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김없이, 새벽 알람을 맞춰놓고 명절 기차를 예매했다. 1초만 늦게 클릭해도 수천명 뒤에서 대기해야 하는 탓에 손에 쥐가 날 정도의 긴장감과 스릴, 전쟁이 따로 없다. 이런 북새통을 뚫고 고향에 내려가야 하는 이유가 있다. 차례 음식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혼하지 않은 장손 집안의 외아들이 명절 때마다 친척들에게 들었던 잔소리는 바닷가 조개무덤처럼 헤아릴 수 없이 아득하다. 차라리 여봐란 듯이 내가 차례 준비를 하는 게 속이 편하다. 평소 시골집 노모와 가족을 위해 요리하는 걸 즐기지만, 죽은 조상 귀신들과 살아 있는 늙은 가부장 친척들을 위해 무보수 명절 노동을 하는 건 여전히 면역이 되지 않는다. 채소를 다듬고, 전을 부치고, 송편을 빚고, 밤을 깎고, 심지어 장손 전용 명절 노동도 기다리고 있다. 지방을 쓰고, 향로에 향을 피우고, 병풍을 치고, 제상을 닦고 나면 노곤한 한밤. 각기 사정이야 다르겠지만 다들 겪고 있다는 명절 증후군, 1년에 두번 내 몫도 푸짐하게 할당받는다.
가끔 나를 포함해 한국인들은 왜 이런 고달픈 의례를 견디고 있는 걸까, 그 속내가 몹시 궁금해지곤 한다. 다들 즐거운 걸까? 일단 명절 우울증 때문에 한숨을 내쉬는 여자들 형편을 볼 땐 전혀 그런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평균 45분 가사노동 참여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꼴찌의 영예를 안고 있는 한국 남성들이 유독 더 가사노동을 하지 않는 게 명절이다. 여자들과 함께 명절 노동을 하는 남자는 기껏해야 4.9%라고 한다. 가부장제 성차별의 정연한 총체로서의 명절, 그 안에서 가장 구겨지고 울상 짓는 것은 여성들이다. 주부는 명절 노동과 시댁 눈치밥으로, 미혼자는 결혼 압박 스트레스로. 심지어 명절 때 장거리 해외여행을 하는 사람의 70~80%가 30대 초반 직장여성이라고 한다. 명절은 그렇게 회피의 시간이 됐다.
하긴 남자라고 이득만 볼까. 교통 체증, 경제적 부담, 그리고 아내 눈치 보는 스트레스까지 심간이 편할 리 있겠나. 명절 직후에 이혼율이 급등하는 것만 봐도 곪은 상처들이 터질 수밖에 없는 명징한 계기로 작동되고 있는 것이다. 전통적인 가부장 시대의 잔재인 명절이 도시 핵가족 시대를 감당하지 못해 곳곳에서 파열음이 불꽃처럼 터지는 지루한 풍경.
그럼에도 국가와 언론은 ‘국민적 동질성’을 부여하기 위해 명절을 다 함께 견뎌내야 하는 제의적 의무처럼 끊임없이 소환하고 장려한다. 민족적 정체를 갖기 위해 누군가는 한숨을 쉬며 전을 부쳐야 하고, 또 누군가는 꽉 막힌 고속도로 위에서 생의 비애를 곱씹는다. 공동체의 축제로 기능했던 명절은 어느덧 이렇게 속이 텅 빈 골칫거리의 통과제의가 된 것이다.
근대화는 덜 됐고, 전통이 여전히 권력의 기제로 작동되는 사회의 뒷모습. 그리고 노동에 대한 강박과 성장 지상주의만 존재하지 ‘노는 방법’을 까무룩 잃어버린 사회의 표정일 것이다. 그렇게 또, 기나긴 우울의 명절이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