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한 당신> 최윤필 지음 / 마음산책 펴냄
많은 인간은 인생의 전성기라고 부를 만한 것을 지나 한참을 더 살고 죽는다. 어떤 죽음은 먼지를 뒤집어쓴 추억들을 세계적으로 소환하지만, 어떤 죽음은 쉽게 잊힌다. <한국일보> 최윤필 기자의 <가만한 당신>은 부고를 모은 책이다. 대중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해도 특정 분야의 전문가이거나 사회적으로 반향을 불러일으킨 사건의 주인공들의 경우,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여도 부고를 싣고 기리는 영미 저널리즘의 특성을 한국식으로 반영한 글이다. 이 책의 놀라운 특징은, 유명한 사람들의 부고는 싣지 않았다는 것, 페미니즘과 동성혼 법제화, 흑인 인권운동 등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세상을 바꾸고자 한 사람들을 중심에 두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시종일관 차분하게, 그들의 삶과 세상에 대한 기여, 그리고 죽음을 적었다. 이 풍진 세상에서 약자를 위해 싸우는(혹은 언론 권력의 치부를 드러내거나 세계가 보는 가운데 추락한 우주탐사선의 문제를 적시하는) 사람들의 삶은 영광보다는 고통으로 가득해 보이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래서 <가만한 당신>은 한입에 삼킬 수 없다. 한 사람의 삶을 접하고 나면 그 무게에 잠시 책을 덮었다가 다시 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 책을 펼친다. 그리고 이들의 노력이 알게 모르게 구해냈을 수많은 삶을 떠올리고 감사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