의 신앙심엔 호소하지 않는, ‘종교영화’로는 쉽지 않은 균형감을 유지한다. 감독이 던진 질문의 진정성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김대현 감독의 질문은 명쾌하다. 무엇이 순교자들로 하여금 낯선 이방인들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내놓도록 만들었는가? 결국 ‘순교’란 무엇인가? 천주교 신자가 아닌 그에게 어떤 계기로 이런 질문이 찾아왔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그는 한국 천주교의 흔적을 집요하게 찾아간다. 영화는 한국에 머물던 샤스탕 신부의 편지를 따라 그의 고향인 프랑스 작은 마을을 찾아가기도 하고, 프랑스 오지에 파견된 한국인 신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 어느 순간 한국에 평생 머물며 선교 활동을 하는 프랑스인 신부를 찾아가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이때 또 하나의 중요한 축을 이루는 것이 2차 세계대전 당시 포로수용소에서 올리비에 메시앙이 작곡한 <시간의 종말을 위한 4중주>이다. 자신의 믿음을 위해 목숨을 바쳤던 모든 이들을 애도하듯 순교자들의 흔적 곳곳에서 <시간의 종말을 위한 4중주>가 연주된다. 그 울림이 꽤 묵직하다.
배우 황건을 캐스팅해 김대건 신부의 이야기를 ‘재현’해낸 것은 자칫 다큐멘터리의 몰입도를 떨어뜨릴 아슬아슬한 선택처럼 보이지만 순교의 순간, 그들의 몸에서 뿜어져나오는 붉은 피의 강렬함을 충분히 전달한다. 짧은 상영시간에 너무 많은 사건을 한꺼번에 담아내려다 보니 진득하게 영화의 여운을 느낄 새가 부족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