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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 인터뷰] "지금은 내가 사는 세계에 대해 발언하려고 한다" - <그물> 김기덕 감독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김기덕 감독은 영화 <스톱>(2015)에 대해 정식 개봉 대신 ‘불법 다운로드를 허한다’는 발언을 전했다. 시장의 배급 상황에 대한 비판이자 관객을 향한 일종의 선포 이후 들려온 또 다른 소식은 400억원 규모의 미•중•한 합작영화 <무신>을 준비한다는 소식이었다. 디즈니 전 회장 딕 쿡이 설립한 딕 쿡 스튜디오와 중국 자매 회사인 필름 카니발이 함께 참여한 판타지 대작으로, 제작 형태로 볼 때 김기덕 감독의 기존 필모그래피에서 돌출된 것 같은 느낌도 있었다. 억측이 커져가는 가운데, 공식 입장을 좀체 표명하지 않았던 김기덕 감독이 인터뷰에 응해주었다. 마침 남북분단 상황에서 북한의 어부 철우(류승범)가 겪게 되는 고초를 그린 <그물>이 올 베니스국제영화제 비경쟁부문에 김지운 감독의 <밀정>과 함께 초청되었고, 올가을쯤 국내 개봉도 할 예정이다. 오랜만에 만난 김기덕 감독에게 그간의 변화를 들어보았다.

-<무신> 촬영 준비로 중국에 체류 중인 시간이 많다.

=왔다 갔다 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다니면서 촬영장소 다 찾았고 작업을 하고 있다. 10월 중 크랭크인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갑자기 워킹 비자 문제가 걸려서 못 가고 있다. 확실한 이유는 모르겠고, 그냥 비자 승인 절차가 까다로워졌다. 제출해야 할 서류들이 더 많아졌다. 지금은 배우의 확답을 기다리고 있는 중인데, 만약 비자 문제가 풀리지 않으면 내가 감제(총감독)의 형식으로 참여하는 것도 고려 중이다. 중국 현장에 감독이 있고, 내가 한국에서 디테일한 신들에 대해 총디렉팅을 해주는 방식이 되는 거다.

-400억원이 넘는 대규모 미•중•한 합작영화다. 사실 프로덕션을 최소화한 방식으로 진행됐던 그간의 작품으로 볼 때 눈을 의심케 하는 소식이었다.

=중국에 한국 감독이 이미 많이 가서 활동하고 있다. 한국 제작사들의 관심이 없었던 반면, 중국에서는 그간 제안이 꽤 있어왔다. 지난해 초 콜롬비아에서 열린 카르타헤나국제영화제에 초청받아 갔는데 그때 LA에서 할리우드 배우를 캐스팅해 작품을 만들어야겠다는 마음에 한동안 미국에 머물렀다. 준비를 하다 보니 그쪽에 인맥도 없고 쉽지 않더라. 그러다가 3월에 베이징국제영화제 심사위원으로 초청돼 갔다. 완다그룹 등 중국 메이저 영화사들과 자리를 함께하게 되고 그때 작품 제의도 자꾸 하더라. 그렇게 인연이 되어 시작하게 됐다.

-고대 왕국의 종교를 둘러싼 판타지물인데, 어떻게 구상한 건가.

=<무신>은 ‘아스카’라는 제목으로 벌써 오래전부터 만들어보고 싶었던 이야기다. 종교를 둘러싼 전쟁과 사랑 이야기라 스케일이 커질 수밖에 없는데 그 제작 규모를 제작사에서 수용해주었다. 중국 제작사를 통해 디즈니 전 회장 딕 쿡도 만났고, 그쪽에서 <반지의 제왕> 특수효과팀도 연결해주었다. 물론 중국 심의규정 때문에 아스카라는 일본의 신 대신 중국의 신으로 수정을 했다. 종교나 소수민족을 표현하는 부분들도 조정이 필요했다. 현재 시나리오 심의는 통과했다. 수정을 하다 보니 원래 내가 하려던 이야기에서 조금 벗어났는데, 지는 꽃의 숙명이니 어쩌겠나. (웃음) 일종의 타협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 어쨌든 연출을 할 수 있다는 게 더 중요하다. 그렇게라도 한번 해보면 어떨까 생각이 들더라.

-대작 상업영화로 중국 진출하는 것에 대해 의아한 시각도 있지만, 오히려 더 의지를 드러낸 선택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지는 꽃’이라니 너무 자조적인 표현 아닌가. (웃음)

=여러 가지 면에서 그런 생각이 든다. 영화를 향한 열정이나 에너지, 애정이 지금은 좀 식은 게 아닐까. 한때 너무 미친 듯이 폈다가 에너지가 떨어져서 수그러든 상태인 것 같다. 중국에서 작품을 하는 것은 그런 지점에서 새로운 작업방식이자 환기가 될 것 같다. 내가 대작을 한다니 의심의 눈초리가 많은데, 규모가 커졌다고 더 어려워지는 건 아니다. 최근 중국 개봉작들은 다 챙겨보고 있고, 준비하면서 중국영화 촬영장도 몇 군데 가봤다. 다들 모니터와 무선모니터를 보고 있고, 감독은 예스, 노만 하더라. 제작 규모가 크다 보니 고비용으로 최상의 스탭들을 구성했고, 다들 제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게 될 거다. 늘 현장에서 돌아다니느라 바빴던 것과 달리 이번 현장에서는 ‘컨트롤박스’로서 기능에 충실하면 된다. 작품 퀄리티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된 <스톱>은 혼자서 모든 스탭의 역할을 자처한 작품이라 지금의 선택과는 더 대조적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 작품은 정말 나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오전에 소품 준비하고, 오후에 촬영장으로 나갔다. 통역 외에 스탭은 나 혼자였다. 하루에 몇번씩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힘이 들더라. 말할 수 없이 힘든데 행복한 작업이었고, 그래서 결과가 어떻든 연연하지 말고 끝까지 가보자 하는 마음으로 매달렸다. <무신>을 결심한 것과 마찬가지로 나는 이것 역시 지는 꽃이 보여주는 현상이라는 점에서 다르지 않은 선택이라고 본다. ‘이제 나한테 무엇이 더 있을까’ 하는 자괴감에서 출발해 초심으로 돌아가는 거다. 그런 프로덕션상의 선택이 컸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도 있었다. 후쿠시마 원전 사건을 소재로 하다 보니 촬영 허가가 쉽지 않았다. 1인 게릴라 형식으로 비밀리에 찍어야 했다. 일본 배우들 중 그간 같이 작품을 하고 싶다는 이들도 꽤 있었는데, 워낙 조심스러운 작품이라 다음 영화 때 하자고 했다. 그래서 연극쪽에서 활동하는, 대중적으로는 잘 알려지지 않은 배우들이 참여했다. 배우들이 정말 헌신적으로 스탭의 몫까지 해내서 완성할 수 있었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의 <스톱> GV 때 관객에게 비용문제로 정식 개봉은 안 할 테니 불법 다운로드로 보라는 권유를 해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일대일>(2014) 이후 국내 개봉이나 부가판권 문제 등에 대해 전적으로 회의적인 시선을 보여주고 있다. 그간 거듭 시장에서 배급의 어려움을 토로했고, 스코어의 미비함을 지적해왔다는 점에서 다다른 선택인데, 연출자의 의지와 달리 배우들에게는 개봉을 전제하지 않은 영화 작업이 주는 어려움을 배제할 수 없을 것 같다.

=맞다. 나로서도 그런 견해를 충분히 견지하고 있다. 배우 류승범과 <그물> 출연을 논의할 때도, 한국 개봉을 안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개런티도 없었는데, 순수하게 나에 대한 신뢰로 참여해주었다. 그러다 NEW에서 배급하겠다고 해줘서 개봉이 잡힌 거다. 류승범이 “감독님 개봉 안 하신다더니 왜요?”라고 묻더라. (웃음) 영화 관람은 일종의 바이러스 같은 거라고 생각한다. 확산되면 자연스럽게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다. 영화 자체의 숙명을 믿는 편이다. 캐스팅에 관해서 말하자면, 나는 시간을 두고 캐스팅에 매달리지 않는다. 시나리오를 쓰면 캐스팅하고 찍어야 한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게 중요하지 어떤 배우의 유명세나 연기의 정도가 크게 중요한 건 아니다. 어떻게 들릴지 모르지만 내가 화가고 배우는 물감이다. 물감의 브랜드는 여러 가지겠지만, 그걸 가리면서 시간을 소비하고 영화를 못 만들고 싶지는 않다. 누군가의 자본이 커지면 물론 그 책임을 져야겠지만, 그래서 나는 그 방식이 아닌 소박한 머리에서 나오는 의미전달을 목적으로 작은 제작 규모로 해오는 거다. 어쨌든 이 영화를 하면서 승범씨도 행복한 선택을 했겠지만, 연기하는 도중에는 내 방식에 맞추기까지 혼란을 많이 느꼈을 거다.

-<그물>은 그런 지점에서 <일대일> 이후 정식 개봉작이라는 의미를 더한다. 더불어 남북분단 문제를 소재로 한다는 점에서도 관심이 크다. 김기덕 필름에서 제작한 전재홍 감독의 <풍산개>(2011), 이주형 감독의 <붉은 가족>(2013) 역시 분단을 소재로 한 작품이었다.

=<풍산개>와 <붉은 가족>도 내가 시나리오를 썼으니 더 그런 관심이 도드라져 보일 거다. 누구나 국가주의 안에 소속되고 벗어날 수 없다. 국가가 긴장하면 나도 그 안에서 긴장하면서 살아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그 긴장이 무엇인가 하면 남북 문제다. 이건 개인의 생각대로 바꿀 수 없는 거대한 긴장이다. 한 평범한 어부를 통해서 그 긴장의 증상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싶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데올로기에 관한 질문을 받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 정치인도 재력가도 아닌 평범한 사람이 거대한 이데올로기의 틈새에서 받는 고통을 그려보고 싶었다.

-북한 어부 철우는 김기덕 감독의 필모그래피 속 캐릭터를 통틀어 볼 때 가장 평범한 인물로 묘사된다. 그는 그물이 모터에 걸려 고장나 남한에 오게 됐지만, 체제에는 관심이 없다. 오로지 북한의 가족에게 돌아갈 생각밖에 없는 소시민이다.

=항상 작품 속 캐릭터를 파격적으로 설정하고 만들어 왔다. 주변에서 본 적이 없는 캐릭터라도 어떻게든 그 인물을 설득하는 과정을 만들어갔다. 그런데 이번 작품에서는 극히 소박한 인물이어야 맞다고 봤다. 영화를 쓰면서 생각한 이미지가, 그물에 걸린 물고기였다. 물고기가 그물에 걸리면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움직이게 된다. 철우는 남한과 북한에서 똑같이 의심을 받고 고초를 겪는다. 그의 목적은 어떻게든 다시 가족에게 돌아가 살고 싶은데 체제 안에서는 이미 범죄자가 되어 있다. 배가 고장나지 않았으면 맞닥뜨리지 않았을 상황에 갇혀 있다. 나 역시 언제든 그렇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목소리를 잃은 <>(2007)의 장진(장첸)이 대표적일 텐데, 작품에서 캐릭터의 언어를 뺏거나 제한해왔다면 이번엔 남한에 오게 된 철우의 ‘시선’을 뺏는다. 남한의 조사관에 의해서 명동에 내려지지만, 북으로 돌아가면 추궁당할까 두려운 마음에 남한의 발전상을 보지 않기 위해 억지로 눈을 감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철우는 남한의 풍경을 보라는 요구에 “본 거이 없어야 저도 가족도 안전합네다”라고 항변한다. 서울로 들어오는 순간 그는 눈을 감고, 남한의 조사관은 회유를 위해 강제적으로라도 철우가 감은 눈을 뜨게 하려고 한다. 철우가 눈을 감겠다는 의지는 결국 체제에 대한 두려움에서 온다. 눈을 감는다는 건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어수단이다. 류승범이 철우가 되려고 촬영 전에 하루 동안 눈을 감고 살아봤는데 정말 힘들었다고 하더라. 그 장면을 명동에서 찍었는데, 슬프더라. 분단의 모든 고통들이 명동에서 (그를 남한으로 넘어오게 하려는) 조사원들에게 버려진 철우의 행동 하나에 압축되어 있는 느낌이었다. 분단이란 건 이렇게 눈을 뜨지 못하고, 보고 싶은 걸 보지 못하는 상황이구나. 희망이 결코 열리지 않는, 감각이 닫혀 있다는 그런 상태라고 봤다.

-장소가 주는 상징성을 보자면 철우가 겪는 남한은 명동과 청량리 인근이다. 그동안 명동과 청량리, 청계천은 당신 작품에서 수차례 중요한 배경으로 등장했던 곳이다.

=<나쁜 남자>(2002), <해안선>(2002), <피에타>(2012)를 통해 명동에서 군중 신을 세번이나 찍었다. 강남이나 홍대도 인파가 몰리는 곳이지만 옛날부터 코스모스, 롯데, 신세계 같은 백화점들이 밀집되어온 명동이 한국의 자본주의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공간이라고 봤다. 철우가 가는 곳은 청량리로 설정하고 실제 촬영은 청계천에서 촬영했는데, 이곳은 명동과 반대로 인간 냄새를 풍기는 곳이다. 이곳 역시 북한의 가난한 어촌처럼 사람이 사는 곳이다. 북한 사람은 남한의 발전상을 보면 다 놀라서 부러워할 것이다라는 생각이 얼마나 근거 없나. 자본주의의 커다란 숲과 뒷골목의 큰 그림자를 대비시키고 싶었다.

-개인의 내면이나 구원의 문제에 치중하던 스타일에서 벗어나 직접적인 사회문제로 시선을 돌리고 있다는 데서 최근 작품의 변화를 읽을 수 있다.

=사실 <아리랑>(2011)을 쓸 때부터 인생을 살면서 내가 느끼는 위험순위 세 가지를 생각했었다. 첫 번째가 원전, 핵 문제. 두 번째가 전쟁, 세 번째가 인간관계였다. 사람끼리 부딪히는 문제는 최대한 방어하려고 노력하면 극복할 수 있지만, 핵이나 전쟁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대규모 살상을 불러올 수 있다. 한 개인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걱정거리가 커졌다. 옛날에는 내 생각만 하고 만들었다면 지금은 내가 사는 세계에 대해 불안해하고 그것에 대해 발언하려고 한다. 인간의 내면을 파고들었던 초창기 작품과는 그래서 결이 달라지고 있다. <스톱>을 만들면서 그런 이야기를 했다. 안전해야 영화도 만들 거 아니냐고. 인간이 살아남아야 할 수 있는 게 표현이고 창작이라면, 시스템 자체가 그런 두려움과 긴장이 없어야 한다. <그물>도 개인의 선악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를 짚어보고자 한 거다. 지금은 내 이야기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할 정도로 그 문제들이 나한테 영향을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것들이 완화되어야 내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과거에는 세상이 어떻게 되든 불꽃처럼 타다가 죽을 거야 했고, 은유나 비유, 해 석을 넓게 두고자 했다면, 지금은 직설적으로 실제에 가깝게 표현하게 되는 것 같다. <스톱>은 그런 면에서 계몽영화라고 생각하고 있고, 일본에서 작게 개봉할 계획이 있는데, 상영 수익이 생기면 일본 지진 피해자들에게 기부할 생각이다.

-지난해 김동후 감독의 <메이드 인 차이나>(2015)를 제작 했는데, 현재 제작을 추진 중인 다른 작품이 있나.

=제작은 당분간 중단한 상태다. 내 각본이 아닌 본인 창작으로 하면 더 훌륭한 작품을 만들 감독을 내가 가두는 게 아닌가 하는 고민이 있다. 그리고 아직까지 흥미를 끄는 시나리오도 없어서 고민을 좀 해봐야 한다. 어쨌거나 제작자로서도 역할을 하고 있으니 거의 모든 개봉영화를 거르지 않고 찾아보고 있다. 한편으로 나는 영화를 하면서 몇 가지 각오한 게 있는데 실제 인물, 실제 사건은 다루지 않는다는 거다. 오래전부터 내가 정한 원칙이다. 놀랄 만한 사건을 끌어와서 만들지는 말자. 세상에 없는 걸 만들지는 않지만 그래도 창작이라는 걸 통해서 인물이든 이야기든 스스로 발전시켜서 해야겠다는 생각은 변함없다. 이제 중국작품에 들어갈 예정이지만, 아직 모르지 않나. 하지만 안 될 경우를 계산해서 다른 시나리오 작업도 계속 병행하고 있으니 안 되면 또 다른 작품을 찍으면 된다. 언제나 그렇게 작업해왔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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