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희라, 김종대 지음 / 리더스북 펴냄
2년 전 마포구 성미산 마을에 집을 지었다. 이웃 11가구와 함께 ‘소통이 있어 행복한 주택’의 도움을 받아 지어올린 6층짜리 공동주택이다(건축가 이일훈 선생이 자문을 맡고, 시행사 자담이 공사를 진행했다). 18평이라는 크지 않은 공간을 우리 가족의 생활방식에 맞도록 설계하는 건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내와 나는, 일을 할 때는 집 전체가 작업실이, 식사를 할 때는 레스토랑이, 쉴 때는 큰 거실이, 주말에는 근사한 카페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설계를 했다. 11가구의 내부 설계가 제각각이라 공사 기간이 보통 빌라보다 훨씬 길었고, 공사가 끝난 뒤에도 집 여기저기에 하자가 발견돼 추가 공사를 해야 하는 불편함을 겪었다. 공사 인부들이 집을 들락날락하며 천장을 뜯어낼 때마다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아내와 함께 모은 돈을 탈탈 털어 집을 지어야 했던 이유는 한국의 주택 시장에 더이상 희망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전세 재계약에 실패하면 2년마다 부동산을 돌아다니며 살 집을 찾고, 이사를 하는 일도 고역이었다. 무엇보다 한국의 빌라와 아파트는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목적보다 한정된 공간에 최대한 많은 세입자를 받기 위한 구조로 지어져 도저히 사람이 살 수 있는 공간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거나 마음고생이 많았지만, 지금 살고 있는 집은 꽤 만족스럽다.
<우리가 만약 집을 짓는다면>은 실내 건축 디자이너 권희라씨와 영화 프로듀서 김종대씨 부부가 집을 지은 후 쓴 책이다. 그들은 바둑판처럼 재단돼 다량으로 공급되는 신도시 주택가에서 더이상 아이를 키우고 싶지 않아 40평짜리 집을 버리고 남산 자락에 위치한 서울 후암동에 18평짜리 4층 건물을 지었다. 그들이 집을 짓기로 결심하기부터 땅 찾기, 계약, 설계, 공사까지 어느 하나 쉬운 과정이 없었던 까닭에, 책을 읽다보면 많은 돈을 투자해 저렇게까지 고생하며 집을 지어야 하나 싶기도 할 거다. 또 형편만 된다면 아파트만 한 주거 공간이 없다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큰 흥밋거리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집을 직접 짓는 데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는 이 부부의 고생담이 친절한 길잡이가 될 것이다. 남의 집을 구경할 수 있는 런던 오픈하우스 정보, 땅 찾는 방법, 건폐율과 용적률의 뜻, 구도심에서 땅을 고를 때 짚고 넘어가야 할 것, 땅을 계약할 때 알아야 할 것 등 유용한 팁들이 챕터 사이에 소개되니 참고하면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