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리: 허드슨강의 기적> 촬영현장에서의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왼쪽).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의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과 기장과 부기장을 연기한 톰 행크스, 에런 에크하트를 한자리에서 만났다. 허드슨강 위로 비행기를 착륙시켜 155명의 목숨을 구한 기적을 다루면서도 불안과 긴장, 의심과 편견으로 90여분을 꽉 채우는 노련한 감독은 기자들의 질문에 즉흥적으로 답하다가도 곧 제자리로 돌아와 진중한 답을 내놓곤 했다. 능수능란하게 기자회견장의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 같았다. 영화 개봉을 몇주 앞둔 8월27일, 웨스트할리우드에서 열렸던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의 기자회견을 정리해 전한다.
-비상착륙 장면은 혼돈 그 자체다. 촬영도 힘들었을 텐데.
=클린트 이스트우드_ 톰(행크스), 에런(애크하트)과 함께 촬영해서 특히 힘들었다. (좌중 웃음) 그런데 이렇게 인터뷰 자리에 같이 앉게 될 줄은 몰랐으니, 조금은 거짓말을 해야겠다. (좌중 폭소) 사실은 두 배우와 함께할 수 있어서 운이 좋았다. 로라 리니와는 전에 함께 일을 해봤는데 톰과 에런과는 처음이었다. 나는 두 사람의 연기를 오랫동안 좋아해왔다.
=톰 행크스_ 내 영화를 보고 나를 좋아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모두 웃음) 착륙 장면은 몇주에 걸쳐 다른 순서로 촬영됐다. 한두번은 아마 실시간에 가깝게 촬영했을지 모르지만 이 장면을 찍으면서 목숨이 위태롭다는 생각은 안 했다. 그렇게 보이게 하는 것이 우리의 직업적 사명이라는 건 알고 있지만. (웃음)
-기장과 부기장으로서 진정성 있어 보이는 연기는 어떻게 했나.
톰 행크스_ (질문한 외국인 기자를 보며) 그게 내가 하는 일이다. 그 일을 하려면 방법은 한 가지뿐이다. 소매를 걷어붙이고 시작하는 것이다. 사실 연기는 멋진 일이다.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내가 할 말은 모두 시나리오에 쓰여 있기도 하고.
=에런 에크하트_ 배우들은 가능하면 음성이 겹치지 않게 하려고 애쓴다. 안무를 미리 짜는 것과 같다. 그게 연기할 때 가장 어려운 점이다. 그외는 파일럿들의 ‘파일럿톡’을 따라 했다.
톰 행크스_ 사실 비행기가 게이트에서 풀려나면 파일럿들은 비행과 관련되지 않는 대화를 하지 않게 되어 있다. 영화에서 스카일러와 설리가 나누는 스테이크에 대한 가벼운 대화 등은 게이트에서 나온 뒤에는 규정에 어긋나는 거다. 일정한 고도에 이를 때까지는 관제탑에 응답하고 비행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것이 허락된다. 영화에서는 대사 한줄이 들어갔다. “허드슨강이 아름다운 날”이라는 건데, 엄격하게 따지면 규칙을 어긴 것이다.
-이 영화를 만들겠다고 결심했을 때 어떤 생각을 했나.
클린트 이스트우드_ 어느 날 어시스턴트가 여러 스크립트를 건네주면서 ‘허드슨강의 기적’에 대한 제목이 없는 스크립트를 읽어보라고 했다. 그날 저녁에 내게 그 스크립트를 읽었냐고 물었고, 그다음날에도 스크립트를 읽었냐고 물었다. 한 사람이 한주 동안 서너번이나 추천할 정도면 믿을 만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읽기 시작했다. 대체 무슨 이야긴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빠져들었다. 뉴스와 신문을 통해 ‘허드슨강의 기적’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 스크립트를 읽고 내가 한 가지 질문을 놓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이 사건에서 논쟁거리는 무엇인가? 체슬리 설렌버거 기장은 모두가 영웅이라고 부를 만큼 훌륭한 일을 해냈다. 155명의 목숨을 구했다. 그러나 국가운수안전위원회(NTSB)의 조사가 시작되면서 설렌버거 스스로 자신에 대한 의심이 싹튼다. 절대적으로 옳은 결정이었는지 이사회를 설득하는 동시에 자기 자신을 설득해야 하는 데서 드라마가 만들어진다고 생각했다.
-원작 <허드슨강의 기적>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영화화하면서 추가한 것이 있나.
클린트 이스트우드_ 꿈 장면을 더했다. 설렌버거의 악몽 장면을 통해 관객이 그가 허드슨강에 내리기로 결정할 때 어땠을지를 그의 시점으로 볼 수 있도록 했다.
-당신은 훌륭한 피아니스트이며 재즈에도 조예가 깊다. 당신의 최근작을 보면 장르나 형식에 있어서 하나에 묶이기보다는 이야기를 자유롭게 운용하려는 느낌이 드는데, 음악에 대한 사랑과 테크닉의 터득이 영화 만들기와 영화에 대한 당신의 모험심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 궁금하다.
클린트 이스트우드_ 아마도 시간이 갈수록 카메라 앞에서보다는 카메라 뒤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서 그에 안도하기 때문에 영화에 대해 자유로운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것 같다. 내 모습이 어떻게 보이는 것보다 다른 일들을 걱정할 수 있다. 그리고 모든 일에서 발전하는 것을 그만두면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인생의 어떤 부분을 즐길 수 없게 된다. 나는 매일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기를 바란다. 나에 대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그렇다. 배우들의 퍼포먼스를 보는 것은 언제나 흥미진진하다.
-미국 문화는 영웅주의에 크게 기반한다.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도 영웅주의와 프로 근성을 다루고 있다. 이 두 가지를 어떻게 생각 하는지 듣고 싶다.
클린트 이스트우드_ 나의 어린 시절과 비교하면 영웅에 대한 정의가 많이 달라진 데 동의한다. 지금은 누구나 영웅이 될 수 있다. 학교에서 공을 차면 참가상이라며 트로피를 들고 온다. (웃음) 하지만 기대를 넘어서는 일을 한다고 해서 그게 영웅적인 행위라고 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톰 행크스_ 사전적 의미에서 영웅은 타인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는 사람을 말한다. 그리고 그런 영웅적인 일들이 가끔씩 일어난다. 하지만 요즘에는 영웅이라는 단어가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과용된다고 생각한다. 아마 성취의 다른 말로 쓰이는 것 같다. 사람들이 옳은 일을 했다고 해서 상찬을 받을 필요는 없다. 이 영화에서 설리는 매일 4번씩 155명의 승객을 비행으로 옮겼다. 승객은 그에게 안전을 맡겼고, 설리는 자진해서 그 일에 책임을 졌던 것이다. 내가 보기에 설리는 충분히 영웅이고, 영웅적인 일을 해왔고, 해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자신의 일을 언제나처럼 완벽하게 했다면 누구도 그가 영웅이란 사실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에런 에크하트_ 미국은 영웅을 사랑한다. 전세계 많은 사람들이 영웅을 사랑한다. 그래서 우리에겐 할리우드가 있다. 할리우드는 영웅물을 만드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그리고 그 영화들이 누군가의 어린 시절에는 큰 역할을 한다. 우리가 누군가의 영웅적인 행동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영웅에 한 발짝 가까워지는 길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