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추석, 본가로 내려가며 나는 이번 명절은 꽤 쓸쓸하게 지나갈 거라고 생각했다. 개가 죽었기 때문이었다. 온갖 사랑을 다 받으며 살던 개가 8월에 갑자기 죽었고 나와 가족은, 특히 부모님은 일상을 지탱하던 든든한 기반 하나를 잃어버렸다. 나는 저녁 무렵 집에 도착했다.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개도 없는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내가 쓰던 방에 들어가보니 개의 물건들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나는 개의 이름을 불렀지만 개는 오지 않았다. 예상대로였다. 쓸쓸했다.
다음날이 추석 당일이었다. 친가쪽이나 외가쪽이나 친척들이 없다시피 한 까닭에 나는 어려서부터 부모님과 나 그리고 동생하고만 명절을 지냈다. 그리고 차례상 주변에는 늘 개들이 있었다. 두세번인가 차례를 지내는 도중에 개들이 집을 나가는 바람에 차례고 뭐고 때려치우고 개들을 잡으러 뛰쳐나가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개가 없었다. 동생도 일이 바빠 오지 못한다고 했다. 차례상에 음식을 차리면서 아버지가 말했다. 개 없이 차례 지내는 것도 한 이십년 만이군.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내년부터는 차례도 지내지 말자. 어머니는 개의 장례를 치르고 며칠 넋이 나가 있는 동안 아버지의 아버지, 그러니까 어머니의 시아버지 제사를 깜박했다고 했다. 나의 아버지는 이렇게 덧붙였다. 그 제사도 다 없애자, 돌아가신 지 50년도 넘었는데. 사실 차례며 제사며 일일이 챙긴 건 어머니였고, 그런 게 다 부질없다며 몇년 전 천주교 세례를 받은 사람은 아버지였다. 우리 세 사람은 마지막 차례상 앞에서 마지막으로 절을 했다. 그때 나의 기분은, 우리 모두가 지금 조상님이고 나발이고 오직 죽은 개를 위해 차례를 지내고 있다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절을 한 뒤 촛불을 불어 끄면서 아버지는 앞으로 명절에는 할머니를 모신 남양주 납골당에서 만나면 되겠다고 했다. 나는 찬성했다. 그러면서,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어떤 시기가 마침내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어머니도 비슷한 생각이었을 것이다. 개가 없어 쓸쓸한 기분은 여전히 가시지 않았으나 한편으로는 홀가분했다.
돌아오는 길에 트위터 타임라인을 살펴보니 명절 성토대회가 한창이었다. 모든 집이 다 우리집 같을 수는 없겠지만, 우리집도 표면적으로는 개가 죽었기 때문이지만, 조금이라도 이상한 기분이 드는 순간 기존의 생각을 조금만 바꾸면 이토록 쉽게 변화가 나타나기도 한다는 것이 다소 놀랍게 여겨졌다. 정말이지 이렇게 쉬운 일이었다니, 나는 생각했다. 내년 설날에 나와 가족은 대전이 아닌 남양주에서 만날 것이다. 새파란 추위에 맑은 콧물을 흘리면서 제주 한병을 나눠 마시며 할머니께 안부를 전할 것이다. 그날의 풍경이 그려진다. 역시 쓸쓸하겠지만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