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쇼> 창간호를 1억원에 삽니다”라는 말에 현혹되어 오래전 1989년 <로드쇼> 4월호 창간호를 2권 샀었더랬다. 한권은 소장용, 한권은 자유롭게 오려서 코팅 책받침용으로 쓰기 위해서였다. 표지 모델이 소피 마르소였는데, 기억에 남는 기사는 배우 박중훈과 함께 이른바 ‘스크린 카페’를 탐방했던 기사, ‘데이트 인터뷰’라는 이름으로 홍콩 배우 주윤발과 한국 배우 이혜영의 인터뷰 기사가 실려 있었다. 영화월간지 <스크린>이 승승장구하던 시절 경쟁지 <로드쇼>가 그렇게 등장했다. 1억원 이벤트의 자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저희가 만든 창간호를 되돌려 삽니다. 1989년 4월호 창간호는 10년이 지난 뒤에는 1,000,000원이 됩니다. 가급적 파손을 피해주시고 10년 동안 보관하시면 횡재를 하실 수 있습니다”라며 “당첨자는 경찰관 입회 아래 공정하게 100명을 추첨하여 각각 1,000,000원씩을 드린다”고 했다. 1억원을 다 준다는 게 아니라 100명을 추첨한다는 얘기였다. 그래도 극장 영화 관람료가 2500원이던 시절이었으니(라면은 100원 정도 했던 것 같다) 3500원짜리 <로드쇼>가 10년 후에 1,000,000원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에 서점으로 달려갔던 것이다. 하지만 <로드쇼>는 그 10년이 되기 불과 몇 개월 전인 1998년 폐간했다.
지금 한국영상자료원에서는 ‘잡지로 보는 한국영화의 풍경, <녹성>에서 <씨네21>까지’라는 이름의 기획전시가 열리고 있다(전시는 9월4일까지 계속되니 한국 영화잡지의 역사에 관심 있는 분들이라면 흥미로운 시간이 될 것이다). 지난주에는 그중 한 특별 프로그램인 ‘박물관 속 토크’로 김형석 전 <스크린> 편집장과 함께 ‘우리 시대의 영화는 어떻게 기록되는가’라는 이름으로, 강의 신청자들과 함께 영화잡지의 추억을 공유하며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다과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돌이켜보면, 1984년과 1989년에 창간된 월간지 <스크린>과 <로드쇼>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고, <씨네21>과 비슷한 시기에 창간되어 마니아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얻었던 월간지 <키노>와 <프리미어>가 생명을 다했으며, 지난 2008년 폐간한 주간지 <필름2.0>까지 더하면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에 이르기까지 무려 3개의 주간지와 4개의 월간지가 동시에 경쟁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매체 환경의 변화, 광고 시장의 침체와 맞물려 수익 구조의 불균형 속에 영화잡지들은 하나둘씩 사라져갔다.
참석자들과도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지금의 영화잡지에 대해 고민하게 됐다. 이 짧은 글로 다 풀어낼 수는 없겠으나 굳이 영화잡지 편집장으로서의 목표를 묻는다면, 어떻게든 ‘실물’로서의 영화잡지를 오래도록 생존하게끔 만드는 것이다. 영화잡지도 시대와 역사를 기록하는 것이라면, 앞으로 그 어떤 매체나 플랫폼의 변화가 있더라도 촉감으로 전해지는 종이잡지의 고유성과 유일성은 변함없으리라 생각한다. 또한 기록의 가치로 보자면, 영화 촬영현장 취재 기사와 대담 기사에 대한 갈증이 크다. 문학이나 음악, 혹은 미술과 달리 영화는 창작 과정으로서의 ‘현장 취재’가 유일하게 가능하다. 시나리오와 최종 결과물로서의 영화 사이에는 변덕스런 날씨부터 감독이나 배우의 컨디션에 이르기까지 ‘변수’가 많기에 그 ‘과정의 기록’이 너무나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또 특정 작품에 대한 감독이나 배우 개인의 인터뷰보다는 당대 함께 활동하는 다른 감독이나 배우, 혹은 제작자와의 대화 속에서 시대의 진짜 공기가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다짐이기도 하거니와 영화계의 각 플레이어들에게 드리는 당부이기도 하다. 제발 현장도 많이 열어주시고, 이런저런 섭외 요청에도 기꺼이 응해주시길! 생각해보니 이 글의 목적은 딱 그 두 가지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