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방이 어두컴컴하다. 적막이 흐르는 와중에 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자신이 어떤 음악을 좋아하는지 간략하게 설명하고는 옆사람에게 패스. 그중 딱 한 사람의 외모가 지금도 내 뇌리에 강렬하게 남아 있다. 헤비메탈을 좋아한다고 어둠 속에서 고백했던 남자다. 이 남자를 포함한 4명이 평소에 즐겨 입는 의상을 걸치고 테스트에 참여한 상황이었다. 고해성사가 끝나고 드디어 라이트 온. 이럴 수가. 메탈 마니아라고 했던 이 남자, 끝내주는 슈트발은 기본이고, 어디에서도 꿀리지 않을 댄디함을 풀풀 풍기는 게 아닌가. 우리의 ‘선입견’에 관해 말해주는 이 재미있는 실험은 마치 기분 좋은 카운터펀치 한방을 맞은 것 같은 느낌을 줬다.
이 밴드도 마찬가지다. 때는 2011년. 해외 언론에서 극찬을 하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는 리뷰도 찾아보지 않은 채 그들의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강렬한 타격감을 지닌 록 음악이 내 귓전을 때릴 것으로 예상했는데, 섬세하기 그지없는 보컬과 연주가 흘러나오는 것 아닌가. “아니, 얘네들 진짜 파괴자(Destroyer) 맞아?” 부서질 듯 연약한 그들의 음악은 독창적이면서도 따스하고, 따스하면서도 아름다웠다. 기실 디스트로이어는 캐나다 출신 베테랑 뮤지션 댄 베이하르가 1990년대부터 이끌어온 베테랑 밴드다. 2011년의 걸작 <Kaputt> 이후 그들은 10집 《Poison Season》(2015)을 통해 다시 한번 찬사를 획득,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밴드 중 하나임을 증명했다. 조금 전 이 음반을 바이닐로 주문해놓고 택배를 기다리는 내 마음이 참으로 애달프다. 이 애달픈 마음을 꼭 닮은 음악이 내 방에 곧 울려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