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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 x cross] 음악가로서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 리처드 용재 오닐 인터뷰
정지혜 사진 최성열 2016-06-23

8년째 ‘디토 페스티벌’의 음악감독 맡아온 리처드 용재 오닐

“제 비올라와 함께 사진을 찍어볼까요?”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이 연초록빛 벨벳 케이스의 뚜껑을 살포시 연다. 스스로 “나의 안식”이라 말하는 그의 비올라가 뉘여 있다. 그가 아이를 보듬듯 비올라를 품에 안고는 이내 활로 현 위를 오가며 이날의 소리에 집중해간다. 현악 협연에서 비올라는 일종의 중재자다. 화려한 기교의 바이올린 뒤에서, 첼로의 중후함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나간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음악에 자신의 존재를 감출 때” 비로소 완전해지는 음(音)이다. 이러한 비올라의 역할을 끊임없이 환기하며 그는 뉴욕 링컨센터 체임버 뮤직 소사이어티의 정식 단원으로서 협연을 완성해왔다. 물론 런던 필하모니와 뉴욕 카네기 홀에서 솔리스트로도 청중과 만나왔다. 이번에는 클래식의 대중화를 위해 기획된 ‘디토 페스티벌’의 음악감독으로서 그를 만났다. 페스티벌 기간 동안 ‘베토벤: 한계를 넘어선 자’라는 테마로 총 7개의 공연이 진행된다. 그가 속한 앙상블 디토팀은 ‘The Revolutionary: 혁명가들’이라는 주제로, 역시 그가 멤버로 있는 에네스 콰르텟은 베토벤의 현악사중주 16곡 전곡을 연주한다.

-6월12일부터 3주간 진행되는 디토 페스티벌이 사흘째를 맞았다. 공연 기획, 연주에 이어 홍보까지 직접 소화하며 강행군이다.

=지금 내 생활의 모든 면이 베토벤과 연결돼 있다. 어떤 음악은 연주 도중에 연주자가 약간 쉬어갈 수 있게 틈을 내준다. 베토벤의 음악은 전혀 그렇지 않다. 긴장감이 넘쳐 흐른다. 준비가 안 된 채 연주하면 베토벤이 연주를 뭉개버릴 거다.

-당신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앙상블 디토팀이 결성 10년을 맞아 1기를 정리한다. 앙상블 디토가 주축이 돼 이끌어온 ‘디토 페스티벌’은 8년째 진행 중이다. 나름 기념할 만한 해에 베토벤을 테마로 잡았다.

=디토(Ditto)는 ‘Divertimento’의 줄임말인데 클래식 음악 가운데서도 기분 전환을 위한 밝은 기악음악이다. 그 뜻을 살려 대중에게 보다 친숙하게 클래식을 소개하자는 생각으로 달려왔다. 내 유년의 경험이나 음악적 발전의 과정에서 베토벤은 그 누구보다 큰 영감을 줬다. 그는 타고난 재능의 소유자다. 바이올린 콘체르토, 챔버 뮤직(실내악), 현악사중주를 비롯해 실내악의 전 역사에서 그는 바이블이다. 현악사중주의 진화를 보여줬다. 완벽한 균형, 하모니를 갖춘 그의 곡들을 연주한다는 건 상당히 큰 도전이다. 디토를 시작할 때부터 언젠가는 꼭 베토벤 사이클을 하자고 마음먹었다. 그게 올해가 될 줄은 몰랐다.

-바이올리니스트 야샤 하이페츠를 잇는다는 평을 듣는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제임스 에네스가 이끌고 당신이 속해 있는 에네스 콰르텟이 베토벤 현악사중주 16곡 전곡을 연주한다.

=에네스 콰르텟은 5년 전부터 이 연주를 준비해왔다. 인간의 본질과 감성뿐 아니라 역사적 공기까지도 민감하게 포착해내는 게 예술이라면 베토벤 현악사중주야말로 그런 의미에서의 걸작이다. 영화감독들도 시기별로 작품의 색깔이 달라지지 않나. 페데리코 펠리니, 마틴 스코시즈, 우디 앨런만 봐도 그렇다. 베토벤도 초, 중, 후기로 가면서 달라진다. 시기별로 그의 음악의 진화를 지켜보게 될 것이다. 에네스 콰르텟이 일본, 중국, 싱가포르, 홍콩 등에서는 공연을 했어도 한국 공연은 처음이다. 디토 페스티벌과 함께한 관객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기에는 더없이 좋을 것 같다.

-페스티벌 시작 직전, 앙상블 디토는 《디어 아마데우스》 《슈베르티올로지》 정규 앨범 두장을 동시에 발매했다. 이번 페스티벌을 끝으로 지난 10년을 정리하고 2기를 준비하겠다고 밝혔는데.

=올해의 프로그램으로 첫해를 맞았다면 관객이 음악을 받아들이지 못했을 것이다. 10년간 함께해온 관객은 디토가 들려준 음악들을 하나의 연장선상에서 듣고 디토가 그렇듯 함께 성장해온 게 아닌가 싶다. 그 발전만큼은 자부심을 느낀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2008)와 같은 효과랄까. (웃음) 지난 시간의 시도들이 있었기에 앞으로 또 다른 시도를 해도 청중이 지켜봐주실 거라 본다.

-페스티벌을 꾸려오며 힘든 일도 많았겠다.

=균형 잡기가 가장 어려웠다. 아무리 음악적으로는 훌륭해도 같이 있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지 않겠나. (웃음) 중요한 결정을 혼자 내려야 하고, 사람들을 이끌어간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최선을 다해도 모두가 만족할 수도 없고. 무엇보다 지인이나 기자들이 ‘당신은 음악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다’고 말할 때 가장 힘들었다. 단 1초라도 내 마음속에 들어와보면 안다. 음악에 대한 내 애정이 얼마나 깊은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다. 음악이 나를 구해준 것 같다. 도전해야 할 과제이기도 하지만 끊임없이 영감과 위안을 주기도 한다. 평생을 쏟아 부을 수 있는 나의 전부다.

-베토벤 현악사중주 16곡 각각에 얽힌 당신의 지극히 사적인 경험의 에세이이자 공저인 <나와 당신의 베토벤>을 읽었다. 편집 과정이 있었겠지만 글솜씨가 꽤 좋아 보이더라.

=어릴 땐 글쓰기가 꽤 자기중심적인, 자기 안으로 파고드는 일이라고만 생각했다. 시골의 작은 마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다보니 그땐 내가 글을 잘 쓰는 줄 알았다. 성인이 돼 <뉴요커>를 비롯한 유명 잡지에 글 쓰는 친구들을 만났다. 그들의 글을 읽어보면 내 글은…. (웃음) 감성의 핵심, 빛나는 순간을 포착해 단순한 형식으로 풀어내는 글을 써야 하는데 그게 얼마나 어렵나. 사실 음악가에게 글쓰기는 큰 도전이다. 글이 음악의 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가 “글이 음악의 언어를 방해해선 안 된다, 음악은 그 자체로 소통해야 한다”는 유의 말을 했다. 내 나름 대답을 해보자면, 글로 음악을 방해하려는 게 아니라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음악을 들을 수 있게끔 그들에게 음악으로 향하는 문을 열어주고 싶었다고 하겠다. 이런 시도가 지금 시대에는 중요하다. 그 어느 때보다도 어려운 시기에 저마다 인생의 목표를 찾고자 애쓰는 젊은이들이 어째서 1800년대 비엔나에 살던 베토벤의 음악을 들으러 공연장으로 오겠나. 내 글이 청중을 공연장으로 이끄는 하나의 시도가 되길 바란다. 음악을 듣기 위해서는 시간을 내고 집중을 해야 한다. 사람들이 각자의 마음속을 들여다보고, 그 안의 고요함을 찾기 위해 음악에 시간을 내준다면 음악이 사람들에게 말을 걸어줄 거라 생각한다.

-당신은 종종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시간의 유한성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해왔다. 마치 인생 철학과도 같이 들렸다.

=인류의 긴 역사를 놓고 보면 지금 이 순간은 너무도 짧다. 종교적 차원의 발언도 아니고, 우리의 존재가 별것 아니라고 말하려는 것도 아니다. 인간들간의 폭력, 살인, 학살, 정치적 갈등 등을 우주에서 내려다본다면 정말 작은 일에 불과할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어려운 순간에도 더 큰 세계 속에서 나를 살펴보려 노력한다. 연주자의 한 사람으로서도 우주의 무한성과 내 안의 유한성을 동시에 보려 한다. 예술은 손에 잡히지 않는 것들, 예컨대 나는 왜 여기 존재하는가, 존재의 목적은 무엇일까, 인생은 뭘까 등에 대해서 말하는 작업이다. 나는 음악에 그런 철학을 담으려 한다. 지구에서의 나의 시간은 제한돼 있고 모든 문제를 해결할 만한 천재성도 내겐 없다. 내 선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으려 할 뿐이다. 지난해 국제구호단체 옥스팜과 함께 케냐 나이로비와 카쿠마의 난민 캠프에 일주일간 머물렀다. 식수조차 부족한 환경에서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심지어 여자아이들은 팔려가기도 한다. 문화마다 삶의 방식이 다르다 해도 우리는 인간이고, 어린아이에게도 자신의 인생을 살아갈 권리가 있다는 것만큼은 변치 않는 사실이다.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이 타인을 위해 작게나마 뭔가를 하려고 한다면 세상이 지금과는 좀 달라지지 않을까. 예술가로서 내가 뭘 할 수 있을까를 깊이 생각해보게 되더라.

-음악적 모험, 삶의 모험을 계속하고 싶다고 했다.

=솔직히 말하면, 모르겠다. 위기에 직면했달까. 마라톤을 하고 싶어서 마라톤도 뛰어봤고, 연주하고 싶던 베토벤 현악사중주 전곡도 연주하고, 뉴욕 링컨센터의 체임버 뮤직 소사이어티 정식 단원이 되고 싶었던 것도 실현됐다. 열심히 일해서 엄마에게 안정적인 삶도 가능하게 해드린 것 같고 내 악기도 샀다. 이제 곧 마흔인데 어느새 목표했던 걸 운 좋게도 다 이뤘다. 이제 뭘 해야 할지를 생각하면서 ‘혹시 내가 중년의 위기에 직면한 건가?’ 싶기도 하다. (웃음) 바라는 게 있다면 남들과 함께 도우며 사는 데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고 싶다. 또 뭔가를 느끼면 ‘왜 이렇게 느꼈지?’를 생각하며 살고 싶다. 항상 유연하게 사고하길 바란다. 나이 들면서 점점 사고방식이 뻣뻣해져 부러지는 경우가 있지 않나. 아이들을 보라. 얼마나 유연한가. 언제나, 계속, 새롭게 태어나고 성장하고 싶다. 어렸을 땐 ‘부모님처럼 안 살 거야!’하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면 ‘아니, 나도 그렇게?!’ 하는 순간들이 있지 않나. 정말 어렵겠지만 보드랍고 유연하고 싶다.

<나와 당신의 베토벤>

리처드 용재 오닐, 노승림 지음 / 오픈하우스 펴냄

베토벤 현악사중주 전곡 연주를 준비하는 틈틈이 리처드 용재 오닐은 글을 썼다. 그가 더듬어가는 베토벤의 음악들은 곧 리처드 용재 오닐의 음악 인생 여정이 된다. 열두살 소년 리처드 용재 오닐이 태평양 연안 북서부의 작은 목장 주택 응접실에서 ‘베토벤 전곡 연주회’ 포스터를 처음 봤던 순간부터 세계적인 비올리스트가 된 뒤 베토벤 현악사중주 전곡 연주를 앞둔 지금의 그의 모습까지가 한눈에 펼쳐진다. 작품 번호 59의 3이 리처드 용재 오닐의 애정의 곡이 된 이유, 작품 번호 135에 베토벤이 적어둔 수수께끼 같은 말, “그래야만 하는가?”와 “그래야만 한다”에 대한 리처드 용재 오닐의 잠정적 결론도 읽을 수 있다. 그 사이, 리처드 용재 오닐의 음악적 경험과 철학이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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