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절 논란부터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논란까지, 언젠가부터 한국 현대사는 우리 사회에 분란을 일으키는 애물단지처럼 여겨지게 되었다. 그러는 와중에 정작 중요한 ‘우리가 살아온 이야기’로서의 현대사마저 밀쳐두고 있는 건 아닐까?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우리의 할아버지·할머니·아버지·어머니·삼촌·이모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더듬으며 지금까지 우리가 알아왔던 한국 현대사에 대한 편견을 깨보자. 바로 요즈음 각광받는 역사 읽기의 신조류 ‘한국현대 생활문화사’를 소개한다.
승승장구하는 양념통닭
오늘날 우리가 기억하는 대부분의 것들은 1980년대에 뿌리를 두고 있다. 1982년 개막한 프로야구, 1984년에 한국에 상륙한 KFC, 1988년 서울올림픽과 200만호 아파트 건설 등 지금까지 우리의 의식주를 지배하는 많은 것들의 기원은 1980년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중 가장 눈여겨볼 만한 것은 양념통닭이다. 1970년대 말의 심각한 불황이나 1980년대 초의 외채 위기 그리고 박정희 독재와 5·18민주화운동 같은 비극적 사건을 경유하는 사회 변동 속에서 우리의 음식 문화와 미각도 급변했다. 1986년 아시안게임 전후로 닭고기의 경쟁자인 개고기는 몰락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고, 전기구이 통닭을 거쳐 서서히 인기를 끌던 닭고기는 1982년 프로야구 개막과 동시에 ‘치맥’이라는 고유한 이름을 얻기에 이른다. 그뿐만 아니라 떡볶이를 먹어온 사회가 만들어낼 수 있는 최고의 작품인 양념통닭, ‘배달’의 전통까지 가세한 한국 치킨은 세계 굴지의 프랜차이즈 튀김닭과 당당히 맞서나갔다.
스포츠공화국의 탄생
1980년대의 전두환 정권은 3S(섹스, 스크린, 스포츠) 정책을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 5·18민주화운동을 총칼로 짓밟고 들어선 정권이 국민을 정치에서 떨어뜨리기 위해 3S를 우민화의 도구로 사용했다는 설명이 그것이다. 1981년 5월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의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7개월 만에 프로야구가 출범한 것만 봐도 그렇다. 하지만 3S 정책이 통용될 것 같지 않은 오늘날에도 프로야구가 인기를 끄는 것은 프로야구가 나름의 저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출범 당시부터 시행된 ‘지역연고제’, 컬러텔레비전의 보급과 방송 기술의 발달에 힘입은 중계 방송, 공격과 수비의 중간에 광고가 끼어들기 쉬운 경기 형태가 큰 역할을 했다. 그뿐만 아니라 고도성장이 가져온 전례 없는 풍요 속에서 1980년대의 프로야구는 ‘야구팬’들에 의해 적극적으로 소비될 준비가 된 스포츠 경기였다. 즉 이때부터 야구는 늘어나는 ‘중산층’의 ‘여가 문화’로 자리잡은 것이다.
여전히 가까운 현재
그외에도 이야기하지 않은 1980년대의 사건은 수두룩하다. KAL기 격추 사건, 이산가족찾기운동, 금강산댐 방류 시뮬레이션, 88서울올림픽 등 1980년대 사건들은 역사라고만 부르기에는 너무나 가까운 기억이다. 어쩌면 우리 자신 혹은 우리의 부모님, 삼촌, 이모들이 직접 겪은 일이기도 할 것이다. 이번 회까지 4회에 걸쳐 소개한 1950년대부터 1980년대의 생활문화사의 장면도 이와 다르지 않다. 이번 기획 연재가 생생한 삶의 이야기로 독자 여러분의 기억에 남길 바란다. 그리고 시대와 세대를 이해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면 좋겠다. 연재를 마치며, 지금까지 글을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프로야구 개막. 1982년 3월27일, 서울 동대문구장에서 MBC 청룡과 삼성 라이언즈의 개막 경기가 열렸다. 경기에 앞서 전두환 대통령이 직접 시구하는 모습이 눈길을 끈다.(10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