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25일, 국립현대미술관 MMCA필름앤비디오 상영 프로그램인 ‘이야기의 재건2: 던컨 캠벨, 오톨리스 그룹, 그리고 와엘 샤키’와 광주비엔날레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한 오톨리스 그룹의 멤버 코도 에슌을 만났다. 외교관의 아들로 SF소설과 록 음악을 섭렵하며 자란 그는 옥스퍼드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사이버문화, 미래주의, 아프리카 이산민 문화, 정치적 영화 등에 대해 연구와 저술 활동을 해왔으며 골드스미스대학 시각문화학과에서 현대미술과 비판이론을 가르치고 있다. 그의 다양한 지적, 예술적 편력은 2002년 안잘리카 사가와 함께 결성하여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는 오톨리스 그룹의 중요한 자양분이 되었다. 그로부터 오톨리스 그룹의 작품들을 뒷받침하는 영화와 철학적 배경에 대한 풍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김지훈_ 일단 ‘오톨리스 그룹’이라는 이름부터 이야기해보자. ‘오톨리스’(otolith)는 귀 안의 돌, 즉 ‘이석’ (耳石)을 뜻한다(고대 그리스어에서 ‘오토’(oto)는 ‘귀’를, ‘리스’(lith)는 ‘돌’을 뜻한다.-필자). 이 말이 오톨리스 그룹의 비디오 작업과 다른 활동들에서 탐구해온 주제나 이슈들과 어떻게 관련되는가.
=코도 에슌_ ‘오톨리스 3부작’을 제작하면서 그 말이 우리의 작업이 갖는 의미를 발전시켰다. 이 말은 미래의 변이를 뜻한다. 우리는 이 3부작을 미래의 여성 인류학자가 인간이 어떻게 우주로 여행할 수 있고 미세중력 속에서 어떻게 생존할 수 있는가를 분석하는 정치적 픽션으로 구상했다. 3부작을 제작하면서 안잘리카와 나는 구소련의 우주개발 단지인 스타시티(Star City)를 찾아 미세중력 훈련을 받았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체험한 멀미, 중력과 균형의 상실, 현기증 등의 의미를 질문하게 되었다. 그 결과 우리는 이 모든 신체적 느낌들이 정치적 암울함의 시대를 어떻게 견디며 살 것인가라는 질문과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오톨리스 I>을 완성한 시기인 2003년에는 이라크전이 시작되고 부시 정권과 블레어 정권이 참전했으며, 전세계에서 커다란 반전운동들이 벌어졌다. 이 시기에 우리는 스스로 느낀 멀미의 느낌을 분노라는 정치적, 집단적 정서와 연결시키려고 했다. 이 점에서 3부작은 전쟁을 겪는 것에 대한 진술이고, 부시와 블레어는 물론 우리 모두가 이미 죽은 자가 된 상상적 미래에 대한 진술이다. 이런 맥락에서 ‘오톨리스’, 즉 이석이라는 것은 멀미, 현기증, 무중력 상태, 절망, 근거 상실을 관리하는 법, 정치적 과정을 변이와 진화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법을 가리킨다. 이는 마치 컴퓨터의 Zip파일과 같은 것으로, Zip파일의 압축을 풀면 여러 파일들이 나오듯 오톨리스라는 단어는 우리가 탐구하는 많은 주제들을 압축한다.
김지훈_ 어떻게 이 그룹을 안잘리카와 결성하게 되었는가.
코도 에슌_ 우리 둘 모두 크리스 마르케의 영화를 함께 보고 토론하면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안잘리카는 자신의 가족과 관련된 흥미로운 이야기를 가졌지만 이를 표현할 수 있는 공간과 방법을 몰랐고, 나는 영화이론을 공부했지만 영화를 만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의 힘을 합치기로 했고, 스타시티로의 방문을 포함한 예술가 지원 프로그램이 있어서 함께 참여했다. 거기서 마르케의 영화들을 보면서 토론했던 대로 비디오 에세이를 만들기로 했다. 우리는 스타시티에 대한 영상, 반전 시위에 대한 영상, 구소련을 방문한 안잘리카의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즉 과거, 현재, 미래 모두를 갖고 있었던 셈이다. 그 이후에는 이 모든 다큐멘터리적 요소들을 엮을 픽션을 구상했다.
김지훈_ 많은 비평가들은 오톨리스 그룹의 비디오 작품을 ‘에세이적’이라고 말했다. 이 작품들은 다큐멘터리 숏, 다양한 아카이브 영상, 그리고 시적이거나 분석적인 내레이션을 뒤섞음으로써 주관성과 객관성, 픽션과 사실의 경계를 와해시킨다. 어떤 이유로 이런 접근법을 지금까지 유지해왔는가.
코도 에슌_ 먼저 마르케의 <태양 없이>(1982)가 우리의 접근법에 큰 영향을 줬음을 언급해야겠다. 그 영화의 도입부에서 마르케의 자아가 반영된 여성 내레이터는 스스로 “어떤 이미지를 우리가 따라가야 하는가… 이것이 맞는 이미지인가”라고 묻는다. 여기서 우리는 스스로를 질문하는 영화를 보게 된다. 말하자면 확실성의 결여 속에서 만들어지는 영화, 스스로 영화 만들기의 가능성을 시험하는 영화다. <태양 없이>에는 또 다른 매력적 요소들이 있다. 먼 미래의 인간을 현대 일본 문화에 대한 기록영상과 병치시키고 SF를 히치콕의 <현기증>과 연관시킨다. 우리는 그런 자유를 해방적이라고 생각했다. 이는 다큐멘터리를 다른 방식으로, 즉 사변적이고 가설적으로 연장시키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제작자와 현실 자체의 불확실성은 우리가 생각하는 다큐멘터리의 출발점이다. 사변적 성찰과 잠정적 명제, 지속적인 의심으로 가득한 그런 다큐멘터리 말이다. 이는 처음에 주장을 제시하고 이를 정치적 소요나 폭력과 같은 장면들로 입증하고자 하는 대부분의 정치적 다큐멘터리와는 반대다. 우리는 에세이영화를 장르로 여기지는 않는다. 십년 뒤에 우리는 보이스오버, 아카이브 영상, 음악, 멜랑콜리 등으로 에세이영화를 장르로 식별할지도 모르지만 중요한 것은 이런 영화의 스스로 질문하는 특성이다. 즉 지속적인 사변적 성찰이 에세이영화의 핵심이다.
김지훈_ ‘오톨리스 3부작’은 SF적 미래주의와 정치적 다큐멘터리, 인도와 서구의 20세기 역사를 넘나들면서 현재를 망각된 과거와 상상적 미래의 결합으로 재구성한다. 특히 <오톨리스 III>의 출발점인 샤티야지트 레이의 미완성 영화 시나리오 <에일리언>에서처럼 SF가 이 3부작에서 중요한 장치로 활용된다.
코도 에슌_ SF에 대한 질문은 미래에 대해 말하는 법이다. 우리의 주장은 권력과 정치가 과거와 현재를 통제하는 방식뿐 아니라 미래를 관리하고 통제하고 결정하는 방식에 작용한다는 것이다. 21세기를 위한 건축의 기본 설계, 경제 5개년 또는 7개년 계획, 이런 것들은 미래의 우발성을 제어하는 장치다. 2차 세계대전 시기에 핵실험 시뮬레이션 실험 또한 그랬고, 전쟁에서의 시뮬레이션 또한 미래의 적을 선제적으로 제어하는 것이며, 금융자본주의는 가능한 리스크를 계산하고 예측하는 것이다. 이 모두에서 우리는 미래가 정치의 강력한 도구로 작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SF는 미래의 정치학을 확장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리는 예술이 미래의 정치에 대한 하나의 개입이라고 생각한다.
김지훈_ SF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오톨리스 그룹의 최근 작품들은 비가시적인 실체들이 지구온난화, 자본주의의 위기, 파국 등의 현상들로 인간과 현실에 영향을 미치는 과정들을 탐구한다. <자본의 주술>에서의 액체 크리스털, <래디언트>에서의 방사능, 그리고 <지구 영매>에서의 지진파 활동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코도 에슌_ 이 작품들은 모두 인간과 비인간적 행위자의 관계가 전도되는 현상들에 대한 탐구다. <자본의 주술>은 컴퓨터나 평면TV 등의 다양한 스크린 기반 디지털 장치들이 인간관계를 결정하고 이러한 관계 이면에는 액체 크리스털의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한다는 것이다. 이를 우리는 유물론적 시각으로 다루고자 했다. <래디언트>에서 우리는 방사능의 여파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왜 일본 정부가 다른 국가들보다 원자력 발전을 더 활발히 수용했는가를 탐구하고자 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원자력 발전이 일종의 보호적 모성으로 작동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방사능은 2차대전 후 스스로를 재건하는 일본에 일종의 정신적 힘으로 작용했던 것이다. <지구 영매>는 <래디언트>의 속편으로 방사능이 야기하는 파국의 국면에 대한 관심을 지진으로 연장하면서 제작하게 되었다.
김지훈_ 끝으로 현재 그룹이 구상 중인 작업에 대해 말해달라.
코도 에슌_ 최근에 <포켓몬 GO>가 세계적인 화제가 되었지만 그전에 우리는 다음 작업으로 증강현실이 인간과 세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작 비디오를 구상했다. 시간이 좀 걸리는 작업으로 현재 작업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