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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영화 어디로 갈까
2002-04-03

지난해 5월 이탈리아 총선에서 실비오 베를루스코니(그는 주요 민영 방송사 3개, 출판사, 인터넷 회사, 영화사, 부동산 회사 등을 연합한 거대 그룹 피닌베스트의 창설자다)가 이끄는 우파 및 극우파 연합당이 압도적인 승리로 정권을 잡은 뒤, 이탈리아 영화계에 상당한 변화가 일고 있다. 베를루스코니 정권은 지난해 10월부터 영화의 전반적인 시스템을 개혁한다는 취지 아래 국회의 특별 동의를 얻어 여러 중요한 영화 기관의 수장들을 임기도 끝나기 전에 갈아치우고 그 자리를 영화와 무관한 베를루스코니의 측근들로 채워왔다. 먼저 이탈리아 최대 규모인, 국가가 관리하는 스튜디오 `시네치타 홀딩'의 대표 라우다디오는 “새로운 테크놀로지 산업에 대한 투자를 촉진하고 인터넷 서비스를 개발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이유로 지난해 10월 해임 결정됐다. 이어 베니스 비엔날레의 회장인 파올로 바라타가 쫓겨나면서 그 밑에서 베니스 영화제 위원장직을 맡고 있던 알베르토 바르베라도 덩달아 그만두게 되었다. 알베르토 바르베라의 사임은 앞으로 베니스 영화제의 성격이 급격하게 변모할 것이란 관측을 낳고 있다. 사실 그간 베니스 영화제가 칸 영화제와 달리, 떠들썩하지 않고 차분한 ‘예술 영화제’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건 바르베라 개인의 ‘시네필(영화애호가)’적인 성향 덕이 컸다. 그뿐만 아니라 올 1월에는 로마 국립영화학교 원장이던 리노 미치체가 해임당했다. 특히 미치체의 해임은 영화계에서 처음으로 집단적인 반발을 일으켰다. 이탈리아에서 가장 중요한 시네마테크(필름 보관소)이자 유럽에서 제일 방대한 영화 자료를 소장하고 있는 국립영화학교의 원장직을 영화계 경력이 전혀 없는 사회학자 프란체스코 알베로니란 인물에게 맡긴 때문이었다. 로마 광장에서 열린 항의 집회에는 타비아니 형제, 베르톨루치를 비롯해 300명 이상의 감독이 모였다. 신자유주의에 입각한 베를루스코니의 영화 정책은 기본적으로 그의 ‘3I’ 정책(Inglese, Impresa, Internet; 영어, 기업, 인터넷)에서 기인한다. 알베르토 바르베라 베니스영화제 위원장의 후임으로 마틴 스콜세지나 쿠엔틴 타란티노를 선임하기 위해 이탈리아의 문화부 차관이 직접 뉴욕에 다녀 온 사실에서 짐작할 수 있듯(결국 위의 두 사람은 고사했다), 베를루스코니 정권의 영화정책의 초점은 무엇보다 ‘스타’와 ‘대중성’이다. 문제는 이러한 영화정책이 예술영화의 기반을 먹어들어갈 때 국가가 예술영화를 지원할 의무가 있다는 프랑스식의 사고방식이 이탈리아에선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난니 모레티는 “자신을 스타와 동일시하려는” 이탈리아 국민들의 의식에 그 원인을 돌렸지만, 이게 비단 이탈리아만의 특수상황은 아닌 듯하다. 앞으로 이탈리아 영화감독들이 베를루스코니의 전제적 문화권력으로부터 어떻게 자신의 독립성과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는지 지켜볼 일이다. 파리/박지회·파리3대학 영화학과 박사과정 dolbach@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