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좋아하는 상대가 반경 10m 이내로 다가오면 스마트폰 앱이 울린다. 좋아하는 마음은 사람의 수로만 표시될 뿐, 그 정체가 현재 10m 근방에 있는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 천계영의 만화 <좋아하면 울리는>은 이 경천동지할 앱 ‘좋알람’이 출시되던 때에 고등학생이었던 주인공 김조조와 그녀를 사랑한 두 남자 황선오, 이혜영의 이야기다. 상대의 마음만 알 수 있다면 애태울 일은 없을 줄 알았건만 ‘좋알람’의 출시는 예상치 못한 후폭풍과 연쇄반응을 낳는다. 인기에 연연하는 이들은 단지 숫자에만 집착하고, 앱의 허점을 이용해 마음을 숨기는 저마다의 기술들이 속속 개발되는 한편, 동성애자들의 아우팅 문제도 논란의 중심에 놓인다. 설정은 상상의 산물이되 그로 인한 사건들은 이처럼 일어날 법한 현실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이 <좋아하면 울리는>이 독자의 불신을 정지시키고 몰입하게 만드는 저력일 것이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이모네 집에 얹혀살며 방과 후엔 이모의 편의점에서 일해야 하는 주인공 조조, 부잣집 아들이지만 애정결핍인 모델 출신 소년 선오, 그리고 선오네 가사도우미의 아들로 늘 선오를 아버지처럼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소년 혜영이 삼각관계의 꼭짓점이다. 전형적인 신데렐라 로맨스의 캐릭터 배치라 할 수 있는데, 핵심은 관계의 주도권이 여성인 조조에게 있다는 것. 이를 상징하는 장치가 좋알람의 개발자로 추정되는 동급생 덕구가 조조만을 위해 만들어준 방패 패치다. 상대의 마음은 좋알람을 통해 알 수 있지만 자신의 마음은 상대의 좋알람에 보이지 않게 만드는 이 패치를 통해 조조는 관계의 주도권을 확보함은 물론, 좋알람의 시스템을 초월한 유일무이한 존재가 된다.
일어날 법한 현실에 기반한 로맨스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척 잘하잖아, 나. 힘든 일이라곤 겪어본 적도 없으면서. 근데 진짜 힘들게 사는 애를 보니까… 뭘 어떻게 해줘야 할지 모르겠어.
힘든 일을 많이 겪었다고 위로를 잘하는 건 아니야. 위로를 받아본 사람이 남도 위로할 수 있는 거 같아. 누가 나에게 이렇게 해주니까 힘이 되더라… 그런 게 있다면… 해줘.(2권, 280~282쪽)
사람들은 약간의 불행은 위로하지만 너무 큰 불행은 외면한다. 나를 그 불행과 동일시하고 나를 격리시키고 싶어 한다. 내가 이 슬픈 기억을 상자에 꼭꼭 담아 내 마음의 지하실 구석에 넣어두는 것처럼. 어떤 사람들은 너무 약하고 비겁해서… 불행한 타인을 짓밟아야지만 안도감을 느낀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3권, 135~1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