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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기존 <무한상사>를 따라하기보다 캐릭터는 두고 사건을 만들었다 – 장항준 감독
이화정 사진 최성열 2016-09-07

장항준 감독은 드라마 <시그널>의 주인공처럼 다시 그날로 돌아간다면 “절대 이 프로젝트에 합류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물론 웃으며 건넨 농담이지만 그만큼 <무한도전> 멤버들뿐 아니라 감독 자신에게도 이번 프로젝트는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한동안 드라마 각본 작업에 매진하던 그가 오랜만에 돌아온 영화 현장이자, 아내 김은희 작가와는 드라마 <싸인>(2011) 이후 5년 만의 협업이다.

-<무한상사> 촬영현장을 전격 공개한 지난주 8월27일 <무한도전>에서 “불면증 약을 먹었다”고 할 정도로 중압감이 상당한 것 같았다. 한동안 연출이 뜸해 <무한상사> 연출을 맡은 기분이 복잡할 것 같다.

=김은희 작가가 박지은, 김은숙 작가 등 동료 작가들을 만난 자리에서 이 프로젝트를 한다고 했더니, 다들 왜 하냐고 했다더라. 그 말을 듣고 아뿔싸 했다. 내가 독이 든 사과를 물었구나. (웃음) <무한도전>은 팬들의 애정이 엄청난데, 어쩌려고. 김은희 작가는 유명 작가고 장원석은 유명 제작자이니 이거 안 되면 ‘다 장항준 탓’이라고 할 거다. 우리끼리도 작업하면서 그렇게 이야기했다. (웃음) 그런 생각을 하니까 잠이 안 오기 시작하고 약을 안 먹을 수가 없더라. 김은희 작가도 나만큼 스트레스를 받았다. 일이 이렇게까지 커질 줄 몰랐으니까. 사실 너무 짧은 기간에 장편영화 한편 만든 게 돼버렸다. 권지용이 처음 만났을 때 ‘난 콩트인 줄 알고 왔는데’라고 한 게 모든 배우의 심정을 대변한 말이다. 부탁하길래 와봤더니, 대사가 워낙 많고 촬영, 조명 등 영화 스탭도 많아서 다들 놀라워했다.

-어떻게 합류하게 된 건가.

=MBC에서 김은희 작가한테 먼저 연락을 해왔다. <시그널>을 마무리할 때였는데, 제안이 들어왔다는 말을 듣고 내가 바로 하라고 권했다. “인기 작가가 됐으니 그런 거 해야 해”라고. (웃음) “같이 할 생각 없어?” 하기에 바로 안 한다고 했는데 재차 설득하더라. 사실 하반기에 영화에 들어갈 예정이었다. 그런데 그 영화를 제작하는 장원석 대표가 “그 작품 들어가기 전에 몸 푼다고 생각해라” 하더라. 그래서 “그래, 그럼 네가 <무한상사>도 제작해” 하고 김은희 작가와 원석이, 나 이렇게 셋이 하게 된 거다. 시작하고 셋 다 후회했다. 김은희 작가와도 얘기했는데, 그 전화받던 날로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간다면 절대 안 할 거다. (웃음) 너무 쉽게, 만만하게 생각했다. 재밌겠다는 생각만으로 덤빈 건데 이렇게 노동 강도가 엄청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참여하는 배우와 스탭의 면면은 물론 김은희 작가, 장항준 감독 그리고 제작자 장원석이라는 세팅의 힘이 느껴진다. <무한도전>팀이 가진 영향력에, 영화팀의 ‘지인 찬스’를 몰아 쓴 느낌이다.

=지금 생각하면 이렇게 셋이 안 했으면 못했겠다 싶다. 서로 워낙 잘 아니까 불필요한 절차가 필요없어지는 거다. 회의 때는 원석이가 오면 바로 시작할 수 있었고, 김은희 작가가 대본 보낸 뒤 현장에서 상황이 바뀌면 그걸 내가 바로 수정도 했다.

-기존 <무한상사>의 콩트 성격을 덜고 미스터리, 스릴러 성격을 가져갔다.

=<무한상사>에서 그동안 보여줬던 즉흥 콩트가 정말 재밌었다. 그걸 우리가 따라해봤자 망할 거다. 그건 <무한도전>팀이 제일 잘하는 영역이니까. 그 팀이 우리한테 같이 하자고 한 것도 그런 것 말고 다른 걸 해보자는 생각에서였을 거다. <무한상사>의 캐릭터만 유지한 채, 그들이 사건에 휘말리면 어떻게 될까라는 생각으로 시나리오를 작업했다. 스릴러와 미스터리가 가미된 수사극 형태를 바탕으로 했고 코미디는 아주 조금 들어간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김은희 작가가 평소처럼 자료 조사를 많이 했다. 드라마 <미생> 때 썼던 자료도 얻어서 보고, 상사원들도 많이 만났다. 그 시간에 이렇게 말이 되게 만들었다는 것 자체가 좀 놀랍기도 하다. (웃음)

사진제공 MBC <무한도전>

-김태호 PD의 협조가 상당했다고 들었다. <무한도전>팀과의 조율, 또는 극에 대한 가이드라인 조절은 어떻게 했나.

=김태호 PD를 비롯한 <무한도전> 제작진이 전폭적인 후원을 해줬다. 내용이나 장면에 관여하거나 뭘 넣어달라 빼달라 하는 건 전혀 없었다. ‘아, 이 사람이 이래서 김태호구나’ 할 정도로 최대한 작업을 잘할 수 있게 모든 지원을 해주더라. 프로그램에 헌신적인 PD이자 우리에게는 정말 투자자였다. (웃음) 김태호 PD가 MBC에서 그만큼 영향력이 있으니 가능한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방송이다보니 PPL이 많았는데,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안 그러면 제작비 때문에 다 포기해야 하니까.

-<글로리데이>(2015)를 촬영한 이형빈 촬영감독을 비롯해 거의 모든 제작진이 영화계에서 일한 스탭들로 구성되었다.

=스탭의 97%가 영화쪽 인력들이었다. 소품과 세트 제작, 분장•헤어팀 정도가 MBC쪽 인력이었다. 영화로 보자면 워낙 예산이 적고 시간도 빠듯한 현장이라 모두 고생이 많았다. 장원석 대표의 비에이엔터테인먼트에서 함께 일해와 지금의 사정을 설명할 수 있는 스탭들로 꾸렸다. 김은희 작가나 내 개런티는 제작비로 돌렸다.

-캐스팅이 워낙 막강해서 느낀 부담도 컸을 것 같다.

=이미 ‘초대형 액션블록버스터’처럼 소문이 났다. 지난주 방송된 메이킹 방송을 보고 벌써부터 주변에서 자꾸 물어본다. 아무리 구니무라 준과 김혜수씨가 와도 우리가 화려한 블록버스터를 염두에 둔 건 아니니 블록버스터가 될 수는 없는데 걱정이다. <무한도전> 멤버들이 정극 배우가 아니기도 하고, 또 우릴 도와주러온 분들은 대부분 배우인데도 스포일러 유출 문제로 전체 대본을 못 드렸다. 전체 내용을 파악하지 못하고, 순전히 그들의 연기력으로 임하신 거다. 짧은 시간에 좋은 결과를 내야 했고, 배우들이 많이 고생했다.

-영화와 드라마 두 매체를 경험해온 연출자이니 TV 영화를 만드는 데 활용한 각각의 특성이 있었을 것 같다.

=두 매체를 다 경험했지만 이번에는 온전히 영화를 만든다는 생각으로 임했다. 아무래도 구현되는 것이 TV이다 보니 TV시청자를 고려해야 했다. 영화는 스크린이 크니 풀숏으로 가도 되지만, TV는 확실히 바스트숏이나 클로즈업이 아니면 눈에 잘 띄지 않는다. 확실히 강조를 해줘야 한다. 집에서 TV를 볼 때 전등을 켜놓고 보지 않나. <무한도전>은 특히 저녁 식사시간에 보는 거라, 요즘은 그 시간이면 밖에 아직 해가 떠 있다. 스릴러 특성상 밤 장면이 많은데 너무 어둡게 가면 안 되었다. 너무 어둡다 싶은 조명이나 색감은 조금 밝게 가기도 했다. 또 배경이나 인물의 뒷모습도 영화처럼 5초 이상 기다릴 수는 없다. 앵글을 영화적으로 설계했다가 현장에서 바꾼 것들도 많았다.

-<무한상사>로 현장 분위기를 제대로 경험했을 텐데, 차기작 계획이 궁금하다.

=아무리 오랫동안 했던 일이라도 쉬면 감각을 좀 잃는다. 그러니 나한테 많은 도움이 된 현장이었다. 잘해왔다,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했다 싶다. 이 작품 끝나고 단편을 하나 기획 중이고 내년 2월쯤에 <기억의 밤>이라는 스릴러를 준비 중이다. 의문의 납치 사건으로 기억을 잃은 형과 그의 기억을 좇는 동생의 이야기다. 원래 내가 시나리오 쓰는 데 얼마 안걸리는데 이 작품은 정말 오래 걸렸다. 요즘은 시각적, 청각적인 긴장을 유지하는 스릴러 장르에 관심이 크다. 1/3 정도 쓰고 장원석 대표한테 시나리오를 보냈더니 정말 재밌다고 하더라.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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