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장의 편지가 도착했다. 하나같이 다른 언어로 쓰였고, 송부돼온 국적도 모두 다르다. 하지만 이 모든 편지들은 하나같이 경계(Boundaries) 위에서 쓰여졌다. 자신이 태어난 곳, 혹은 자신이 살아온 곳으로부터 제 의지와는 무관하게 내쳐진 사람들이 서 있는 곳이다. 이쪽이기도 하고 저쪽이기도 하지만 사실상 이쪽도 저쪽도 아니다. 문정현, 블라디미르 토도로비치, 다니엘 루디 하리얀토 세명의 다큐멘터리스트들은 각자가 만났던 경계 위의 사람들 혹은 각자의 경험 속 경계에 대한 이야기를 편지에 담아 서로에게 보낸다. 영상 위로 흐르는 감독들의 내레이션은 그들이 쓴 편지의 낭독이다.
루디는 일본에 사는 인도네시아인 누리의 이야기부터 전한다. 세르비아 태생인 블라디미르는 고향을 떠나 정착한 싱가포르에서 아시아 각지에서 온 수 많은 노동자들을 만난다. 문정현은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에서 다큐멘터리 작업을 할 때 만난 사람들과 재회한다. 그들을 바라보던 문정현의 시선은 슬쩍 한국의 철거민 투쟁 현장으로 옮겨간다. 문정현의 편지 중에는 재일조선인으로 65년을 살아올 수밖에 없었던 그의 삼촌에 관한 내용도 있다. 편지는 서로의 편지에 답장을 보내듯 이어진다. 경계에 대한 그들의 문제의식이 서간문이라는 형식을 통과하자 내밀한 이야기에 대한 자전적 고백처럼 들린다. 다니엘 루디 하리얀토가 보내온 첫 번째 편지는 특별히 더 시적으로 보이고, 들린다. 영상과 음성의 부조화스러운 전개가 빚는 신선한 환기 때문일 것이다. 다큐멘터리의 형식적 시도에 있어서 <경계>는 대담한 작업은 아니지만 서정적인 감흥을 불러낸 결과물이라 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