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아버지와 통화를 하다 이런 말을 들었다. “유기견 보호소에서 단 한 마리만 데려오는 건 너무 힘들다. 모든 개들을 다 데려올 수 있다면 몰라도.” 전화를 끊고 이 말을 곱씹다가 조지 프라이스라는 이름이 떠올랐다.
그는 물리학자이자 진화생물학자였고, 이타적인 행위 역시 이기적 유전자에서 비롯된다는 주장에 반대했다. 생물체의 이타성을 수학적, 생물학적으로 규명하고자 했던 그는 진화생물학에 게임 이론을 선구적으로 도입한 인물로도 알려져 있다. 그가 고안한 방정식이 그림처럼 보일 뿐인 나로서는 그의 논리를 설명할 수 없다. 다만 그의 죽음에 대해 몇 마디 덧붙이고자 한다.
프라이스는 갑상선암에 걸려 투병하는 와중에 1967년 영국으로 이주했다. 그 후 어떤 종교적인 경험을 하고 기독교도가 된 그는 런던의 노숙자와 빈자들을 돕는 일에 나섰다. 그는 열성적으로, 어쩌면 지나치게 열성적으로 빈자들을 도왔는데, 가진 것은 물론 집까지 노숙자들에게 내주었다. 연구소의 실험실이 그의 새로운 거처였다. 그러나 노숙자와 거지들은 프라이스를 갈취했고, 그에게 폭력을 가하기도 했다. 프라이스는 심각한 우울증을 겪었다. 그리고 이내, 런던의 누구보다도 가진 것 없는 사람이 되었다. 그에게는 오직 무형의 신앙심만이 남아 있었다. 그에게 남은 물질은 자신의 몸과 최소한의 옷가지가 전부였을 것이다.
그는 1975년 1월5일에서 6일 사이에 재단용 가위로 목을 찔러 자살했다. 자신이 가졌던 모든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어버린 뒤였다. 갑상선암에 들어가는 약값도 다른 사람들에게 오래전 모두 주어버렸다. 자신이 소유했던 최후의 물질이 사라질 때, 그에게는 무엇이 남아 있었을까. 그가 마지막으로 살았던 건물은 여든한명이 점거하고 있었다. 프라이스가 죽은 뒤 다른 거주자들은 법정에 세워졌다.
그러니까, 나는 잘 모르겠다. 인간은 자신을 어디까지 내어줄 수 있는지. 다 내어줄 수 없다면 차라리 내어주지 않는 것이 나은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 수 있는 만큼을 해야 하는 것인지. 선택과 배제 사이에서 어떻게 줄타기를 해야 하는지. 나는 할 수 있는 만큼이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타협할 때마다, 타협의 정도를 결정할 때마다 죄책감이 드는 건 피할 수가 없다. 잠정적인 결정을 매 순간 내리면서, 나는 드물게 조지 프라이스의 죽음을 생각한다. 억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