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도경은 어떤 사람일까. <아수라>를 작업하며 정우성이 가장 자주 던졌던 질문이다. 김성수 감독의 시나리오를 처음 받았을 때부터 한도경은 수많은 물음표로 가득한 인물이었다. 악덕 시장의 뒤를 봐주는 비리 형사. 그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악행을 저질러야 하는 나쁜 남자. 눈 밝은 검사에게 부정을 들켜 이제는 시장을 따라야 할지 검사를 따라야 할지 자신의 노선을 확실히 정해야 하는 위기의 사내. 정우성의 표현에 따르면 한도경은 “주인공의 옆의 옆쯤 서 있을 법”한, 전형적인 주인공의 서사와 법칙을 벗어나는 인물이다. 그의 말에 동의한다. 때때로 선한 사람을 배신하고 그 무엇보다 자신의 안위가 우선인 캐릭터로부터 대중의 공감을 이끌어내기란 배우로서 쉽지 않은 과제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누구보다 가까운 영화적 동지인 김성수 감독에게조차 캐릭터에 대한 답을 구하지 않았다. “예전 같았으면 이 인물은 왜 이렇게 행동하는 거예요, 하고 말이라도 했을 거다. 하지만 이 영화만큼은 분명히 감독님이 주인공을 한도경으로 설정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이해하지 못하고 바라보지 못했던 40대 남자의 모습이 담겨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거다.” 어쩌면 정우성에게 <아수라>는 질문을 하고 답에 이르는 여정이 가장 혹독했던 작품 중 하나로 기억될 듯하다. 스스로 걸어온 길이 맞는지 끊임없이 의심하고 자문하는 회색지대의 인물을 연기하며 그 역시 적잖은 스트레스를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아수라>는 ‘공격수’가 많은 작품이다. 황정민, 곽도원처럼 어떤 영화에서든 장면을 훔치고 마는 화려한 존재감의 배우들이 포진해 있다. 흥미로운 점은 장기판의 말처럼 영화 곳곳에서 중심을 향해 전진하는 이들 캐릭터의 동선을 모두 관통하는 유일한 인물이 바로 한도경이라는 점이다. 상황에 따라 인물에 따라 변화무쌍한 가면을 써야 하는 한도경의 모습을 지켜보는 건 <아수라>의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가 될 것 같다. “(다른 배우들의 연기를) 받아내느라고 아주 힘들었다. 하지만 그건 스트레스라기보다는 즐거운 자극에 가까웠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왜 황정민이고, 왜 곽도원인지 알겠더라. 정민이 형은 정말 모든 연기에 흥이 배어 있다. 도원이 같은 경우에는 워낙 타고난 힘이 있는 데다가 연습도 많이 하니 파워풀한 연기가 나오더라. 더불어 주지훈이라는 후배 배우의 재기발랄함도 볼 수 있었고, 정만식씨의 배우로서의 연륜을 경험할 수 있었다. 서로의 다양한 개성과 연기 리듬이 바람직한 긴장감으로 이어져 좋은 하모니를 이뤄내지 않았나 생각한다.”
김성수 감독과 <무사> 이후 15년 만에 재회한 <아수라> 촬영현장에서 정우성은 흔치 않은 경험을 했다. ‘컷’ 소리와 함께 바로 직전까지 연기했던 대사와 감정의 여진이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리는 느낌을 받은 것이다. “여태까지도 정확하고 명확하게 계산된 연기를 했던 건 아니지만 어느 정도 계산을 하고 그걸 따르는 연기를 했던 것 같은데, 이번 영화에서는 그 어떤 계산도 하지 않았다. 순간의 본능적인 느낌을 따랐다고 해야 할까.” 이러한 변화는 정우성이라는 배우가 본래 지닌 것을 잘 알고 거기에서 나아가 보다 새로운 모습을 목도할 수 있길 원했던 김성수 감독의 연출 방식과도 맞닿아 있다. “감독님과 <비트>와 <태양은 없다> <무사>를 작업할 때 현장이 마냥 즐겁고 좋았다. 왜 좋았나 돌이켜봤더니 굉장히 치열했기 때문이더라. 촬영을 하면서도 끊임없이 이게 최선인지 되묻는 작업. 감독님과 오랜만에 <아수라>를 작업하면서 ‘맞아 그랬지, 그래서 내가 감독님의 현장을 좋아했지’라고 생각했다. 다만, 나이 먹고 감독님을 뵈니까 조금 얄밉기도 하다. 나를 왜 이렇게 못살게 구시지. 하하하!” 그렇게 즐겁고, 치열했고, 고통스러웠던 정우성의 한철이 <아수라>에 아로새겨져 있을 거라 믿는다.
주지훈이 정우성에게
“정우성이란 배우는 모든 면에서 우월하지만 특히나 액션에 있어서는 자타공인 최고다. 액션 장면에서 앞뒤 ‘연결’을 맞춘다고 하는데, 그전 컷에서 내 발과 손이 어디에 위치해 있었는지 나도 기억 못하는 걸 형은 다 기억하고 연결을 맞추더라. 그러니 난 액션에만 더 집중할 수 있었다. 또 우성이 형이랑 액션 신 찍을 땐 하나도 안 아팠다. 근데 화면으로 보면 그림이 기가 막히게 나온다. 그러니 액션 도사다, 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