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책들답다. 굉장하지 않은가. <장미의 이름> <죄와 벌> <향수> <어머니> <꿈의 해석> <그리스인 조르바> <개미> <소설> <갈레 씨, 홀로 죽다 외> <뉴욕 3부작> <핑거스미스> <야만스러운 탐정>이 수록된 이 전집은, 열린책들을 먹여살린 베스트셀러와 열린책들을 기억하게 만든 작품의 조합이며, 한국에서 사랑받은 소설의 목록이자 한국에서 더 사랑받아야 한다고 (열린책들이 그리고 나 역시) 주장하는 소설의 목록이기도 하다. 12권에서 멈춘 것도 대단하다.
이 목록은 90년대 중반에 대학을 다닌 내게 취향과 허영의 족보이기도 했다. 누군가의 이름은 지금도 그리움을 담아 입에 올리고, 누군가의 이름은 예나 지금이나 시큰둥한 코웃음을 담아 입에 올린다. 그냥 이 12권의 목록을 보는 순간 그 모든 일이 생각났다. 베스트셀러만 모으지 않아서 단순한 추억팔이나 출판사 자랑 이상의 재미가 있어졌다.
‘열린책들 창립 30주년 기념 대표 작가 12인 세트’가 화제가 된 것은 12권의 표지디자인을 새롭게 해서 하나의 세트를 만든 것이 물욕을 불러일으키는 근사함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고, 이것이 1만질 한정인 데다, 이 책들을 기존 가격으로 사는 것보다 저렴한 가격이어서였다. 하지만 나는 이 리스트업이야말로 이 세트의 뚝심이자 유머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열린책들은 작가 단위로 책을 소개하는 데 열중했고, 출판사의 브랜드를 그런 작가들의 이름으로 풍성하게 만드는 법을 잘 알았다. 그 사실을 증명하는 이름이 무려 움베르토 에코, 지그문트 프로이트, 니코스 카잔차키스, 조르주 심농, 로베르토 볼라뇨,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파트리크 쥐스킨트, 폴 오스터다. 여기 한국 소설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것 역시 열린책들다움임을 잘 보여준다.
나는 열린책들이 고른 이 12권을 ‘순서’ ‘그대로’ ‘다시’ 읽을 생각이지만, 다시 읽는다고 좋아하게 될 리 없는 책도 있음을 알고 있다. 시간을 들여 싫어하는 책마저 다시 읽는 것은 노화하는 인간 최고의 사치이며, 심농과 볼라뇨는 이 한권이 아니라 다른 책 모두를 되짚어 읽고 싶어져 시간을 더 쓰게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