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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제 18회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에서 만난 애니메이터 실뱅 쇼메
송경원 사진 최성열 2016-11-02

실뱅 쇼메는 유럽을 대표하는 애니메니터 중 한 사람이지만 우리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지난해 첫 번째 실사영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2013)이 기대 이상으로 좋은 반응을 보이며 국내 팬들에게 한발 친숙하게 다가왔다는 게 이례적이라 해도 좋을 만큼 그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애니메이션 감독이다. 데뷔작 <노부인과 비둘기>(1997)로 안시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 작품상을 수상한 이래로 <벨빌의 세 쌍둥이>(2003), <일루셔니스트>(2010) 등 아카데미 시상식에만 4번 노미네이트될 정도로 작품마다 평단의 기대와 관심을 한몸에 받는다. 그는 작품을 자주 선보이는 편은 아니다. 대신 작화, 시나리오, 작곡까지 도맡으며 철저하고 완벽하게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는 작가로 정평이 나 있다. 자본주의에 대한 풍자, 무성영화와 움직임에 대한 애정,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향수와 그리움으로 요약되는 실뱅 쇼메의 작품 세계는 ‘실뱅 쇼메’라는 고유명사 말고는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 파스텔톤의 따스한 그림체도 독자적이고 음악과 리듬으로 이를 전하는 연출방식도 드문 재능이지만 이 모든 게 결합했을 때 실뱅 쇼메가 창조하는 세계는 유일무이한 순간으로 기억된다. 실뱅 쇼메만큼 작가라는 칭호가 어울리는 이도 드물고 그만큼 알려지지 않은 작가도 드물 것이다. 오랜 기간 노출을 꺼려온 실뱅 쇼메가 침묵을 깨고 한국을 방문했다.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을 찾은 그를 만나 실뱅 쇼메라는 세계의 이모저모에 대해 물었다. 여기 정지된 세계에 생명을 부여하는 마법의 비결이 있다.

-은둔자로 불릴 만큼 공식적인 행사를 자주 하지 않았다. 이번에 한국을 방문하게 된 계기는.

=특별히 외부활동을 기피한 건 아니다. 비행기를 타는 걸 정말 싫어해서 잘 돌아다니지 않은 것뿐이다. 해외영화제에서 초청이 꽤 많이 들어왔는데 일일이 거절하기 미안해서 내가 일부러 비행기를 못 탄다는 소문을 냈다. 이번에 한국을 방문했으니 더이상 그런 변명이 통하지 않을 텐데 걱정이다. (웃음)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한 잘 움직이지 않는다. 대략 10년 정도는 별다른 외부활동 없이 산 것 같다. 동양문화에 관심이 있었고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이 프랑스보다 한국에서 더 사랑을 받았다는 게 신기했다. 10만명이 넘는 관객이 영화를 본 이유가 뭔지 궁금해 한국행을 결심했다.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

음악과 그림의 마술적 결합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이 한국에서 사랑받은 이유가 뭔지 알게 됐나.

=아직은 알아가는 중이다. (웃음) 이유를 알기보다 우선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관객이 내 작품을 봐주는 건 이유를 막론하고 기쁜 일이다. <벨빌의 세 쌍둥이>는 개봉한 지 13년이 넘은 영화인데, 한국에서 이번에 개봉한다고 들었다. 놀랍고 반갑고 신기하다. 나는 관객과 함께 내 영화를 감상할 때 행복을 느끼고 그래서 이번 방문이 무척 기대된다. 작업 과정의 트라우마가 떠올라 자신의 작품을 극장에서 다시 보지 못하는 애니메이터들도 꽤 있지만. (웃음)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을 재미있게 본 분이라면 <벨빌의 세 쌍둥이>도 즐길 수 있으실 것 같다. <벨빌의 세 쌍둥이>에서 내가 직접 음악을 작곡했는데, 그 음악에 다시 영감을 받아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을 연출했다. 두 작품 사이 연결고리들을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두 영화 모두 음악적인 요소가 많고, 음악을 연주하는 인물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벨빌의 세 쌍둥이>는 그림만큼이나 귀가 즐거운 영화다. 마티외 셰디드와 함께 작업한 테마곡 <벨빌 랑데부>도 좋지만 타악기로 리듬감을 만들어내는 스톰프 음악이 특히 인상적이다.

=<벨빌의 세 쌍둥이>를 만들 당시 캐나다 몬트리올에 잠시 거주했다. 그때 냉장고와 선반을 가지고 음악을 연주하는 스톰프 음악을 접했다. 그 장면을 포함해 영화 전반이 스톰프의 리듬감에 영감을 받았다. 한시도 멈추지 않는 등장인물을 그리고 싶었고 그에 어울리는 음악이라 판단했다. 등장인물이 신문 등 각종 도구를 활용해 끊임없이 음악을 만들어내는 장면들이 이 작품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작곡은 물론 직접 연주까지 한다. 얼마 전 <조란, 마이 네퓨 더 이디엇>(2013)에서는 배우로도 출연했다. 일러스트레이터로도 활동 중이고 만화도 그린다. 어떤 역할이 가장 몸에 맞는 옷처럼 편안한가.

=굳이 나누고 규정짓고 싶지 않다. 무언가에 영감을 받고 어떤 형태로든 화답하고 싶은 마음은 자연스럽게 피어난다. 그때 내가 표현할 수 있는 방식 중 가장 적합한 형식을 활용한다. 그림은 2살 때부터 그리기 시작했기 때문에 내겐 또 하나의 언어나 마찬가지다. 음악의 경우엔 아직 악보를 제대로 그리지 못한다. 귀로 듣고 기타와 피아노를 통해 표현하는 식이다. 최근에는 우쿨렐레에 흠뻑 빠져서 자주 활용하는 편이다.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에도 우쿨렐레를 등장시켰다. (웃음) 작곡하는 것이 그림에 대한 동기 부여가 될 때가 많다. <벨빌의 세 쌍둥이>와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의 음악은 모두 작곡했다. 사실 그림은 즐거움이라기보다는 당연함이고, 음악은 의식적으로 만들어가는 재미가 있어서 즐겁다.

<노부인과 비둘기>

-<벨빌의 세 쌍둥이>의 자전거 선수, <일루셔니스트>의 마술사,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의 피아니스트까지, 매 작품 동작으로 마음을 표현하는 마임이스트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때문인지 작품을 보다보면 애니메이션을 본다는 것만큼 듣는다는 기분에 빠진다.

=정확하다. 애니메이션은 이미지로 구현하는 하나의 음악이라 생각한다. 실사영화와 가장 큰 차이가 그 부분이 아닐까 싶다. 애니메이터들이 종이에 그림을 그리는 건 작곡가가 음계를 그리는 것과 같은 행위다. 리듬을 모르는 애니메이터는 그림은 그릴 수 있겠지만 애니메이션을 만들 수는 없다. 거꾸로 <벨빌의 세 쌍둥이>에서 음악을 맡은 베누아 샤레스는 빼어난 일러스트레이터다. 음악과 그림은 기본적으로 뇌의 같은 부분을 쓰는 작업 같다. 음악과 그림은 리듬이라는 공통된 코드로 묶여 있고 이 둘이 결합했을 때 굉장한 시너지가 일어난다. 예를 들어 내가 가장 사랑하는 장면은 바보스러운 캐릭터가 흥겨운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장면이다. 이 순간 음악과 율동이 하나로 섞이는 마법이 일어난다.

<벨빌의 세 쌍둥이>

에곤 실레와 자크 타티에게서 영감을 받아

-배우, 감독으로 실사영화도 경험해봤는데 애니메이션과 가장 큰 차이가 무엇인가.

=모든 것들을 창조할 수 있다는 거다. 존재하지 않는 것들조차도 만들어낼 수 있는 건 애니메이션만의 영역이다. 실사영화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때론 낡았다는 느낌을 줄 수도 있는데 그림은 상대적으로 시간으로부터 자유롭다. 한마디로 창의적인 작업 안에서 무한에 가까운 자유를 누릴 수 있다. 그렇게 창조된 세계에서 애니메이터가 절대적인 힘을 갖게 된다는 게 애니메이션을 하는 이유 중 하나다. 나도 실사영화를 경험했지만 실사 현장은 배우, 스탭, 하다못해 날씨까지 여러 가지 통제 불가능한 변수들과 끊임없이 씨름을 해야 한다. 무엇보다 애니메이션은 등장인물이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게 가장 큰 매력이자 힘인 것 같다. 우리의 상상으로만 존재하던 대상에 물질적으로 생명과 영원을 부여한다.

-당신이 사랑하는 마임이스트들은 잊혀져가는 것들이나 한때 소중했던 기억들을 수집한다. 멈춰진 그림이 아니라 움직임으로 표현되는 것들이 중요하다는 건가.

=예컨대 그래픽노블은 일종의 소설에 가깝다. 작가가 혼자 작업하고 독자들도 그 세계와 홀로 마주하며 새로움을 발견하는 기쁨이 있는 장르다. 팬과 종이만 있으면 창조할 수 있는 세계라 움직임과 음악 등의 요소가 빠져 있다. 애니메이션은 스토리보드를 만들고 그것을 움직임으로 현실화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사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단계이기도 하다. (웃음) 한 스튜디오에 대략 50명의 애니메이터가 있다고 하면 이들이 각자 원하는 스타일이 다르다. 이 부딪힘을 조율하는 작업이 힘들다. 반면 실사는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지만 각기 다른 영역에서 작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충돌이 덜한 것 같다. 개인적으로 내가 작업을 할 때 가장 큰 기쁨을 느끼는 순간들은 모든 작업이 끝난 후 마지막에 음악을 입히는 과정이다. 하나의 음악 안에 녹아드는 일체감은 언제 겪어도 행복하다.

-애니메이터를 표현하는 첫 번째 연출은 작화다. 수채화풍의 작화와 다소 과장된 생김새, 긴 손가락과 의외로 역동적인 움직임 등이 실뱅 쇼메 하면 떠오르는 스타일인데.

=기본적인 스케치 방식은 에곤 실레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내면의 감정을 형성화한 듯한 과장된 표현들, 대표적으로 긴 손가락의 곡선 등에 매료됐다. 구체적인 캐릭터를 잡는다면 자크 타티 같은 무성영화 시대의 대배우들의 움직임을 사랑한다. 내 작업의 핵심은 언제나 움직임과 캐릭터다. 움직임에 집중하기 위해 대사를 지우고 마임에 가까운 동작들을 반복한다. 자크 타티나 버스터 키튼 같은 무성영화 시기의 대배우들에게 영향을 받은 것도 있다. 동작에 신경을 쓰다보니 작화 자체보다는 카메라의 움직임과 시점에 좀더 많은 공을 들이는 편이다. 캐릭터들의 동선을 최대한 살리는 방식으로 카메라의 위치를 계산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캐릭터다. 모든 작업의 시작이자 끝이라 해도 무방하다. 나를 매료시키는 캐릭터들이 머릿속에 떠오르면 그들을 어떻게든 구체화하려 노력하고, 그러다보면 어느새 작품이 완성되어 있다.

-3D애니메이션이 산업적으로 대세란 건 부정할 수 없다. 언젠가 3D 방식을 활용할 수도 있나.

=실사영화에서 활용할 수는 있어도 애니메이션에서 사용할 일은 없을 거다. 내 뿌리는 <틴틴의 모험>과 같은 그래픽노블을 양분으로 자랐다. 디즈니나 마블로 대표되는 북미 애니메이션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세계를 구하는 슈퍼히어로보다는 어둠을 지닌 안티히어로에 끌리고, 꿈과 희망의 아름다운 세계도 좋지만 어둡고 더러운 면을 보여주는 데 망설이지 않는 작품들이 좋다. 예술적인 애니메이션들만큼 실사영화들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다만 3층에서 떨어져도 다친 곳 하나 없는 슈퍼히어로가 나오는 영화가 아니라 먹고 자고 배설하는 인간의 삶을 보여주는 캐릭터에 끌린다. 그런 캐릭터들이 보여주는 인간적인 면모들, 100명이면 100명이 모두 다른 삶의 모습을 사랑한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3D로 만든 애니메이션을 보면 단 하나의 스타일밖에 없다고 느껴진다. 적어도 내 눈엔 다 똑같아 보인다. 산업적으로 효과적인 면이 있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예술의 빈곤화를 불러오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뿌리 이야기가 나왔으니 근본적인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왜 애니메이션인가.

=어릴 때부터 커서 뭐할 거냐는 질문을 받으면 늘 만화를 그릴 거라고 했다. 열살 터울의 누나가 있었지만 많은 시간을 홀로 보냈고 내 마음의 소리에 집중하는 것이 더 편안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예술과 만화를 접목할 방식을 찾아다니다 앙굴렘미술학교에 갔는데, 그곳에서 <벨빌의 세 쌍둥이>의 전신이 된 단편 <노부인과 비둘기>를 함께 작업한 니콜라스 드 크레시를 만났다. 사실 생계를 위해 애니메이션 업계에 뛰어들었지만 나와 맞지 않았다. 이후 각국 영화제들을 돌아다니면서 예술적인 작품들을 접하며 한동안 잊고 있었던 마음의 소리에 다시 귀기울이게 됐다. 나도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 커졌고 실행에 옮긴 거다. 영국으로 건너가 일러스트레이터 작업을 하던 중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 시작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해외 스튜디오와 첫 단편 작업을 시작했다. 그 뒤로는 단 한번도 내 안의 소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것 같다.

-작품을 시작할 때 특정 스토리에 끌리는 건가, 아니면 캐릭터로부터 출발하나.

=두 가지가 구분되는 건지 잘 모르겠다. 정확히는 등장인물의 여정, 그리고 세상을 보는 시선에 끌린다. 가령 내게 큰 영향을 줬던 영화 중 하나가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2003)다. 폭력과 부드러움이 공존하는 영화였고 내가 추구하는 바이기도 하다. 이야기는 한번 끝나면 다시 들춰보고 싶지 않지만 시각적으로 나를 뒤흔드는 게 있으면 계속해서 다시 보고 싶어진다. 귀에 꽂힌 노래를 계속 흥얼거리는 것과 비슷하다. 예를 들어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의 <캐스트 어웨이>(2000) 같은 영화가 내게 그런 시각적 영감을 줬다. 이때 이미지란 이야기와 분리된 것이 아니다. 말 그대로 ‘여정을 그린’ 이미지들을 좋아한다. 아이들이 마음에 드는 작품이 있으면 무한반복해 보는 것과 비슷하다.

<일루셔니스트>

영화 같은 마술, 마술 같은 영화

-자크 타티가 남긴 시나리오로 작업해서 그런 게 아니라 <일루셔니스트>의 마술사를 보면 자크 타티보다 훨씬 자크 타티 같다는 느낌이 든다.

=특별히 고전영화를 찾아보거나 그런 캐릭터들을 일부러 되살리려 하는 건 아니다. 중요한 건 내가 그 캐릭터들에게 얼마나 공감할 수 있느냐의 문제다. 등장인물에 동일시되어 그 캐릭터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해져야 한다. 자크 타티가 남긴 스크립트를 읽어봤을 때 이건 반드시 자크 타티가 이 역할을 맡아야 하는 이야기라고 느꼈다. 당시에 타티가 손을 다쳐서 마술을 보여줄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들었다. 더불어 <일루셔니스트> 는 자크 타티의 사적인 경험담이 녹아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본인이 이 이야기를 끝내 영화화하지 못했던 건 그런 이유도 있을 거라 상상한다. 그래서 <일루셔니스트>를 작업할 때 모델로 삼았던 건 자크 타티가 연기했던 ‘윌로씨’가 아니라 우아하고 운치 있는 자크 타티 본인이었다. 예컨대 윌로씨는 파이프 담배를 피웠지만 자크 타티는 시가를 피웠고 <일루셔니스트>의 마술사도 그래서 담배를 피우는 모습으로 그렸다.

-<일루셔니스트>는 아름답고도 애잔하다. 과거를 소중히 여기면서도 뒤돌아보는 시선에서 이제는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향수, 애상 같은 감정들이 차오른다. 마술사가 남기고 간 마지막 메모, “더이상 마술사는 존재하지 않아”(Magician do not exist)의 의미를 설명해준다면.

=그 메모는 자크 타티의 원문 스크립트 안에 있던 메시지라서 나도 정확한 의미를 말할 수 없다. 관객에게 영화란, 영화가 주는 환상이란 무엇인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 게 아닐까 짐작한다. 개인적으로는 ‘마술’이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먼저 던져보게 됐다. 마술은 존재하지만 마술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닐까. 마술적인 순간은 일상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고 마술을 부리는 마술사를 지나치게 의식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자크 타티에겐 딸이 하나 있었는데 딸에게 눈에 보이는 것을 다 믿지 말라는 충고를 건넨 게 아닐까 상상해봤다. 특히 너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남자를 믿지 말라고. (웃음)

-이번 마스터클래스에서 당신의 딸이 만든 짧은 애니메이션 영상도 소개했다. 자크 타티처럼 딸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영화야말로 마법이란다.” 그리고 그 마법은 영화와 창작자, 영화와 관객 사이에 존재한다. 딸에게는 자신이 만든 점토 인형들의 움직임이 마법일 것이다. 나 역시 어렸을 적 그린 그림들, 만났던 만화들 속에서 마법의 순간을 발견한다. 어릴 적 8개의 필름이 담긴 원통형의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는데 그들은 실제가 아니지만 분명히 내 안에 존재하고 있었다. 지금도 작업하는 작품 속 캐릭터들이 생명을 얻었을 때 이거야말로 마법이라고 느끼는 순간이 종종 있다.

-차기작 <1000마일>은 페데리코 펠리니의 작품들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하던데.

=특정 영화에 영향을 받았다기보다는 1950~70년대 이탈리아영화에 대한 오마주다. 이탈리아 자동차 경주를 소재로 하며 할아버지 형제가 등장하는데 낡은 자동차를 탄 두 사람의 회상을 따라가는 일종의 로드무비다. 1910년부터 80년까지 긴 시간의 여정을 따라간다. 두 형제 중 한명이 페데리코 펠리니와 닮았다. 덩치도 크고 목소리도 크고 화도 잘 낸다. (웃음) 나머지 한명은 반대로 조용하고 진중한 성격이다. 전작들에 비해 대사가 꽤 많을 것 같다. 다만 여기서 대사는 일종의 음악처럼 리듬이나 동작과 결합된다. 이탈리아인들의 과장된 동작과 표정들이 흥미롭게 다가왔고 어떤 대사라도 단순한 목소리 이상의 움직임으로 느껴질 수 있을 것 같다.

-다소 추상적인 질문으로 마무리하고 싶다. 당신에게 애니메이션은 무엇인가.

=애니메이션을 만들면서 가장 기쁜 순간은 마지막 믹스 작업을 할 때다. 이제껏 작업한 결과물들에 생명의 숨결을 불어넣는 기분이 든다. 굳이 실사와 애니메이션의 경계를 가르고 싶지 않지만 생명을 불어넣는다는 의미에서 애니메이션이 지닌 행복함이 있다. 음악, 그림, 실사, 어떤 형태로든 내 안에 있는 행복감, 웃을 수 있는 순간들이 울림에서 울림으로 퍼져나갈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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