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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 2부>가 “이제 모든 것이 끝난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대장정을 종결한 지 3년 만인 2013년 9월, 신규 ‘<해리 포터> 영화’ 제작 소식을 할리우드발 부엉이가 물고 날아왔을 때, 아무도 진심으로 놀라진 않았다. 모든 메이저 스튜디오가 브랜드 가치를 보유한 원작을 찾으러 묵은 창고를 뒤지고 있는 터에, <해리 포터> 우주만큼 치밀하고 광활한 세계관을 정립해놓고는 달랑 프랜차이즈 하나로 “모든 것을 끝낼” 거라고 믿은 구경꾼은 없었기 때문이다. 잠정적으로 3부작으로 기획된 <신비한 동물사전>(Fantastic Beasts and Where to Find Them)에는 해리 포터도, 호그와트 마법학교도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직접적 속편도 프리퀄도 아닌 이 이야기는 J. K. 롤링이 지팡이 하나까지 창조한 ‘포터 월드’의 역사와 세계관을 공유한다. 2015년 11월 5일 아침 비바람 속에서 열명 남짓한 각국 기자를 싣고 런던 북서쪽 교외 리브스덴의 <신비한 동물사전> 세트에 진입하는 버스 차창으로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에서 갈 곳 잃은 해리를 런던에 데려다주었던 보라색 3층 버스가 눈에 띄었다. 워너브러더스는 2010년 5만 제곱미터에 달하는 리브스덴 스튜디오를 유럽 내 프로덕션 기지로 매입 했으며, 2012년에는 <해리 포터> 영화 8편의 세트와 소품을 ‘메이킹 오브 해리 포터’ 라는 이름의 투어 코스로 구성해 개관했다. 취재에 동행한 워너브러더스 유럽의 아르민 슈나이더는 “4주 전쯤 예약해야 원하는 날 구경할 수 있다”고 성황을 귀띔했다. 미국, 영국, 일본의 ‘<해리 포터> 테마파크’에 이어 <신비한 동물사전> 3부작의 시동까지, 세트에 초대된 기자들이 “J. K. 롤링은 21세기 조지 루카스를 꿈꾸는가?”라는 호기심을 품은 것도 당연하다. <신비한 동물사전>의 데이비드 예이츠 감독은 조지 루카스의 숭배자는 아닌 모양이었다. “새로운 조지 루카스? 그녀는 유일한 J. K. 롤링이고 우리 시대의 디킨스라고 생각한다.”
사전을 영화로, 카탈로그를 어드벤처로
<신비한 동물사전>의 원작은, <해리 포터> 시리즈 1권부터 ‘마법의 동물 돌보기’ 과목의 교과서로 등장하는 동명의 책으로, 2001년 머글 세계에서도 출간됐다. 기본적으로 세계 곳곳에 서식하는 신기한 마법동물의 카탈로그인 만큼 이 책에는 스토리도 인물도 없다. ‘<해리 포터>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확장할 새 영화를 궁리하던 워너와 데이비드 헤이먼 프로듀서(<해리 포터> 시리즈, <그래비티>, <패딩턴>)는 당초 <신비한 동물사전>을 페이크 자연다큐멘터리 양식으로 영화화할 구상을 세웠다. 오히려 이에 “잠깐!”을 외친 것은 J. K. 롤링이었고 12일 만에, <신비한 동물사전>을 쓴 마법의 동물학자(Magizoologist) 뉴트 스캐맨더를 주인공으로 한 극영화 초고를 써냈다. 다시 말해 원작의 디테일을 속속들이 알고 영화의 충성도를 확인하러 극장을 찾았던 <해리포터> 팬들은 이번에는 반대로 캐릭터와 줄거리를 모른 채 새로운 모험담과 상견례를 해야 한다. 그리하여, <신비한 동물사전>은 오늘날 지구상에서 가장 성공적인 작가의 시나리오 데뷔작이 되었다. 연출은 <해리 포터> 시리즈 후반 네편을 연출해 프랜차이즈를 연착륙시킨 데이비드 예이츠에게 맡겨졌다. 제작자 헤이먼은 이날 기자들에게 <신비한 동물사전> 3부작 전체의 그림은 롤링의 머릿속에만 있다고 시치미를 뗐다. “특별한 마법의 투명 종이에만 적혀 있다. (웃음)” 그의 진술이 정말이라면 보통 프로듀서들에게는 목적지 없이 배를 몰아야 하는 불안한 상황이지만 헤이먼은 “모른 채 나아가는” 작업방식에 10년 동안 이골이 난 터다. “<해리 포터> 1편을 찍고 있을 때 조(롤링의 애칭)는 소설 4편을 쓰고 있었고 우리는 대단원을 몰랐다. 6, 7편에 일어날 사건에 무지한 우리가 집요정 크리처의 장면을 줄이려고 했을 때 조는 그저 ‘나라면 안 그러겠어요’라고 말했다. (웃음)” 하긴 다른 길도 없다. 이 세계 전체가 롤링이 구운 벽돌 하나하나로 지어져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 시리우스 블랙(게리 올드먼)의 선조 중 서넛이 불사조 기사단원 이어서 조에게 도움을 청했더니 30분 후 5세대에 걸친 인물의 이름, 생몰일, 결혼 관계를 망라한 문서가 도착했다!”
<신비한 동물사전>의 모험은, 1997년 해리가 교과서로 52쇄를 구매한 책의 초판 발간 1년 전인 1926년 뉴욕에서 펼쳐진다. 영국 마법부(MOM, Ministry of Magic) 말단 직원이자 마법의 동물에 조예가 깊은 뉴트 스캐맨더(에디 레드메인)는 연구 여행을 마치고 귀국하던 길에 경유지인 뉴욕에서 소중한 슈트케이스를 잃어버리고 그 속의 신비한 동물 몇 마리를 놓치는 바람에 예정보다 오래 미국에 머물게 된다. 동물이 어떻게 가방에 들어가냐고 묻는다면, 당신은 물건이 끝없이 들어가는 헤르미온느의 클러치나, 1994년 퀴디치 월드컵에서 위즐리 가족이 야영한 마술 텐트를 잊어버린 거다. 어린 마녀와 마법사들이 신비로운 동물을 필히 공부하고 마법부가 관리에 주의를 쏟는 까닭은 그들이 마법세계를 노출시키는 계기가 될 위험 때문이다. 실제로 마법세계사는 신비 동물들이 중세에 마녀사냥의 꼬투리가 되기도 했고, 인간의 눈에 발각된 예티와 네스호의 괴물 사건은 각각 티벳과 스코틀랜드 마법부의 오점으로 남았다고 증언한다. 사람보다 동물과 어울려 있는 쪽을 편하게 여기는 뉴트는 위기를 맞아 생면부지 미국인 친구 셋의 도움으로 나흘간 수습에 나선다. 미국 마법부(MACUSA, Magical Congress of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공무원 포펜티나 ‘티나’ 골드스타인(캐서린 워터스턴)과 타인의 마음을 읽는 능력을 지닌 티나의 자매 퀴니(앨리슨 수돌), 그리고 1차 세계대전에서 귀환한 낙천적인 노마지(No-Maj: 영국의 ‘머글’에 해당하는 미국 마법세계의 단어) 제이콥 코왈스키(댄 포글러)가 콰르텟의 나머지다. 여기에 흑마술사를 잡는 미국 오러(auror) 그레이브스(콜린 파렐)와 마녀 및 마법사를 ‘색출’하는 차별주의 단체 세컨드 세일러머스를 이끄는 메리 루(사만다 모튼), 그녀가 입양한 아들 크리덴스(에즈라 밀러)가 이야기의 다른 축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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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의 뉴욕
이날의 취재는 강풍에 꺾이는 우산을 부여잡고 리브스덴에 지어진 뉴욕 거리를 둘러보는 투어로 시작됐다. 미술감독 스튜어트 크레이그(<해리 포터> 시리즈, <위험한 관계>, <잉글리쉬 페이션트>)를 비롯한 제작진은 두 차례 뉴욕을 답사했지만 현대 뉴욕에서 20년대 풍경을 찾고 교통을 차단하느니, 리서치에 기초한 세트를 짓는 편이 실용적이라고 판단했다. 더불어 당시 주된 교역 항구라 뉴욕으로부터 건축적 영향을 받은 리버풀의 몇몇 건물- 커나드 빌딩, 성 조지 홀 등- 이 외관 촬영 로케이션으로 채택됐다. 세트의 대로에 진입하는 순간 <대부2> 안으로 발을 들였나 싶은 착각이 밀려왔다. 금방이라도 젊은 로버트 드니로가 문을 열고 나올 듯한 식품점과 악기상, 치과, 구두수선 가게가 즐비하고, 뉴욕의 트위드 빌딩을 복제한 세트는 촬영을 마치고 지하철역으로 변신 중이었다. 금주법 시대를 맞아 뒷골목 지하로 숨어들어간 술집의 간판은 의미심장하게도 ‘스피크 이지’다. 알코올은 예나 지금이나 달변의 묘약이다. 기자들과 마찬가지로 이날 처음 세트를 방문한 워너브러더스의 직원 한명은, 모로코는커녕 미국 버뱅크의 워너 세트장에서 영화 전체를 거의 다 찍은 <카사블랑카>(1942)를 언급했다. 마음껏 상상을 펼치던 <해리 포터> 시리즈에 비해 고증하느라 갑갑하지 않았냐는 기자의 질문에 베테랑 미술감독 크레이그는 상상의 양식을 발명하는 작업이 더 힘든 데다, 본인이 좌절한 건축가이기도 해서 역사적 건물의 재현이 즐겁다고 답했다. 그의 팀은 도시 세트를 세 구역으로 분류해 디자인했다. “가장 유복하고 세련된 구역은 클래식한 디테일을 포함한 석조 건물이 주조이고, 중간 섹션은 트라이베카 지역을 모델로 장식적이고 재미있는 철골 구조 빌딩들로 채웠다. 마지막으로 골드스타인 자매의 집이 자리한 서민 주거지역은 전형적인 붉은 벽돌 아파트 동네다.” 물론 광대한 세트의 윗부분은 초록으로 포장돼 디지털 후반작업으로 증축할 준비를 완료한 상태다. 그러나 21세기는 기자들이 “왜 로케이션이 아니라 세트를 택했습니까?”가 아니라 “왜 CG로 그리지 않고 굳이 세트를 지었습니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시대다. 과연 <신비한 동물사전>의 배우들은 방대한 실물 세트와 소품들을 몰입에 도움을 준 요소로 일제히 꼽았다. 제작진에 따르면 1920년대 소방차 한대를 포함한 총 49대의 빈티지 자동차가 거리 재현에 동원됐고 의상감독 콜린 애트우드가 일일이 수집하고 제작한 의상을 입은 400명의 엑스트라가 움직이는 군중 신도 찍었다.
그러나 지금껏 설명한 풍경은 뉴욕의 절반일 뿐이다. 마법사와 마녀들의 생활 세계는 어떻게 생겼을까? 그러니까 미국판 다이애건 앨리는 어디일까? 뉴욕 마법부는 대담하게도 당시 맨해튼 최고층 건물이던- 엠파이어 스테이트와 크라이슬러 빌딩은 몇년 후에야 건설된다-울워스 빌딩을 오피스로 택했다. 옥상의 부엉이 조각이 은밀한 이정표 노릇을 하고 있는 건물의 내부 세트로 들어가니 도서관풍의 사무공간이 펼쳐지고 실제로 작동하는 리프트를 타고 도착한 2층에는 17세기미국 매사추세츠에서 살해당한 세일럼의 마녀들을 추모하는 동상들이 자리잡고 있다. 완성된 영화 속에서 미국 마법부는 정상에 다다를때까지 별도의 플로어가 없는 빛의 사원 같은 공간으로 표현될 것이고 장식에는 황금이 많이 쓰일 것이라고 한다. 사진으로만 엿본 또 다른 마술세계 공간은 재즈 클럽. 수자폰을 기본형으로 뱀 모양으로 디자인한 트럼본, 트럼펫, 백파이프를 하나로 합친 금관악기가 인상적이다.
그런데 이 지하 클럽의 벽은 당대 지하철역처럼 방수용 유약을 칠한 벽돌을 써서 세웠다. “리얼리티를 기본값으로 놓아야 매직이 한층 매지컬해 보인다.” <해리 포터> 시리즈부터 일관된 미술의 원칙이다. 특별히 미국색을 반영한 소품이 있냐는 질문에 스튜어트 크레이그는 잠시 망설였다. “마법세계가 머글들에게 노출될 위험치를 실시간으로 표시하는 스레터미터(threatometer)가 있긴 한데, 음, 그게 미국적인 걸까? (웃음)”
한편 뉴욕 시민 전체를 코디네이션하는 과업은 <해리 포터> 세계에 처음 합류한 의상감독 콜린 애트우드(<가위손> <에드 우드> <게이샤의 추억>)의 몫이었다. “일단 물량이 패닉이었다. 1920년대가 배경인 다른 대작이 비슷한 시기에 진행되면 렌털부터 문제가 생기는 상황이었다.” 미국, 이탈리아, 스페인의 빈티지 의상을 쓸어오고 변형하고 제작한 결과가 격납고 규모의 의상실에서 일행을 맞았다. 기자들의 관심은 선공개된 캐릭터 이미지에서 눈길을 휘어잡았던 뉴트의 청록색- 애트우드는 ‘공작색’이라고 불렀다- 코트에 쏠렸다. 기자들의 요청으로 조수가 가져온 코트는 재질이 거칠고 묵직했다(무슨 조화인지, 실물로 보는 영화 의상은 항상 거인의 옷처럼 커 보인다). 성물을 영접하듯 앞다투어 옷을 헤집어본 취재진은 용도를 모를 수많은 안주머니에 호기심만 잔뜩 부풀고 말았다. “뉴트의 마술성과 야외활동을 함축한 이 코트는 내게 출발점이었다. 당대 남성복의 주조색은 블랙이었지만 나는 뉴트를 동시대인과 비슷하면서도 차별화하고 싶어서 검정을 피했다. 원단은 평범하지만 뒷모습에 약간의 마술적 바이브를 넣었다.” 뉴트가 영화 내내 입고 다니는 단 하나의 착장인 이 옷을 의상팀은 해진 정도와 용도에 따라 10벌 제작했다. 코트 다음으로는 피팅 코너에 걸려 있는 교복이 주의를 끈다. 미국판 호그와트가 등장하느냐는 흥분된 질문에 애트우드는 마법부 견학 일행이 잠시 지나갈 뿐이라고 확인해주었다. “호그와트 교복이 현대의 옷이라면 <신비한 동물사전>의 미국 마법학교 유니폼은 시대의상이다. 당시 소년들은 사춘기 전까지 반바지에 무릎양말을 신었다.” 아차, 이 영화의 주요 인물 중에는 청소년이 없다는 사실을 또 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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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성인 4인조
뉴트 스캐맨더는 해리가 아닌, <해리 포터> 월드의 첫 주인공이기도 하다. 데이비드 헤이먼 프로듀서가 말하는 에디 레디메인의 캐스팅 사유는 이렇다. “<신비한 동물사전>은 호그와트의 교과서이므로 뉴트는 일단 잉글랜드 배우여야 했다. 에디는 드라마와 코미디를 모두 소화하고 진지한 사회적 이슈도 편안하게 표현하고, 인간적인 약점과 슬픔을 그리는 데에 빼어나다. 또한 <해리 포터>의 모든 캐릭터가 그렇듯, 인간보다 동물이 편안한 뉴트에게도 아웃사이더 면모가 있다. 에디는 그런 연기에 능하면서도 실상은 사교적이고 카리스마틱하며 동료들과 잘 어울린다. 퍼펙트하다.” 영국 기자와 스탭들은 뉴트를 가리켜 영국 TV 동물 프로그램의 프리젠터인 동물학자 데이비드 애튼버러에 줄곧 비교했다. 의상감독의 설명도 뉴트의 성격을 그리는 데 도움이 된다. “뉴트는 패션에 민감한 남자는 아니라서 웨이스트 코트와 바지가 미스매치다. 따로 사서 대충 맞춰 입는 사람이다. 바짓단이 짧은 이유는 야생에서 동물을 찾아다니는 데 시간을 보내서다.” 소품도 마찬가지다. 제작진의 허락을 받고 만져본 극중 인물들의 마술 지팡이 중 뉴트의 것이 가장 가벼웠다. 동물보호주의자답게 가죽이나 뿔도 재료로 쓰지 않았다.
이날 촬영 참관이 허락된 장면은, 뉴욕 백화점의 창고 내부 세트 신이었다. 뉴트의 조력자인 제이콥과 퀴니가 좁은 공간에서 (보이지 않는) 거대 촉수동물의 기습에 애를 먹고 있다. 드라마 <굿 와이프> <한니발> 등에 출연했던 배우 댄 포글러는 노마지라도 마법인들에게 꿀리지 않음을 짐짓 강조해 폭소를 자아냈다. “제이콥은 제빵업자를 꿈꾸는 노동자다. 맛있는 페이스트리를 굽는 마법을 하는 셈이다. 생각해보면, 한 솔로는 뭐 제다이였나?” 한 솔로 외에도 론 위즐리, 왓슨, 고스트 버스터, 제임스 캐그니, 찰리 채플린 등이 그가 제이콥의 역할을 빗댄 쟁쟁한 선례다. 브루클린에서 성장한 이 배우는 거리 세트에서 피어오르는 스팀을 보고 있으면 선대의 삶으로 시간여행을 온 것 같아 감격스럽단다. 보이지 않는 충격에 대응해 커다란 잔을 머리에 뒤집어쓰는 연기를 반복한 앨리슨수돌은 대체 뭘 연기한 거냐고 묻자, “왜 LA에서 지진이 나면 머리부터 보호하라고 배우잖아요?”라며 웃는다. 얼터너티브 싱어송 라이터인 그녀는 작품의 제목도 모른 채 캐릭터 설명을 듣고 오디션에 응했다가 애독했던 <해리 포터> 월드에서 생애 최초의 연기를 시도하게 됐다. “순회공연을 다닐 때면 마음 붙일 곳이 필요해 <해리 포터>를 읽었다. 생생한 세계 하나를 들고 다니는 기분이었다.” 수돌은 아마추어 판타지 작가이기도 하다. 기자가 출간 계획을 묻자 그녀는 본인이 대가 J. K. 롤링의 우주 안에 있음을 인식한 듯 수줍어한다. “어린이를 위한 판타지를 400페이지가량 썼는데 출판하려면 우선 원고를 반으로 줄여야 한다.”
동생 역의 앨리슨 수돌에 비하면 베테랑 배우지만 시간적 배경 덕분에 촬영 내내 크리스마스 분위기와 런던, 마법의 매혹에 취해 있기로는, 티나 역의 캐서린 워터스턴(<스티브 잡스> <인히어런트 바이스>)도 마찬가지였다. 블록버스터 프로덕션 시스템의 특혜는 그녀에게 각별히 깊은 감명을 주는 중이다. “지금까지 연극과 저예산영화에서 주로 연기했는데, 바닥에서 미끄러지는 방법을 고민하면 2초 안에 무빙 코치가 도움을 준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전문가의 세계다.” 기자 중 한명이 <신비한 동물사전>으로 스타덤에 오를 각오가 돼 있냐는 우문을 던졌다. 현답이 돌아왔다. “내 할아버지가 아버지에게, 쇼 비즈니스는 담배와 같아서 들이쉬지만 않으면 몸은 상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나 역시 적당한 방침이라고 생각한다.” 댄 포글러는 네명이 모여 대본을 읽기 시작했을 때 자연발생한 코미디적 요소에 대해 특히 만족을 표했다. “슬랩스틱, 액션, 로맨틱의 세 가지 종류 코미디가 나온다.” 한편 4인조를 규합한 데이비드 예이츠 감독은 청소년 주역이 없는 이 영화에서 네 주인공이 발산하는 모종의 천진함에 주목했다. “캐스팅부터‘어른아이’를 찾았다. 네 사람의 공통점은 냉소나 까칠함이 없고 어린이 같은 순수성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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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그러운 세계를 향하여
<해리 포터> 시리즈가 문학적으로, 영화적으로 몇배 높은 평가를 받는 <반지의 제왕> 연작에 비해 갖는 상대적 강점은 현대사회의 이슈를 비추는 예민하고 구체적인 메타포다. 이 정신은 <신비한 동물사전>에서도 그치지 않는다. 영화의 배경이 영국에서 미국으로 이동함으로써 부각되는 조건은 1920년대 미국의 마법사 사회와 노마지 정부가 맺고 있는 관계다. <해리 포터> 시리즈의 영국 머글 정부와 마법부가 암암리에 공조체제를 유지했던 것과 달리 1920년대 미국은 훨씬 적대적인 환경이다. 극중에서 마녀사냥에 앞장서는 세컨드 세일러미스트 집단은 차별주의의 전위이다. 시야를 넓혀보면 마법의 동물들을 세계의 일원으로서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의 질문- 그들은 몬스터인가? 2등 시민인가?- 도 종차별과 환경주의 논의에 대한 코멘트다. 여기서 주연 4인방이 모두 백인 캐릭터라는 지적을 예상한 듯 프로듀서 데이비드 헤이먼은 설명을 앞질러 자청했다. “1920년대는 피부색이 다른 시민이 피고용인이 아닌 이상 백인과 한 장소에서 눈에 띄는 일도 드문 분리의 시대였다. 인물들의 만남에 역사적 조건이 반영된 것뿐이다.” 2014년 <패딩턴>을 제작함으로써 영국독립당(UKIP)의 반이민 정책을 비판하는 메시지를 전파한 헤이먼은 <신비한 동물사전>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우리 영화는 오락이지만, 동시에 그릇된 처우를 받고 발언권을 빼앗기고 학대받은 존재가 그 결과로 어떤 어두운 에너지를 빚어내는가에 관한 이야기이며, 고독하게 고립된 개체가 타자나 사회와 연결되는 과정에 대한 드라마다.” <신비한 동물사전>은 2D로 촬영돼 후반작업에서 3D로 변환해 다양한 포맷으로 상영될 예정이며 한국 개봉일은 11월17일이다.
비스트의 정의(定義)
<신비한 동물사전> 원작
2001년 출간된 <신비한 동물사전>은 해리가 구입한 52쇄로 설정돼 있다. 따라서 책장 여백에는 어린 해리와 론의 낙서라든가 헤르미온느의 일침이 필기체로 인쇄돼 있다. 90페이지 두께의 이 책에는 뉴트 스캐맨더가 세계를 돌며 연구하고 분류한 85종의 신비로운 동물이 소개돼 있는데 서문을 쓴 알버스 덤블도어 교장은 혹시나 책을 입수한 머글 독자에게는 본서의 내용이 허구라고 일러두고 있다. 그러고는 마술사와 마녀에게는 마법어로 “잠자는 용을 간질이지 말라”는 비밀 메시지를 첨부했다. 저자 머리말에서 뉴트 스캐맨더는 주급 2식클에 불과한 마법부의 박봉이 집필의 큰 이유였다고 고백하고 있다. 알파벳 순서로 편집된 사전은 항목별로 동물의 서식지와 특징을 묘사한다. 예컨대 니플러의 경우 “반짝이는 물건을 사랑한다”는 속성을 갖고 있는데, 이로 인해 영화에서는 은행강도 누명을 쓰게 된다. <신비한 동물사전>은 각 동물에게 X표 한개(지루함)부터 다섯개(마법사 킬러)까지의 스케일로 위험도도 표시하고 있다. 스토리가 없는 이 책에서 가장 매력적인 대목은 뉴트스캐맨더가 기술한, 신비로운 동물(beast)과 법적 권한을 가진 공민(being)을 구분 정의하기 위해 마법부가 겪어온 시행착오의 연대기다. 트롤, 켄타우로스, 늑대인간만 봐도 혼란을 짐작할 수 있다. 두발 보행을 시민의 기준으로 정한 14세기 마법부는 몰려온 트롤 무리 등으로 초토화됐고 인간의 언어사용 가능자를 기준으로 세운 2차 시도는 인어 말 쓰는 머피플(merpeope) 차별에 항의한 켄타우로스의 보이콧과, 현재 존재하는 자(being)들에게 편향된 정책에 불만을 품은 유령들(having-beens)의 실망을 자아냈다. 결국 마법부는 마법 공동체의 법을 이해하고 책임질 지성의 소유자로 공민을 정의하되, 지성을 막론하고 폭력성을 제어하지 못하는 경우는 비스트로 분류하는 안에 도달했다. 그러나 극단주의자들은 머글 인간도 비스트에 속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책에 들어 있는 몇컷의 삽화는 J. K. 롤링의 드로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