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감독을 꿈꾸던 홍콩 젊은이들은 일자리를 구하고 경력을 쌓기 위해 TV방송사로 몰려들었다. 골든하베스트 등 몇몇 대형 스튜디오가 장악하고 있던 당시 홍콩영화계는 막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신선한 재능을 받아들일 여유나 의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 중에는 1979년, 지루한 공기를 깨뜨리며 홍콩 뉴웨이브의 시작을 선언할 허안화와 엄호, 우인태 등이 포함돼 있었고, 누구보다도 서극이 있었다.
서극은 오우삼처럼 한 장르를 끝까지 밀고나간 적도 없고 허안화처럼 진지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뉴웨이브의 부산물처럼 취급받을 때가 많았다. 그러나 감독으로서 그의 능력과는 별개로, 자신의 영화사 전영공작실을 통해 그가 수립한 시스템은 동세대 영화인들에게 좀처럼 만나기 힘든 기회를 줬다. 지금까지 그와 함께한 이름들은 그대로 홍콩영화의 전성기며, 지금 새로운 출구를 찾고 있는 홍콩영화의 몸부림이다. 서극이 좀더 젊고 영화적으로 세련된 관객을 극장으로 끌어들이는 선구자였다고 평한 영화서적 <시네마 오브 홍콩>은 좁은 홍콩 바닥을 아우르는 서극의 영향력을 정확하게 포착한 것이다.
오우삼·원화평- 지금은 할리우드에서 더 바쁜
서극의 가장 오래된 친구 중 하나는 그보다 다섯살 위인 오우삼이다. 어떤 평론가가 “<영웅본색>은 오우삼과 서극의 우정을 어느 정도 반영하고 있다”고 평할 만큼 각별했던 두 사람은 흥행에 실패하면 살아남을 수 없는 홍콩영화계에서 서로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구해주곤 했다. <영웅본색>은 오우삼을 믿었고 그를 침체에서 구해주고 싶기도 했던 서극이 마련한, 일종의 선물이었다. 그는 <영웅본색>을 기획했지만 친구에게 카메라를 넘겼고, <첩혈쌍웅>으로 완성된 홍콩누아르의 영광은 대부분 그 친구에게 돌아갔다. 90년대부터 전영공작실 대신 금공주와 주로 작업하기 시작한 오우삼은 현재 프로듀서 테렌스 창을 파트너 삼아 일하고 있다.
<매트릭스> <와호장룡>으로 할리우드에서 가장 바쁜 무술감독이 된 원화평은 <황비홍> 시리즈를 통해 서극과 끈끈한 관계를 맺은 뒤, 아직도 종종 프로젝트를 함께하는 동료다. 무술을 하는 아버지 밑에서 자라 스스로도 무술에 능숙한 그는 <취권>과 <사형도수>를 감독해 성룡을 스타덤에 올려놓았다. 속임수 없는 그의 액션은 베이징 오페라나 정통 무술을 연마한 중국배우들의 움직임을 정확하게 뒤쫓았고, 이것은 서극이 <황비홍> <철마류> 등에서 추구한 바와 맞아떨어지기도 했다. 그는 서극이 감독한 <촉산전> <흑협2>에서도 무술감독을 맡아 변함없는 파트너십을 보여줬다.
서극이 현란한 특수효과 대신 강인하고 재빠른 인간의 신체에 기대 만든 <황비홍> 시리즈는 이연걸에게도 잊을 수 없는 영화였다. 이연걸은 카메라로 조작한 것처럼 빠른 몸동작을 구사하는 무술의 달인이었지만, 쿵푸영화의 전성기를 놓친 탓에 A급 배우는 되지 못하고 있었다. <용행천하>에서 이연걸을 만난 서극은 전설이 된 중국 근대의 영웅 황비홍으로 그가 적임이라 여겼다. <황비홍>은 곧 홍콩 액션영화의 판도를 바꿔놓았고, 이연걸은 시대극에 머무르는 대신 총이 아니라 발과 주먹을 사용하는 현대물에도 출연하게 됐다. 서극이 할리우드에서 일할 때 이연걸 역시 미국에 있었지만, 두 사람은 거의 만나지 않는다고 한다.
원화평이 서극의 후반기를 함께한 무술감독이라면, 정소동은 스크린에 마음대로 붓을 놀리는 것처럼 화려하고 자유로웠던 서극의 전반기를 함께한 무술감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화산 절정의 검법을 구사하는 <소오강호>를 안무했고, 에로틱하고 판타스틱하며 로맨틱한 사극 <천녀유혼>의 무술과 연출을 모두 감당했다. <동방불패>와 <신용문객잔> 역시 그의 손길이 빚어낸 마술 같은 무협영화. 이제 독자적인 길을 가고 있는 정소동은 서극 영화의 한축을 형성한 공로자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대부분 1970년대 영화나 방송을 시작한 서극의 동료들과 달리 이인항은 1980년대 TV프로듀서로 입문한 비교적 젊은 감독이다. 그는 “서극의 수제자”라 불리며 <황비홍> 시리즈 일부의 시나리오를 썼고 서극이 제작한 <흑협>을 감독하기도 했다. 캐나다에서 시각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한 그의 장점은 빛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아름다운 영상. 이 밖에 서극과 비슷한 시기에 입문해 <감옥풍운> 등 ‘풍운’ 시리즈로 한 시대를 풍미한 임영동은 <쌍룡회>를 서극과 공동으로 감독했고, <도마단>에 출연했고 <동방불패>로 재기에 성공한 임청하 역시 그의 덕을 본 배우들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