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23일 열린 ‘영화산업 지속가능 발전방안 모색을 위한 세미나’ .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는 올해 3월 발표한 ‘한국영화 진흥 종합계획(2016~18)’을 통해 영화관 품질 인증제도 도입 계획을 밝혔다. 극장마다 스크린 밝기와 비율, 음향, 관람 시야, 상영관 조명, 안전성 등의 지표를 표준화함으로써 진보한 상영 환경을 구축하겠다는 입장이다. 9월 현재 영화상영관 관람 환경 표준화 지원사업 결과 보고를 마쳤고, 구체적인 지표들은 합의되지 않은 상태다. 9월23일 오후 3시, 서울 상암동 한국영상자료원 시네마테크 2관에서는 영진위 주최로 ‘영화산업의 지속가능 발전방안 모색을 위한 세미나-영화상영관 품질향상을 위한 제안’이 열렸다. 영화감독, 영화 제작자, 촬영감독, 음향감독, 컬러리스트 등 제작 일선의 영화인들과 한국상영관협회를 비롯해 국가기술표준원, 한국소비자원 등 여러 기관의 관계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현재 영화관 상영 환경의 문제점과 영진위가 진행하는 표준화 사업의 필요성에 대해 토론했다.
영화관람 서비스 시장의 가장 큰 문제는 ‘가격’과 ‘선택 가능성’
첫 발제를 맡은 한국소비자원 허민영 책임 연구원은 소비자, 즉 관객의 입장에서 영화관람 서비스 시장을 분석했다. 허민영 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영화관람 서비스 시장의 가장 큰 문제로는 ‘가격’과 ‘선택 가능성’이 꼽혔다. “가격과 선택 가능성의 복합적인 문제는 독과점적 시장구조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문제의 전형이다. 한국의 멀티플렉스 3사가 영화상영관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90%를 넘는다. 멀티플렉스 상영관 위주의 영화관람 서비스 시장보다 효율적 경쟁이 발생할 수 있는 정부 정책이 필요하다.” 이어서 허민영 연구원은 “상영관 시설과 서비스 품질 표준화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 것으로 판단되지만 사업자의 비용 부담이 소비자에게 전가돼 영화관람료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의견을 보탰다.
국가기술표준원 박정우 영화기술 전문위원은 영진위가 추진 중인 영화상영관 시설 및 서비스 인증 제도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영화 제작자가 의도한 화질과 음질의 영화가 지속적으로 균일하게 상영되는지 여부가 영화상영관 품질을 결정한다. 상영관뿐만 아니라 영화산업과 관련된 시설, 서비스의 모든 사항을 표준으로 준비하고 있다”며 영화산업의 이해관계자들과 충분히 합의를 이룰 수 있는 선에서 지표를 확정할 계획임을 밝혔다.
“영화 제작 입장에서는 부족한 상영 환경이 크게 아쉽다”
본격적으로 이어진 토론에서는 영화 제작 현장 일선에서 활발히 활동 중인 영화인들이 영화관의 불균질한 상영 환경으로 겪는 애로사항들이 주로 거론되었다. 한국영화촬영감독조합 소속 박현철 촬영감독은 “조사에 참여한 상영관 중 73%가 스크린 밝기의 표준 범위를 벗어나고, 스크린 색온도는 표준에 맞는 경우가 전체 3%밖에 안 된다. 콘트라스트가 중요한 영화들의 경우엔 같은 영화를 봤다고 하기 힘들 정도로 상영되는 영화 품질이 불균등하다. 표준화가 되어야만 영화를 창작자의 의도대로 관객에게 전달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한국영화감독조합의 이우철 감독 또한 스크린 밝기를 비롯한 여러 문제를 지적하며 “DCP로 바뀌고 나서 표준화된 품질을 기대했는데 여전히 같은 문제점들이 지적된다. 최근 <사냥>(2016) 개봉 후 가장 놀랐던 게 같은 극장도 관마다 상영 상태가 다르다는 점이다.” 이우철 감독은 “기술시사를 한 상영관에 맞춰서 하고 거기서 나온 표준대로 모든 극장에서 데이터를 공유한 뒤 여기에 맞춰서 상영하는 것도 방법”이라며 감독조합을 대표한 의견을 보탰다.
‘덱스터 디 아이’의 강상우 컬러리스트와 한국영화음향인협회 최태영 음향감독 또한 전문가의 입장에서 마주하는 한계를 전달했다. 강상우 컬러리스트는 “보통 컬러리스트의 직무는 영화 색 보정을 하고 디지털로 변환하는 일이다. 국내에선 극장 관리업무가 더해진다. 컬러리스트가 시사까지 가서 컬러가 제대로 나오는지 조율해야 한다”라며 “연출자가 따로 의도한 바가 있더라도 컬러리스트로서 극장에서 무난하게 볼 수 있는 상태를 연출자에게 권하는 상황”임을 언급했다. 한국영화제작가협회 소속 심재명 제작자는 사고에 대한 대비, 비용 문제를 이유로 상영관이 마스킹을 제대로 하지 않아 겪는 불편함을 지적했다. “마스킹을 하지 않으면 화면에 대한 집중도가 떨어지고 마치 액자 속의 영화를 보는 느낌이다. 현장에서 완벽한 화면을 구현하도록 노력해도 상영 환경으로 부족함이 생기면 영화를 만드는 입장에서는 굉장히 아쉽다.”
영사기사의 부재에 따른 영화 상영 품질 저하 지적
또 하나 중요한 사항으로 지적된 것은 주요 멀티플렉스에서 시행되고 있는 영사기사 통합운영제도에 따른 상영 품질 저하 문제다. 통합운영제도는 한명의 인력이 영사, 극장 관리, 매점 운영 등을 동시에 담당하는 시스템이다. 한국영사예술인협회 강현채 협회장은 발제에서 “최근 기존의 영사 시스템이 디지털로 전환되면서 멀티플렉스 3사 중심으로 영사실 없이 영사 장비를 설치하는 부스리스 영사시스템이 운용되고 있다. 또 통합운영제도를 따르면서 영화관 운영 매니저들이 영사 자격증을 취득하는 추세지만 영사 실무 전문 지식 부족에 따른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다. 기존의 영사기사는 장비 유지 보수 업무 정도만 수행하고 있어 상영 품질에 소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최태영 음향감독은 전문 영사기사의 부재로 겪는 소통 문제를 지적했다. “음향은 오랜 기간 상영관에서 일하면서 쌓인 경험치에서 실력이 나온다. 전문화된 기술자가 극장에 안정적으로 있어야 현장에서 일하는 생산자로서 문제되는 부분을 효율적으로 해결하고 관객에게 좋은 품질의 영화를 제공할 수 있다.” 심재명 제작자 또한 “기술은 발전해도 그걸 유지하는 건 사람의 능력”이라며 영사기사의 복지나 전문성 함양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한국상영관협회의 권동춘 부회장은 “세미나에서 나온 지적사항과 제안을 이사회에 잘 전달해 질 좋은 상영관이 되도록 노력하겠다”면서 동시에 상영관이 겪는 어려움을 전달하는 데 힘썼다. “상영관은 전체 영화 수익의 45%를 가져가는데 거기서 발전기금, 세금 빼고 남는 건 티켓당 2700원에서 3천원 사이다. 그마저도 임대비를 내고 나면 수익이 많지 않다”면서 이어 로컬 극장 위탁 경영으로 발생하는 문제, 상영일 단축에 따른 시장 축소 문제를 언급하며 관계자들의 관심과 협조를 부탁했다. 권동춘 부회장 또한 상영관 표준화의 필요성에 대해선 공감했다.
박정우 영화 기술 전문위원이 제시한 가이드라인의 한계를 지적하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지만 세미나는 표준화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정도로 마무리됐다. 행사를 진행한 영진위 영화기술정책자문단의 김창유 교수는 “아직 표준화 비용에 대한 연구가 없다”라며 필요한 구체적인 규모와 조달원에 대한 연구 조사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또한 “일거에 전국 2400여개 상영관을 표준화하자는 건 아니다. 권역별로라도 시행하고 연차적으로 발전해나가는 게 현실적인 방안”이라며 표준화 작업 실행의 의미를 되새기고 영진위의 후속작업을 촉구하면서 세미나를 마무리 지었다. 지표에 관한 다양한 전문가들의 합의안을 도출하고 실행에 옮기는 것이 다음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