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한잔 할까요?’ 허영만 화백 작품 중 처음 접하는 청유형의 제목이다. 제목부터 한잔을 권하는 <허영만의 커피 한잔 할까요?>를 읽고 있자면 따뜻한 커피 한 모금이 간절해진다. 최고급 커피든 인스턴트 커피든 검고 쓴 커피의 향과 맛을 모르는 사람은 없기에 공감의 폭도 넓다. 5화 에피소드 중, 지하철에 탄 주인공이 살포시 원두 봉지의 소매를 열자 잔뜩 찌푸린 사람들의 얼굴에 미소가 떠오른다. 그 장면에서 누구나 종이를 뚫고 전해지는 커피향을 느낄 테다.
<허영만의 커피 한잔 할까요?>에는 장인의 호칭이 손색없는 바리스타 ‘박석’과 그가 운영하는 테이블 두개짜리 카페, ‘2대카페’가 나온다. 또 경력이라곤 동네 작은 카페에서 몸 쓰는 일을 도맡던 경험이 전부인 제자 ‘강고비’가 있다. “혀는 확실해야 하고 머리는 유연해야 해. 다른 커피에 대한 무관심은 우리에겐 죄다.” “프로는 자기 개성이 확실해야 하며 반대편이나 아무것도 모르는 손님의 취향을 이해하고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 강고비는 스승 박석의 가르침을 통해 한회 한회 느리지만 확실하게 성장해나간다. 만화가, 시나리오작가, 파티셰 지망생, 주부 등 저마다 삶의 모양은 다르지만 하나같이 커피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2대카페의 문턱을 넘나들며 풍성한 이야기를 만들어나간다. 소재는 바뀌었지만 결국은 전작들에 다름 없이 사람 사는 얘기다. 소박한 에피소드에 감동과 위트를 진한 에스프레소처럼 녹여내는, 허영만 화백의 만화답다.
철거 직전의 자판기 커피를 마시며 유학 생활을 돌이키는 외국인, 소원해진 여자친구에게 직접 로스팅하고 내린 원두 커피 한 모금으로 마음을 전하는 남자 등 한잔의 커피에 담기는 에피소드는 커피 종류만큼이나 다양하다. 아메리카노와 무염버터, 코코넛 오일을 섞어서 만드는 만큼 높은 열량과 뛰어난 맛을 자랑하는 ‘불릿프루프 커피’, 위스키를 섞은 드립 커피에 생크림을 올려먹는 샌프란시스코 명물 ‘아이리시 커피’ 등 색다른 커피들을 만날 수 있다. 성공한 카페에 뒤따르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 등 사회를 향한 냉철한 시선이 담긴 에피소드들도 빼놓지 않았다.
검고 순수하고 뜨겁고 달콤한 한잔의 위로
한잔 커피에 담긴 위로의 양은 평등하지만 그걸 마시는 사람들의 상처는 똑같지 않지. 창작은 외로움이잖아. 그 외로움은 깊게 패인 상처를 남기는 법. 커피 한잔으로 예술가들의 상처에 조금이라도 위안이 되었으면 좋겠어.(1권 12쪽)
내 마음의 따뜻한 온기와 진심을 상대방에게 전달할 수 있다면 보온병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존재 가치가 있다. 때론 감성이 절대적인 맛의 기준을 압도할 때가 있다.(1권 256쪽)
저 미소를 보면 띠그란 아코피얀이란 화가가 생각나요. 그 화가는 늘 관객의 행복한 미소를 상상하면서 그림을 그린대요. 그 화가가 이렇게 말했어요. 나는 선함과 아름다움의 힘을 믿는다. 나 자신에게 그리고 관객에게 그것을 선물하고 싶다. 고비씨 커피 내릴 때 미소를 보면 자신이 만든 커피를 마실 손님을 먼저 생각한다는 것이 느껴져요.(4권 3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