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르조 바사니 지음 / 문학동네 펴냄
이탈리아의 영화적 전통을 좋아한다면 조르조 바사니를 좋아하지 않기가 더 어려울 것이다. 조르조 바사니는 이탈리아의 페라라에서 부유한 유대인 커뮤니티의 일원으로 살다가 1938년 반유대주의적 인종법이 선포되면서 반파시즘 운동에 참여했고 체포되었다. 50년대 말부터 그는 <금테 안경>을 비롯해 <핀치콘티니가의 정원>(1962) 등 30년대 페라라의 기억들을 소환하는 소설들을 발표했다.
그중에서도 <핀치콘티니가의 정원>은 소설이 시작하자마자 제목에 등장하는 정원의 주인들이 홀로코스트로 사망했고 같이 묻히지조차 못했음을 밝힌다. 그리고 그 찬란했던 여름으로 시간을 돌린다. 죽음을 어떻게 추모할 것인가.
바사니는 삶이 이보다 선명할 수 없었던 청춘의 여름을, 시종일관 가시지 않는 죽음의 그림자, 투옥의 그림자 아래 그려낸다. 그 먼 옛날 사랑의 추억은 불분명한 치정극으로 막을 내렸고(비토리아 데시카가 만든 영화에서는 분명한 치정극이 된다), 재력과 문명의 상징과도 같았던 저택의 정원은 잡초가 무성한 밭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절묘하게 잊지 않게 만드는 바사니의 서술기법이 근사하다. 그의 작품 상당수가 영화로 만들어졌는데, 소설을 읽어보면 이 자체가 영화적으로 쓰였다는 데 감탄하게 된다. 책 말미에 페라라 지도가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